작은 딸과의 대화
2008. 1. 10
발신 : 작은 딸
수신 : 아빠
제목 : 아빠! 회사는요??
아빠! 가실 회사는 아직 결정된 데 없어요? 우리 굶기지 않을 거죠? ㅋㅋ 아빠는 뭐든 잘하니깐 잘 될 거예요. 아빠 한국 오면 우리 가족 차 타고 동해안 해돋이 보러 가요. 작년에 보지 못했으니까요.
아빠 힘내요~~ 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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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국을 앞두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한 나의 맘은 타들어 갔지만 겉으로는 드러낼 수 없었다. 집안의 기둥이 흔들리면 온 가족이 흔들리는 건 태풍에 비견할 만했기에 나는 혼자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작은 딸은 아빠가 한국에 돌아와서 실업자가 되는 걸 드러내놓고 걱정했다. 아내가 더 그랬지만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앞날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작은 딸은 우리 가족 걱정 안 해도 되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작은 딸은 속이 깊다. 문장은 딱딱할지 몰라도 나는 이 글이 앙증맞고 귀엽게 보였다. 작은 딸은 아빠에 대한 생각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작은 딸과 나는 친구 같은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작은 딸의 짧은 글에 지금도 나는 감동을 한다. 짧은 글에 담긴 깊은 뜻을 알기에 깊이 감동하는 것이다. 작은 딸이 일 년에 한 번 귀국하여 두세 달 있다 출국할 때 써놓고 가는 손 편지를 차곡차곡 모아서 클리어 파일에 보관하고 있다. 다음 글부터는 훌쩍 커버린 작은 딸과 큰딸, 그리고 사위의 글로 15,6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가족의 모습을 써내려 가려고 한다.
PS : 직장을 결정하지 못하고 귀국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중국으로 공부하러 간다는 어려운 결정을 받아준 아내와 두 딸에게 일 년 지나 빈 몸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귀국 두 달 전부터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고 해서 중국 진출을 계획하는 회사를 찾아 이력서를 넣었다.(그 당시는 중국붐이 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조건의 좋은(?) 직장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이전 직장으로 복귀를 가족의 불안감을 해소하며 다음 스텝의 준비과정으로 삼자며 결정했다. 퇴직하며 좋은 이미지를 남겨둔 덕이었다. 중국에서 생활하며 가끔 대표와 메일로 소통을 하기도 했고 대표는 어디 갈데없으면 다시 회사로 오라는 말을 했기에 복직을 플랜 B로 생각하고는 있었다. 그즈음은 큰딸이 외고에 합격하여 새로운 집안 분위기가 형성되던 시점이었기에 나는 더 이상 새로운 직장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중국에서의 1년은 그 후 11년의 직장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마지막 회사에서 중국법인장으로 상하이에서 6년을 근무하며 31년의 직장생활을 해피엔딩하게 만들어주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방학 때 텅 빈 학교에서 혼자 도서관으로 가 중국어를 공부하던 기억들... 아픈 고독과 시린 외로움은 나를 성장시켰다.
과거가 다 아름답진 않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아름다운 기억만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 아름다움은 계속 이어졌고 15,6년이 지난 뒤의 한껏 성숙해진 글로, 우리 가족의 글은 이어졌다. 이제 그 아름다운 글들로 연재를 계속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