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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중에서
두번째로 어려운 책(2)

문학이란 무엇인가? - 장 폴 사르트르

by 허무

내가 생각하는 문학 비평이라는 장르는 문학을 지나치게 개인적 사상, 이념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과 평가를 내리는 것이었다. 개인적 사상이나 이념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가는 순간, 일단 타인의 이해를 요구하기는 힘들어진다. 개인의 생각을 낱낱이 파훼하고 이해할 수 있는 타인이 존재 가능할까?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문학 작품들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결코 문학 비평만큼은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비평가들의 생각을 엿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대부분 몹시 광범위하고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요구하는 글 들이라 차마 내 수준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목에서처럼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littérature?)』를 보는 순간 한 페이지, 한 줄을 읽는 것 조차 숨막힐만큼 힘들었다. 희한하게도 내가 이 책을 구입한건 아마 5~6년 쯤 전으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에 왜 이 책을 골랐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심지어 사두고서도 '어렵다', '눈에 안들어온다'는 핑계로 제대로 읽지도 않았던 것이다. 책장에 자리잡고 먼지만 폴폴 쌓이고 있는 동안 아주 간혹 시도해보다가 다시 책장에 꽂아두고 했던 책을 이번엔 피할 수 없이 열심히 읽어야만 했다. 참고로 내가 제일 어렵다고 생각한 책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다.


최대한 내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한 글의 내용을 짧게 요약해보자면, 사르트르는 철저하게 자신의 이념적, 철학적 바탕을 활용해서 문학을 정의하고, 범위를 한정하고, 문학의 역할과 작가와 독자 간의 상호관계, 그리고 역사적인 문학의 흐름을 살펴보며 앞으로 어떤 문학이 인류에게 필요할 것인가를 철학적, 이념적 사상에 기반하여 서술하고 있었다.


먼저 문학의 정의와 범위를 정하는데 있어 사르트르의 말에 따르면 문학은 음악, 미술 처럼 단순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수단>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문학이란 반드시 독자를 겨냥해야 하고, 또 독자의 요구에 답하는 것이 올바른 창작이라고 말하면서 심지어 시 마저도 문학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는데, 미술이 '색채'를, 음악이 '음율'을 도구로 하여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는 '언어'를 <도구>로 하여 <이미지화> 할 뿐이지, 독자에 대한 어떤 메세지의 전달은 아니라는 이유에서이다. 3번 째 장에서 언급하는 내용이지만, 문학이란 작가의 사상을 포함하며 독자로 하여금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긍정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학의 역할에 대해서 사르트르는 지극히 변증법적 역사관을 문학의 역할에 접목시키고 있다. 변증법적 역사관을 짧게 요약하자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투쟁으로 인해 새로운 계급 정의가 이루어져 역사는 발전하게 된다는 방식이다. 이 때, 문학은 피지배계급에게 사회의 부당함과 부조리함을 알리고 투쟁의식을 고취하는데 그 역할이 있다고 하였다.


사르트르는 저서 『구토』에서도 주인공 앙투안 로캉탱이 부조리와 불안으로부터 유발된 '구토(병)'을 '글쓰기'를 통해 치유할 것이라 믿는 부분을 드러내며, 작가가 글쓰기를 통한 부조리나 불안으로 부터의 치유적 역할에 적극적이어야 함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이런 작가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측면은 사르트르의 철학적 배경, <실존주의>적인 접근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이 쯤에서 사르트르의 철학적 배경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데, <실존주의>로 유명한 철학자로서의 사르트르는 역사적으로 소위 '좌파' 예술가로 분류된다. 그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회발전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투쟁을 통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간다는 변증법적 역사관이 본 저서에서도 곳곳에 드러나 있다. 또한 프랑스의 역사에 한정하여 이야기하고 있지만, 18세기 시민혁명의 성공 이후 부르주아 세력이 역사의 전면에 대두함에 따라서 지나친 유물론적으로 사회가 변질된 것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사르트르의 바로 앞 세대의 철학적 주류가 바로 <공리주의> 였다.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여기서 감히 내가 언급하기에 무리가 있어 짧게 요약하자면, 결과주의적인 입장으로 판단을 하는 철학적 사유로써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이 공리주의를 가장 대표하는 말이다. 단순히 비판하자면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소수는 희생되어도 무방하다고 볼 수 있을지가 문제인 셈이다. 여하튼 이런 공리주의가 철학적 사조로써 그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을 무렵, 사르트르는 공리주의에 상당한 회의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결과로 결국 개인은 고독한 존재이며, 나의 존재는 유일무이하며 나의 인생은 내 스스로가 자유롭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실존주의>적인 입장을 강하게 견지하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즉, 사르트르는 문학(작가)의 역할에 대해서 사회의 부당함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역할을 하여야 하며, 그런 역할들이야말로 문학(작가)의 가치를 실존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라 보았다. 또 그런 것만이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라고 단호히 정의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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