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달리기 트레일런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땐 쉬지만 말고 5km, 10km 달려보자며 시작한다. 50대 초반 나의 시작도 그런 마인드였다. 그러다 마라톤을 즐기면서는 두 가지 다 욕심이 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가? 완주 메달에 기뻐하는 시기가 지나면 기록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숏폼에 넘쳐나는 기사는 러너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나이 먹은 노인이 그런 기록을? TV에서 보던 엄00 여자 아나운서가 10k를 47분에 뛰었다고? 작년에 사위는 나를 따라 러닝을 시작한 후 얼마 전 하프코스 1시간 34분을 기록했다. 04:28/1km. 처음 같이 뛸 땐 나보다 못 뛰었는데... 사위와 나는 앞으로 같이 뛰진 못할 듯하다 ㅠ. 나는 평균 05:15/1km 페이 스니까.
사실 나도 기록을 당겨보기 위해 노력을 해본 적이 있다. 인터벌 훈련이나 산을 오르는 달리기 등을. 하지만 꾸준히 하지 못했다. 힘들기도 했지만 풀코스 완주하는 정도면 건강한 거니까 너무 욕심부리지 말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5년 전부터는 하프코스 대회만 참가하자 했기에 달리는 자체에 의미를 더 두곤 했다. 나에게 하프코스 거리는 속도나 완주의 의미를 따질 정도는 아닌 무난한 달리기에 속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풀코스를 다시 뛸 생각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니다. 풀코스 대회 참가를 일단 포기했던 건 아내가 반대하는 게 첫 번째 이유지만 기록에 자신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Sub4(4시간 이내 완주)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딱 한번 Sub4를 한 적이 있다. 그 후로 4시간 20분이 평균이었다. 이 정도 기록으로는 지금 뛰어도 Sub4는 고사하고 4시간 30분 완주 각이다. 나는 이런 기록으로 기록증을 받는 게 참가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하프코스를 1시간 40분에 뛰면 풀코스 Sub4는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하프코스를 1시간 45분을 목표(5:00/1km)로 뛰어 왔고,이 기록도 3년 전 한번 달성, 그 뒤로는 1시간 50분 언저리. 특훈을 해서라도 기록을 당겨보고 싶지만 지금 러닝으로도 충분히 건강한 달리기를 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1km를 4분 44초에 달려야 하는데 이건 나에게 무리가 따르는 빠르기이기 하다.
그래도 기록을 당겨보자고 한 달 전 결심을 했다. 이건 좋지 않은 자극(?)에 의한 결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 달리는 또다른 이유가 생긴 게 확실했다. 일단 트레드밀에서 거의 매일 인터벌 훈련 14.3에 700m, 300m는 걷고. 이렇게 5회. 14.3은 km당 4분 12초 속도라서 5회 뛰고 나면 숨이 목까지 찬다. 운동복이 땀에 흠뻑 젖는다. 트레드밀에서 인터벌 훈련 후 로드러닝에도 변화를 주었다. 길게 오래 달리기보다는 10k, 15k를 뛰더라도 스피드 중심으로 뛰자고 했다. 무조건 1km를 5분 안에 뛰자고 했다. 뛸 때마다 10km를 49분에 뛰었다. 1km를 04:55에 뛰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전에 나는 로드러닝에서도 1km를 빠르게 뛰면 05:30 정도로 목표를 두고 마음에 여유를 갖고 15km 이상 뛰었다. 그런 것이 오래 달리기에는 만족스러웠는지 몰라도 기록 향상에는 도움이 안 된 거 같다는 생각은 든다. 하프코스 1km 4분 50초까지만 뛴다면 풀코스 Sub4는 가능할 거 같기는 한데...
얼마 전 서울마라톤에서 72살 마라토너가 풀코스 2시간 54분을 기록했다는 기사를 보고 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건 괜한 똥고집 질투였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노인이 어떻게 그런 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 사실 그런 기록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 사람의 기록은 70대의 세계기록으로 등재되었다고 하니까. 내 목표는 70살에 하프코스 2시간인데 그 기사를 보며 내 목표도 그다지 힘든 목표는 아니라고 스스로 자위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70살 Sub4를 목표로 세워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고, 이 목표를 위해서는 스피드 훈련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거 같아 km당 시간을 당기며 달려보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스피드 훈련의 일환으로 남한산성까지 산으로 뛰어갔다 왔다. 집에서 남문까지는 계속 산을 오르며 뛰어야 한다. 4.5km 정도. 거기서부터는 내리막으로 남한산성 로터리를 지나 동문까지 약 1km. 조금 빠르게 산을 올라갔다. 숨이 턱까지 찬다. 급한 오르막이나 계단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트레일런에서 심한 오르막은 뛰는 거보다 걸으며 체력을 비축한다). 따뜻한 봄날 남한산성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주차장은 만차로 차량이 길게 이어졌다.
남한산성 산길을 오르는 훈련은 오래간만이다. 산에는 철쭉이 피고 길가의 벚꽃은 벌써 잎이 떨어지고 있다. 트레일러닝은 울퉁불퉁한 산길 바닥을 보고 주의해서 달려야 하기에 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다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몇 달 전 산 트레일러닝화가 발에 착 감기는 느낌이다. 미끄럽지도 않고 발걸음이 가볍게 내디디는 게 역시 산길은 그에 맞는 도구(트레일런화)가 필요하다.
아무리 뛰는 게 목적이었다지만 남한산성 성내에 벚꽃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다시 산을 오르기 위해 남문 방향으로 향했다. 남문을 지나 숲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는 햇빛을 맞으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하산길 트레일런을 재촉했다.
샤워를 마치고 라면으로 출출한 배를 채우니 눈꺼풀이 무겁다. 낮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내 머리는 빨리 뛰는 게 난 건가,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게 난가 계속 헷갈려한다. 70살에 숫자 목표에 너무 집착하는 내가 정상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그냥 달려보는 거지 뭐." 하며 결론 없는 결론을 내자 스르르 눈이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