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또는 변명의 시작?
※ 대문 그림은 ChatGPT 작품입니다.
연재 시작에 앞서...
나름 당차게 '출사표'를 던지겠다는 포부를 안고 한참을 글을 다 쓴 시점이었다. 내 브런치 스토리에 다녀간 다른 작가님들의 페이지를 방문했다. 보통 기존에 활동하시던 작가님들은 쌓인 글들이 많아서 한번에 다 읽기가 힘들어 매일매일 조금씩 읽어나가곤 한다. 그렇게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보니, 정말 내 글솜씨는 솜씨라기에도 너무 한심한, 보잘것 없는데다 그런 주제에 '감히 출사표? 등단?'이라니. 건방지고 가소롭게까지 느껴져 수없이 글을 삭제하고, 연재취소를 고민했다.
그렇지만 결국, '이게 나의 현 주소'인데 뭘 감추고 더하랴.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듯이 그냥 시작해보고자 두 눈 질끈 감고, '발행'버튼을 누르고 있음을 읽으시는 분들께선 십분 감안해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린다.
1. 왜? 하루키가 되고 싶은걸까?
무라카미 하루키, 참 오래 읽어온 소설가이다. 물론 하루키보다 유명하다거나 위대한 작가들도 얼마든지 많지만, 그저 이 브런치 북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내가 소설을 쓰고 싶어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하루키에게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하루키가 되고 싶어'한다.
한참이나 책을 읽지 않던 시기가 지나고 어느 날, 지하철과 버스로 출퇴근을 왕복 세시간 가까운 시간을 하면서 핸드폰 게임만 하고 있다는게 너무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졌다.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되어 있던 책을 집어들고 출퇴근을 하면서 생각보다 꽤 많이 읽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시작한 하루키의 소설들. 문체가 간결하면서도 필요한 디테일은 놓치지 않는다. 하루키의 문장들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나는 그것을 마치 '시크함'같은 느낌과 비슷하게 받아들인다. 항상 문장들은 과하지 않다. 그렇지만, 불친절하지도 않다. 필요한 만큼만 명료하게. 그래서 마치 내가 그의 글을 대하는 모습은 '서울에 갓 올라 온 시골 촌놈'이 놀라 두리번거리며 서울 사람들을 흉내내려고 애쓰는 모습과 비슷할 것이다. '저렇게 글을 쓸 수 있다면 정말 멋있겠다'라는 막연한 동경이 가득 차 올랐다. 그러고도 소설을 딱히 쓰진 않았지만.
과거 고등학교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에 논술이란 평가가 있어서 신문 논설도 베껴쓰고,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무슨 책이 좋다더라, 하면서 다들 꽤나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 척 했다. 나는 당시 그런 논술용 노트를 친구들보다도 몇 권을 더 많이 갖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수업시간에 딴 생각하면서 쓴 시나, 수필, 논설 비스무레하게 흉내낸 시론, 소설 습작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소설은 참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는데, 우선 시간을 들여 꾸준히 써나가지 못하다보니 스토리의 완결성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오늘 생각했던 스토리가 내일은 까맣게 지워져있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가 결국 소설은 타인의 영역처럼 멀게 느껴졌던 것이다.
끄적대는 수준이었지만, '손에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던 시절에조차 쓰기 힘들었던 소설을 지금에 와서 써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하루키처럼 글을 써보고 싶었다. 내가 쓴 문장도 누군가가 보고 감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욕심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30대 후반에서야 소설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2. 나는 하루키가 되고 싶어서 이제까지 뭘 했나?
아무것도. 정확히는 '말'만?
여담이지만, 올해 초부터 방송통신대학교 문예창작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당연히 '소설창작세미나'를 듣고 있는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첫 수업에서 교수이신 소설가 백수린 교수님의 말씀이 소설가가 되려면 몇 가지 각오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받아들인대로 요약해서 적어보자면,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은 충분히 확보가 가능한지, 작가로서 성공하기 전까지의 배고픔을 견딜 수 있는지, 그리고 창작에 몰두하면서 다른 사회활동이나 여가 생활 등 상대적으로 제약이 생길 수 있는데 그로 인한 작가로서의 고독을 견딜 수 있는지 등을 말씀하셨다.
일단, 나는 시간은 충분히 가능했고, 요즘은 거의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하고 있어서 고독은 나의 동반자와도 같았다. '배고픔'은 현실적인 부분이라 확답할 수 없었다. 경기를 심하게 타는 전 직장을 그만둔 지도 1년도 넘었고, 마흔 중반에 가진 기술도 없이 직장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기에 그냥 '모 아니면 도' 였다.
