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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Sep 02. 2019

마라톤은 하나의 인생

멀리 달리고 싶을 땐 철저히 준비하고 뛰자. 인생도 똑같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계획을 세우고, 많은 준비도 한다. 준비가 철저하면 시작의 반은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준비 과정이 힘들어 또는 희망을 현실로 착각하여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경우도 많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준비가 있어야 한다. 평소 꾸준한 연습과 그에 맞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 어느덧 캄보디아에서 일 년 반이 흘렀다. 이제 남은 기간이 6개월. 꾸준한 달리기로 더운 나라에서 병치레 한번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니 달리는 습관이 내 인생에서 가장 성공한 습관이 아닌가 싶다. 요즘은 캄보디아에 대한 글을 쓰는 중이라 시간이 많지 않아 한 달에 100km 정도를 달리는데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은 10km를 달린다. 가끔 좀 더 멀리 뛰기도 하고. 평소 이렇게 뛰더라도 30km를 뛴다고 하면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아마추어기 때문이다.

  매달 첫날은 달리면서 의미를 부여한다. 이달에 중요한 일을 달리며 생각하고 한 달의 행복을 기대하는 맘으로 달린다. 9월의 첫날을 시작하며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하프코스를 뛸 요량으로 밥을 세 수저 김에 싸서 먹었다. 10km 달릴 때는 보통은 아무것도 안 먹고 뛴다. 하지만 20km 뛸 때는 배가 고프다. 그래서 뭐라도 좀 먹는다. 20km 뛸 때는 배고픈 것 외에는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가끔 하프코스 거리를 2시간 이내로 전력 질주할 목적인 때는 준비는 달라진다. 2시간 이내로 달리는 것은 2시간 10분에 달리는 것에 비해 체력소모가 크기에 출발 전 스트레칭이나 스태미나가 있어야 한다. 그만큼 상황에 따라 준비를 철저히 해야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7시에 출발해서 반티츠마 방향으로 뛰었다. 오래 달리기에 이쪽 길이 차량도 적고 도로 사정도 좋다. 반티츠마는 가장 화려한 앙코르 제국을 연 자야바르만 7세가 전쟁에서 죽은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12c 지은 사원이다. 크기가 엄청나서 작은 앙코르톰이라고 불린다. 그 성안에는 또 다른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다 무너져 내려 복원조차 힘들다.

무너진 작은 앙코르톰, 반티츠마 사원

  내가 사는 세레이소폰시에서 반티츠마까지는 68km. 북쪽으로 이어진 이 길을 계속 가면 태국 국경이다. 오지인 이 지역은 십 년 전 중국의 원조 자금으로 길이 놓여 그나마 나졌다. 시공은 한국 기업 한신공영에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도로포장 상태가 매우 좋다. 길이 좋으면 달리는 기분이 더 난다.  

길 길 길 - 희망 꿈 도전

  아침 공기가 신선하다. 9월의 첫날을 시작하는 기분이 좋다. 이런 기분은 나 자신을 매우 행복하게 만든다. 나는 요즘 집에서 중얼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되도록이면 좋은 생각만 하려 하고, 좋은 일은 더 부풀려 긍정의 힘으로 만드려고 한다. '오늘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난 정말 행복하다~~'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린다. 그럼 실제로 내가 그렇게 된다. 나는 지금 달리면서 '오늘 기분 정말 좋다~~'라는 말을 수없이 내뱉으며 달린다. 행동은 생각하면 그렇게 변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그러나 의외로 답은 간단한 것이다

  10km 지점까지는 내가 자주 뛰어 눈에 익다. 어디에 가게가 있어 물을 사 먹을지도 안다. 나는 계속 앞으로 더 뛰기로 했다. 달리는 몸과 마음이 모두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년 1월에 128km 앙코르 울트라마라톤을 참가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귀국을 두 달 남기고 나는 앙코르 유적과 그 외곽으로 도는 128km를 달리며 캄보디아에서의 2년을 의미 있게 마무리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는 4달 남은 기간에 나는 30km 이상의 장거리를 최소한 서너 번은 뛰어야 한다. 오늘 계획이 없었지만 내친김에 뛰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오늘 30km 뛸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막연히 괜찮겠지 하는 맘으로 뛰다가 더 뛰기로 한 것이다.

