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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Feb 10. 2019

달린다는 것의 의미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오래 달릴 수 있을까?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살기 위해서였다. 상하이에서 3년 차, 글로벌 브랜드의 각축장이던 중국, 그것도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중국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있던 상하이는 말 그대로 화려한 경쟁의 무대였다. 호기롭게 중국 시장을 넓혀가던 나는 3년 차부터 고급화 전략으로 적극적인 공략을 준비했다. 해외 시장 진출 4년 차에는 BEP선에 도달한다는 중장기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나는 한국 시장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이 얼마나 한국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시장 확대는 더디고 투자는 계속되고 손실이 불어났다. 나는 글로벌 브랜드와의 열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라는 외로움과 중국 책임자라는 지위로 인해 하루도 맘 편할 날 없었다. 밤낮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한국에서 인정받았던 내 실력은 한국용이었다. 한국 본사에서는 중국 시장 진출 1년 반 만에 그 정도 해낸 것도 대단한 것이라고 했지만 문제는 앞으로의 2~3년이었다.

   고민이 많다 보니 혼자 술 먹는 횟수가 늘고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었다. 혼자 나와서 근무하기에 이런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3년 54살 여름 즈음인 것 같다. 전날 금요일이라고 혼자 맥주를 많이도 마셨다. 10시 넘어 깨어보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있었다. 이렇게 누워 있는 내가 싫었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태양이 내리쪼이는 한낮 상하이 길가를 걷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읽었던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이 생각났다. 태양이 내리쪼이는 해변을 걷던 주인공 뫼르소, 뫼르소는 태양에 눈이 찡그려지며 살인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태양이 이유였지만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뜨거운 태양 아래를 걸었다. 한여름 낮 상하이는 40도에 달하는 열기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나의 옷은 금방 땀에 젖었다. 술기운이 가시지 않아 멍한 상태. 나는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오백여 미터를 달리니 숨이 차서 더 뛸 수가 없었다. 생수 한통을 벌컥벌컥 다 마셨다. 가쁜 숨 속에서 쾌감이 느껴졌다. 내 몸속 쌓여 있던 묵은 찌꺼기가 빠져나가는 느낌, 그건 몸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아닌 내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경이로움이었다. 그렇게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시작하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조금만 뛰어도 숨이 가빠 헐떡거렸다. 젊은 시절의 패기는 간데없고 축 늘어진 몸매뿐이었다. 처음부터 오래 달리기는 불가능했다.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2km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땀을 흠뻑 흘리고 싶어 아침 태양이 떠오르는 시점이나 주 한낮에 달렸다. 나는 운동복이 흠뻑 젖을 정도의 달리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나의 무기력은 그 땀으로 다 배출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일주일에 세 번을 달렸다. 회사에서 일이 안 풀리고 고민이 많을 때는  횟수와 거리를 늘렸다. 한 달이 지나 나는 5km를 달리게 되었다. 달리면서 나의 정신과 신체는 변화되기 시작했고 나의 생활도 서서히 바뀌어 갔다. 우선 술 먹는 횟수가 현격히 줄었다. 그리고 달리면서 업무를 기획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좋은 버릇이 생겼다. 세 달째부터 10km로 거리를 늘리고 나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굵은 땀방울에서 느껴지는 상쾌함, 항상 몸이 가볍다는 느낌, 그리고 달리고 나면 배변이 좋아져 잔변감 없고 뱃속이 깔끔하다고 느낄 정도로 편안했다. 나는 달리기를 통해서 신체의 변화를 면서 나의 사고도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과거 경험만을 의지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새로움을 찾아 공부하기는커녕 굳어 버린 머리를 믿고 창의적인 사고 자체가 없는 나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 내 실력이 보잘것없다는 느낌은 땀을 많이 흘리며 달릴수록 더 강하게 다가왔다. 나는 직장 생활 26년 만에야 직위만 걸친 겉만 번드르르했던 나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달리기가 그걸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기록을 재면서 달리다"    

  10km 달리면서 나는 기록을 의식하게 되었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10km를 1시간에 달리기는 불가능하다(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많고). 연습 좀 한 후 처음 10km를 뛴다면  대개 1시간 10분 정도로 달리게 다. 나도 물론 그랬다. 1시간 안에 달릴 수 있느냐의 문제는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느냐의 문제와 같다. 달리다가 두세 번 걸으며 쉬면 5분, 10분은 금방 지나간다. 원하는 시간에 달리고 싶다면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 하지만 쉬지 않고 오랜 시간을 달리는 게 쉽지는 않다. 마치 인생과 같아 포기하면 끝인 것이다. 지금도 나는 3km 지나면 헉헉대고 걷고 싶은 욕망에 빠진다. 나는 매번 걷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자기와의 싸움을 하며 달린다. 이 정도에서 포기하고 걸으면 험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거냐며 나를 채찍질하며 달린다. 그래서 지금 나는 포기를 모르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창의적인 사고를 갖은 장년이 되었다. 기록을 의식하며 달리기 위해서는 중간에 멈춤이 없어야 한다. 그것은 곧 어떤 어려움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나는 연습 때 10km를 한 시간에 달린다. 하프코스는 2시간 10분에 뛰고. 하지만 나에게  강한 자극을 주고 싶을 때는 52분, 2시간 이렇게 달린다. 한 달에 두세 번은 전력 질주를 하는데 이렇게 뛰고 나면 뛸 때의 숨가뿜은 간데없고 하늘을 날듯 기분이 좋다. 덕분에 밤에 잠도 꿀잠이고.

