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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Jan 11. 2021

2021년의 첫 태양

새해 첫날 달리기

  코로나19가 금방 끝날 것 같더니 1년이 다되어 간다. 작년 코이카 해외봉사단 2년의 캄보디아 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때가 3월, 그때 막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귀국 길에 애를 먹기도 했지만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했는데 그 별거 아닌 게 별것이 되어 1년을 힘들게 보냈다. 외출이나 사람 간 접촉을 금지하고 있으니 길거리는 썰렁하고 자영업자들의 죽어가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린다. 겨울이 되어 심해진 코로나 환경은 우리 모두를 더욱 움추러들게 한다.

  함께 달리던 마라톤 동호회도 멈춘 지 오래다. 겨울에 추워 달리기가 쉽지 않아 그랬지만 코로나로 인해 만남을 가급적 피하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TV에서는 건강을 위해 실내에서 홈트(홈트레이닝)라고 해서 이렇게 저렇게 운동해 보라고 하지만 야외를 달리는 기분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혼자 달린다 마스크 쓰고. 추우니 철저히 무장하고서. 두껍게 껴입은 옷은 금방 땀에 젖어 거추장스럽다. 하지만 처음부터 얇게 입을 수는 없으니 겨울에 속으로는 땀이 더 난다. 엄동설한에 누구와 같이 달리자고 얘기하기도 뭐하니 늘 혼자 달린다. 얼마 전 전에 살았던 남한산성 근처의 아파트로 다시 이사 오고 나서는 남한산성 수어장대까지의 달리기 코스가 나 혼자 달리는 주로가 되었다. 남한산성까지는 오르막으로 집에서부터 6km 정도 된다. 오르막을 달리는 것은 힘들지만 자신감이나 강한 정신력을 기르는데 좋은 점이 많다. 빠르게 달릴 수는 없지만 쉬지 않고 달린다는 각오로 남한산성을 향해 달린다. 그때마다 느끼는 희열은 평지를 달릴 때와 많이 다르다. 특히 산정상에서 산아래 펼쳐진 광경을 보며 완주의 기쁨을 맛보는 것은 나를 매번 산을 향해 달리라고 유혹한다.

  작년의 새해 첫 태양은 캄보디아에서 맞았다. 그때 나는 캄보디아에서의 2년을 돌아보며 상념에 잠겼고 곧 돌아갈 한국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며 새로운 다짐을 했다. 그리고 다시 맞은 새해... 지난 1년은 우리 모두에게 코로나19가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안겨줬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되지 않아야 했기에 서로 만나는 것을 꺼려했던 1년이었다. 런 상황은 최소한 올해까지도 큰 변화가 없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전국의 모든 해돋이 행사도 멈췄다. 하지만 나는 2021년 첫날의 해를 보고 싶었다. 2021년 1월 1일 그래서 나는 어둠이 가시지 않은 6시 집을 나와 남한산성을 향해 뛰었다. 매서운 강추위로 아침의 온도는 영하 10도를 밑돌고 있었다. 볼이 얼어붙고 입김이 안경을 가려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주 뛰던 길이라 위로위로 향해서 뛰었다. 요즘은 아침 7시가 되어도 어둑어둑하다. 주변이 어두우니 천천히 뛰어야 한다. 그래도 해가 뜨는 시간에는 산 정상에 올라야 해돋이를 보니 숨 가쁘게 뛰었다. 예전 같으면 이 길은 해돋이 차량으로 꽉 막혀 있을 그런 길이다. 지금은 차가 없다. 가끔 올라오는 차량의 전조등이 나를 놀라게 할 뿐이다.

  남한산성의 4개의 문 중에서 가장 화려한 문이 남문(지화문)이다. 성남에서 올라오면 만나는 문이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수어장대, 우측으로 가면 검단산 정상이다. 수어장대는 매년 해돋이 하는 장소다. 지금 이 길은 공사 중으로 진입이 막혀있다. 나는 남한산성 벽을 따라 우측으로 달렸다. 산성 벽을 따라 달리다 보면 조선 인조시대 굴욕의 역사가 떠오르고 성벽에서 추위에 떨며 경계근무를 섰을 민초병들의 모습에 맘이 짠해진다. 짚신을 신어 발가락은 동상에 걸려 얼고, 차가운 주먹밥으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지킨 성벽이었지만 40일을 버티던 인조는 남한산성을 내려와 삼전도에서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성벽을 따라 달리는데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오늘의 태양은 굴욕의 역사를 딛고 뜰 것이고, 코로나 질병도 이겨내는 염원을 담고 떠오를 것이다. 나는 성벽에 기대어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렸다. 칼바람이 몰아치지만 떠오르는 태양에 대한 기대로 추위를 느낄새 없다.

  아침 태양이 떠오르는 주변은 온통 붉은색이다. 구름 사이에 드러나는 붉은색은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면 누구나 소원을 빈다. 나 또한 그렇다. 우리 모두의 안녕, 행복, 건강. 아내와 두 딸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내 맘속의 영원한 태양이다. 새해 첫날의 태양은 남다름이 있다. 엄동설한의 강추위를 뚫고 달려와 맞는 태양이기에 나 스스로도 대견하다. 그러기에 자신에게 자꾸 뭔가 좋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그것은 아마 올해도 뭐든 잘해나갈 거라는 자신감 이리라. 산성 주변이 적막하지만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있어 외롭지 않다. 저 태양은 올해 내내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순간 내 몸도 태양과 같이 뜨거워짐이 느껴진다. 강추위를 헤치고 달려와 맞는 해돋이의 의미, 새해 첫날 자신에게 다짐하며 약속하는 것들, 그것은 희망이다. 달리기를 통해 내가 느끼는 행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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