  10km 지나면서는 가게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뛰어서는 처음 가는 길이니까. 그런데 정말 가게가 없다. 목이 마르다. 그나마 길가의 아름다운 풍경이 위안이 된다.

캄보디아의 자연

  캄보디아는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의 모습은 한껏 자연의 정취를 더해 준다. 가끔 달리다 보면 길을 건너는 소를 만나기도 한다. 소를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도로에 많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표지판이라 이채롭다.

소 표지판

   자연이 아름답다고 목마름까지 해소시켜주진 않는다. 갈증을 느끼며 계속 달렸다. 이쯤에서는 가게가 있지 않을까 하며 달리는데 도대체 없다. 지금 나는 몇 km가 아니라 가게를 찾느라 달리고 있다. 구글 지도로 보니 15km를 달렸다. 가게가 안 나오니 어쩔 수 없이 더 달려야 했다. 저 멀리 아주머니 한분이 골목길에서 나온다. 아마 근처에 가게가 있을법하다. 구부러진 길을 도니 가게가 보였다.

캄보디아 전통 수건 '끄러마'를 두른 농부 아주머니

  500L 물 개를 사서 하나를 단숨에 마시고 하나는 머리와 목덜미에 뿌렸다. 피로가 가시는 듯하다. 달리면서 느끼는 많은 행복 중 물 맛도 있다. 평소에 느끼지 못하던 물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세상에는 가볍게 여길 게 하나도 없다. 뛰면서 겸손을 배운다.

  나의 신체는 준비한 만큼만 허락한다. 준비도 없이  십km를 달린다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준비하고 달린다면 죽을 수도 있는 순간이 어마어마한 인생 반전의 순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평소 15km는 큰 준비 없이도 달렸기에 나는 물을 마시고 가게를 반환점으로 돌았다. 남은 거리가 15.5km. 오토바이에 한가족이 살면서 이곳저곳 떠돌며 물건을 파는 이동 상점이 오기에 반갑게 인사를 다. 오토바이에 딸린 뒷짐 가운데 작은 공간이 있다. 그곳이 그들의 집이다. 웃으며 인사를 건네니 안쪽에서 아이들이 '헬로'하며 외친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낭랑하다. 그 목소리가 나에게 여유를 준다.

오토바이 이동 상점

  오토바이들이 내가 달리는 갓 길을 쉴 새 없이 질주한다. 오토바이는 캄보디아에서 가장 흔한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장거리 이동수단으로도 사용되기에 교통사고가 많이 난다. 캄보디아에서 달리면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이 오토바이다.

  캄보디아는 국도를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기에 길가에 학교가 다. 이런 시골에는 초등학교만이 있다. 초등학교의 모습은 나의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시골 초등학교

  조금 더 달리니 프놈펜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은 20km 달릴 때 반환점으로 삼던 곳이다. 나는 지금까지 21km를 달렸다.

프놈펜을 알리는 표지판

  여기서부터 달리면서는 목이 말라 문제가 될 일은 없다. 나는 이미 가게가 있는 곳을 알고 있고 가게 간격이 멀어봐야 3km다. 그런데 갈증보다는 허기가 느껴지면서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뛰기 전 밥 세 수저 먹은 게 전부다. 배고플 수밖에 없다. 준비란 별게 아니다. 우선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지 기본 계획이 충실해야 그다음에 공격적인 전략을 펼 수 있다. 나는 오늘 기본을 무시했다. 배가 고파 기운이 빠지니 빨리 뛸 수가 없다. 20km 이상을 뛰고자 할 때는 두세 시간 전에 충분히 먹어야 한다. 물을 많이 먹는다고 허기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보통 연습으로 하프코스까지만 뛴다. 이때는 배고픈 것 정도는 참을 수 있다. 그리고 42.195km 대회 참가시는 배고픔 때문에 걱정할 건 없다. 주로에 충분히 먹을 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습으로 20km 이상을 뛰고 싶다면 사전 충분한 영양섭취 및 간단한 간식을 준비해야 한다. 달리는 두 발이 걷듯이 느려진다. 여기서 방법은 없다. 집까지는 가야 하니 어떻게든 참아야 한다. 이것도 울트라마라톤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뛰었다. 얼마 지나 나는 다행히 행운을 만났다. 길거리 옥수수 아줌마. 탄수화물 공급이 시급했던 나는 옥수수 두 개를 걸으면 먹었다.