하지만 기록을 향상하기 위한 무리한 운동은 달리기의 흥미를 앗아갈 수 있다. 나도 기록 욕심이 있어 혼자서 산을 뛰어오르는 등의 스피드 훈련을 해본 적도 있지만 기록이 크게 단축되는 효과를 얻진 못했다. 대신 나 같은 아마추어가 하프코스, 풀코스에서 몇 분을 당기는 것은 스피드 훈련보다는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는 것이 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아마추어는 쉬지 않고 달리겠다는 쉽지 않은 결심을 해야 변화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꾸준히 달리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태국 국경과 마주한 캄보디아 반티민쩨이주 시소폰이라는 크지 않은 도시다. 캄보디아 온 지 1년이 되어 간다. 여기서도 나는 한 달에 150~200km 뛴다.  더운 나라에서 이렇게 많이 달리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도 계속 달리겠다고 하니 다들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1년을 이렇게 달렸고 지금 나는 무척이나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달리면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운동복 반바지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 땀은 순수한 나의 노력이다. 그리고 뛰면서 마시는 생수는 꿀맛이다. 나는 여기서도 달리기가 있어  다이내믹한 생활을 하고 늘 신선한 사고로 생각한다.

   덥다고 안 뛰고, 춥다고 안 뛰고, 아프다고 안 뛰면 결국 나중에는 안 뛰게 된다. 나는 몸이 찌쁘드할 때, 생각할 게 많을 때 오히려 더 많이 달리고 더 고강도로 달린다. 달리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는 머리가 복잡할 때나 뭔가 일이 안 풀릴 때 해답을 찾기 위해 달린다. 꾸준히 달린다는 것은 자기의 정신세계나 신체 상태를 최적의 상태로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끔은 고강도로 달리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과거에는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건강이 유지된다고 생각했지만, 치매 예방과 심장·폐 기능 향상, 근골격계 기능 향상 등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스피드를 높이는 등 운동 강도를 높여야 효과를 본다"라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찰 정도로 운동을 해야 뇌가 자극돼 치매 예방을 기대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한다고는 하지만 힘들기 때문에 강도를 높여 운동하진 않는다. 하지만 운동을 통해 변화하는 자신을 찾고 싶다면 가끔은 고강도 달리기를 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에게 고강도 달리기란 10km를 1시간 이내에 달리는 것이다. 고강도 달리기는 숨이 차서 옆 사람과 대화를 하기 어렵고 몸이 뜨거워져 심박수 160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강도가 높은 만큼 운동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도 효과가 있다. 고강도 달리기는 뇌에 자극을 주어 신선한 마인드와 날아갈 듯한 신체 상태를 느끼게 한다. 자기 자신에게서 어떤 변화를 찾고 싶다면 그저 걷는다거나 천천히 뛰는 정도로는 힘들다.  

 

"눈을 즐기며 달리다"

 한 달에 150km 이상을 달리다 보면 코스가 중요하다. 달리면서 보이는 시야는 달리는 기분에 많은 영향을 준다. 주변 경치가 아름다우면 뛰는

두발도 가볍다. 같은 길을 반복해서 달리는 건 지루함이 있다. 하지만 매번 다른 곳을 달릴 수도 없으니 할 수 없이 어떤 곳은 자주 달리게 된다. 나는 탁 트인 시야, 시원하게 뻗은 도로가를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캄보디아 오기 전 나는 한강변을 끼고 여러 방향으로 많이 달렸다. 서울 한강변은 달리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지금 사는 캄보디아 이곳은 그런 좋은 환경은 없다. 그래서 나는 고강도 달리기의 일환으로 하프코스를 달릴 때는 새로운 길을 찾아 달리곤 한다. 매번 가던 길을 왕복으로 길게 달리는 것은 재미가 없다(그래서 나는 마라톤 풀코스도 왕복 코스는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곳을 멀리 달릴 때 모르던 곳을 지나며 느끼는 새로움은 오래 달릴 때 느끼는 피로를 어느 정도 상쇄시켜준다. 10km 이내는 한 시간이니 그냥저냥 달리지만 그 이상 거리는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훨씬 몸이 가볍다. 달리는 재미도 있고.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여러 방향의 길로 많이도 달려봤다. 태국 국경의 포이펫 방향, 앙코르 왓 시엠립 방향, 캄보디아 두 번째 큰 도시 바탐방 방향, 무너진 앙코르 유적지가 있는 태국 다른 국경의 반티츠마 방향... 덕분에 두발로 캄보디아의 많을 걸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삶은 달리기를 시작하며 완전히 바뀌었다. 달리기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 고강도 달리기를 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고 몇십 년 전의 나로 되돌려 놨다. 달리기 이후에 달라진 나의 삶은 성공적인 직장생활의 은퇴는 물론 지금 캄보디아에서의 제2 인생, 그리고 내년에 귀국하여 새롭게 구상할 제3의 인생을 기대하게 만든다. 나는 아직 청년이다. 사고방식이 실제로 그렇다. 과거의 경험을 무기로 내세워 그걸 욹어먹는 사람은 영원히 과거 속에 사는 사람이다. 재생산되지 않는 경험은 그저 낡은 과거의 기억일 뿐이다. 나는 창의력을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부단히 고민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정신세계의 재생산을 통해 얻는 새로움이 자기 발전의 근간이다.  달리기를 통해 나의 신체와 정신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래서 오늘나는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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