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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Jul 10. 2019

술 먹은 다음 날 달리기

어제저녁의 나를 잊고 원래의 나로 돌아오기 위해 달린다

  캄보디아에서 혼자 생활하며 가끔 술 생각이 날 때가 있다. 하지만 술을 거의 먹지 않는다.

  캄보디아 생활 1년 4개월, 내가 근무하는 대학교에서 한 학기만 강의하면 귀국이다. 캄보디아에서도 한 달에 150km 정도는 뛰고 있다. 달리기 덕분에 나는 덥다는 이 나라에서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어제저녁에 공원을 산보한 후에 근처의 맥주집에 갔다. 캄보디아 맥주는 아주 맛있다. 가격도 싸다(에 가게는 500원, 맥주집에선 1,000원). 오랜만에 맥주 생각이 나서 산보를 한 것이기도 다. 캄보디아 대부분의 음식점은 개방형 노천가게라 에어컨이 없다. 저녁이지만 후덥지근하다. 냉장고에서 꺼내다 준 시원한 '앙코르 맥주'를 단숨에 들여 마셨다. 뱃속이 짜릿하며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한 병에 330L. 여섯 병을 마셨다. 사실 이 정도는 내 주량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술을 안 먹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지.

  술은 왜 먹나? 사람마다 이유가 다르다. 나는 술을 조금 먹으면 잠을 잘잔다(아주 많이 먹으면 그 반대다. 앞으로 그런 일은 영원히 없을 거고). 먹은 다음날 증상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 속이 쓰리다는 사람 등등. 나는 대체로 후자 쪽이다. 쓰린 건 아니지만 속이 많이 울렁거리는 편이다. 어제 먹은 맥주의 량은 2,000cc.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전날 오늘아침 일찍 뛰기로 결정했었다. 술 한모금이라도 먹은 다음날 아침 무조건 운동화 끈을 매고 집을 나서는 건 꽤 오래된 습관이다. 어제 술을 많이 먹지 않았는데도 정신이 약간 산만하다. 아침 일어나 산만한 정신 상태는 딱 질색이다.

  의사들은 술 먹은 다음날 뛰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상승하면서 뇌에 영향을 미쳐 인지력이나 판단력, 반응력 등이 평상시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 여러 감각이 둔해진 상태기에 부상의 위험이 있어서 그렇단다. 물론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술이 덜 깬 상태라면 뛸 수 없다. 뛴다고 한들 숨이 차서 몇 발짝 못 가서 주저앉을 테고.

  하지만 전날 과음하지 않았다면 뛰어봐라. 뛰고 나서 개운한 아침을 맞을 수 있으니까. 이런  아침 나는 대개 10km를 뛴다. 5km는 뛴 것 같지 않아 신체의 변화되는 느낌이 없고 10km 넘게 뛰는 것은 전날 술 먹은 느낌이 약간 남아있는 상태라서 신체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출발 전 화장실에서 충분히 배변을 다. 장이 안 좋아서 그런지 술을 조금만 먹어도 다음날 화장실을 들락거리니 뛰기 전 배변 정리가 안되면 얼마 못속에서 난리가 난다. 그래서 항상 지도 챙긴.

  일주일에 두세 번 10km, 한 달에 한두 번 하프코스를 뛰는 나는 전날 맥주를 마셨다 할지라도 뛰는데 부담을 느끼진 않는다.

  뛸 준비를 마친 나는 평소 하프코스로 뛰던 반티츠마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앙코르 제국의 가장 위대한 왕 자야바르만 7세가 국토를 태국까지 확장하기 위해 태국 국경 인근의 반티츠마에 거대한 도시를 세웠다. 전쟁에서 죽은 그의 아들을 기리며. 태국 국경과 가깝기에 차량이 한적하여 달리기 좋다. 그래서 이 도로는 나의 하프코스 달리기 도로가 되었다.

  술 먹은 다음날 뛸 때 확연히 차이나는 점은 뛰기 시작하며 느끼는 호흡의 불안정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천천히 뛴다 아주 천천히. 그럼 서서히 자기 호흡이 돌아온다. 집에서 배변을 했는데도 1.5km 정도 달리자 뱃속에서 화장실 가자고 난리가 났다. 트마이 시장 안의 화장실을 알고 있기에 그곳으로 달렸다.

  내가 술 먹은 다음날 달리는 이유는 상쾌한 정신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다. 속이 불편한 상태는 상쾌한 정신 상태를 만드는데 적이다. 화장실을 나오니 날아갈 듯 기분이 좋다. 내가 살고 있는 시소폰 시내를 벗어났다. 3km를 달린 것이다. 이제 나의 호흡은 장거리 달리기에 안정적인 호흡이 되었다는 게 느껴진다.  조금씩 스피드를 올렸다. 5km 지점 도착하기 전 가게에서 박카스를 사 먹었다. 박카스는 캄보디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건강음료다. 평소에는 물을 마시지만 오늘 같은 몸상태에서는 박카스가 몸에 받는다. 

  이 구간에서 나는 5 km,10km 지점을 정확히 안다. 5km 지점에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달렸다. 컨디션이 올라와서 오히려 속도가 붙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는 원래의 신체 상태로 돌아왔다는 것을 체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덩달아 기분도 좋아졌다. 이 맛에 달린다. 내가 달리는 이유다.

  10km 지점을 지나 2km를 더 달렸다. 나는 술 먹은 다음날엔 시간을 재며 달리지 않는다. 맑은 정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체 컨디션, 호흡의 상태에 따라 아주 느리게 뛰기도 한다.

  12km 지점에서 돌아서 약간 느린 템포지만 꾸준히 달렸다. 내가 원하는 목적(몸과 정신의 컨디션을 술 먹기 전의 상태로 만들자)을 달성하니 24km도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나는 의사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뛰었다. 물론 어제 술을 과하게 먹지 않은 것도 이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뛰면서 나의 신체를 서서히 회복시키는 게 옳은 방법이라고 믿기에  뛰었다.

   나는 샤워 후에 콧노래를 부르며 카페로 향했다. 어제저녁에 맥주 먹으며 오늘 하루는 집안에서 누워 뒹굴자고 했는데 지금은 몸이 너무 가볍다. 머리도 맑아졌다. 카페에서 나는 어제 쓰다 남겨둔 글을 빠르게 써 내려갔다. 어제 고민스럽던 문장도 시원하게 펜이 나간다. 모든 게 달리기 덕분이다.

  달리며 얻는 행복은 건강만이 아니다. 호흡이 가빠지며 빠르게 순환하는 혈액은 나의 머릿속을 신선한 피로 바꾼다.

  쓰던 글을 멈추고 잠시 창밖을 보던 나는 '60대 젊은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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