옥수수

  허기가 좀 가셨다. 이렇게라도 배를 채웠기에 다행이다. 문득 운을 기대하며 준비를 소홀히 했던 나의 젊은 시절이 생각난다. 지나고 보니 그런 기대는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었다. 사회는 엄연한 경쟁이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걸 알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오늘 나는 또 한 번 실수를 반복했다.

  사람 발의 모양은 다 다르다. 나는 풀코스 마라톤에서 매번 오른쪽 엄지발가락과 왼쪽 네 번째 발가락이 아파서 고생한다. 특히 왼쪽 네 번째 발가락 길이가 좀 길어 오래 달리면 운동화 앞 끝에 부딪혀 무척 아프다. 마라톤 선수들은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을 별도로 제작한다. 내가 선수도 아니고... 아마추어야 있는 신발 사서 신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근데 아픈 곳은 사전에 테이핑을 하면 좀 낫다. 그리고 발바닥과 발등, 발목 테이핑은 발을 안정시켜주어 뛰는 감이 무척 좋다. 나는 오늘 소중히 아껴야 할 내 두발에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발가락이 아파서 절뚝거리며 다. 20km까지 2시간이었던 기록은 25km를 넘기면서는 현격히 떨어졌다. 준비 없이 달리는 대가였다. 힘들게 달리는데 저 멀리 시내 스와이산의 탑이 보인다. 4km 남았다는 표시다.

사원 입구 문

  시내와 가까워지니 사원의 문이 시골의 작은 사원과 다르게 화려하다. 달리면서 무척 많은 사원 문을 만났다. 사원은 대개 길 안쪽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다만 길가의 사원 문(캄보디아 말로 '고뿌라'라고 한다)의 규모를 보면 사원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갈수록 크기만 강조하는 캄보디아 불교 사원이 한국 대형 교회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세레이소폰 시내는 반티민쩨이주의 주도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요즘 이곳에도 에어컨이 있는 좋은 시설의 커피숍이 들어서고 있다. 31km를 달린 내 피부는 땀이 소금이 되어 하얗게 변했다. 얼른 샤워를 하고 시원한 커피숍에서 아이스 모카커피를 마시고 싶다. 하지만 나는 시내 종착점에 도착하면 매번 주유소에 딸린 시원한 이곳 편의점에서 포카리스웨트를 마시며 잠깐의 휴식을 취하곤 한다. 이온음료는 다른 데는 잘 팔지 않는다. 오늘 달리며 500L 물을 섯 개 마셨다. 속이 아직도 출렁거리는 것 같다. 이온음료 대신 콜라를 골랐다. 그래도 콜라는 톡 쏘는 맛에 목 넘김이 좋다.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

 준비 없이 행동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오늘 나는 그러한 달리기를 했다. 10km 달릴 때의 마음이나 신체 상태가 30km 달릴 때와 어찌 같겠는가? 신체의 반응(허기짐, 발가락 아픔 등) 또한 틀릴 수밖에 없다. 10대 인생, 20대 인생, 30대 인생, 40대 인생, 50대 인생, 60대 인생의 목표나 경주해야 할 노력이 다르듯이 10km, 20km, 30km, 40km에서도 준비가 달라야 한다. 달리기를 통해 인생을 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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