'굶어 죽든지, 작가가 되든지 해보자'
딱 이 생각으로 시작하기로 생각했다. 정확히 시작은 24년 여름이었다. 당시 통신대 학부생이던 나는 학교 홈페이지에서 '문학상'공모를 보았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냥 소설을 써 내고 싶었다. 때마침 내가 구상하던 스토리가 있었다. 그것을 최대한 버무려 수없이 퇴고했고, 겨우 완성해 제출했다. 제출하고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전혀 수상은 기대하지 않았다. 정말 궁금했던 건 내 글을 읽은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었다.
의외로 결과는 '당선'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층간소음만 아니었다면 혼자 팔짝팔짝 뛸 뻔 했다. 글 쓰는 걸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글을 써서 상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고등학교때 전국 고교생 대상 독서감상문 공모전이 있었는데, 지정된 책이 뭔지 기억도 안나지만 나는 열심히 읽고 써냈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나와 친한 반장의 부탁으로 순진하게도 나는 내가 쓴 것을 기반으로 딴에는 이리저리 손봐서 티나지 않게 한편을 더 써서 반장에게 주었다. 최우수상이 국무총리상이었나? 여하튼 반장은 상장 수여식으로 시청인지 어디 관공서 까지 다녀왔었다. 그 땐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지금 입시제도를 생각해보면 꽤 큰 문제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여하튼 그렇게 남을 상 받게 해준 일 외에는 예전 직장에서 회사복지차원으로 백일장 같은 것을 열었을 때 당선되어서 본부장쯤 되는 분과 식사를 한 번 한 것 외에 정식으로 어떤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실, 이번 당선 사실과 소정의 상금은 당연히 기분이 좋았지만, 정작 내 글에 심사평은 예상외로 짧아서 서운함마저 들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그렇게 아주 작은 상이지만, 상을 받고 나니 도전의식이 마구 샘솟기 시작했다. '내가 쓰는 글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정말 '문학'으로 어떤 가치가 있을만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대학원 진학까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제대로 된 작동원리를 알기 전까지 나는 즐기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뭐든 내 눈으로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내 손으로 분해해봐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망가진 장난감이며 전자제품도 부지기수지만. 내가 모르는 걸 덮어놓고 다음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소설, 글쓰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만 했다. 단순히 많은 책을 읽어서 되는 것이라면 시간을 들여 그렇게 하겠지만, 그렇게 많은 책을 읽기만 한다고 해서 좋은 소설, 좋은 글을 쓰는 법을 터득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문학도 예술처럼 정해진 공식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기본기라는 것도 있고 내가 모르던 많은 부분들을 더 깊이 알 수 있게 될 것이란 믿음에서였다. 아직은 1학기 중이라 여전히 암흑천지 같지만, 단 한가지, 목표는 더욱 뚜렷해졌고 읽어야 할 책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적어도, 어리석은 나는, 이렇게라도 '하루키'가 되기 위해 준비해왔고, 계속 도전하고 싶다.
3. 앞으로의 계획은?
이 연재의 종착역은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는 '등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어서 준비하면서 그 과정을 쭉 기록해서 나와 같은 처지 또는 다른 처지의 다른 작가지망생 분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 시작한 연재이다. 그래서 언제 내가 등단할 수 있게 될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 내 도전의 기록들을 남기려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당히 규칙적인 일과를 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침형 인간'이나 '건강의 비결' 같은 것 보다도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매일 쓰기' 였다. 매일 같은 시각에 일정 시간, 일정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것이다. 그의 단편집 『렉싱턴의 유령』에 따르면 그는 매일 200자 원고지로 약 20매의 분량을 쓴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매일 한글 워드 기준으로 1장 씩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간단해 보여서 정한 룰인데 지금까지 생각보다 지켜지기가 쉽지 않았다. 앞으로도 어기는 경우도 생기겠지만, 이렇게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상 조금이나마 더 경각심을 갖고 지키려 노력할 것이다.
결국 이 연재는 내가 '소설가'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를 기록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그것이 결말이 등단이라는 해피엔딩일수도 있고, 모래성처럼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것처럼, 일단 저질러 보는 것이다. 미래에 '소설가가 된 나' 또는 '소설가가 되지 못한 나',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그저 이 때에 나는 이렇게 살았구나 하고 투명하게 내 삶을 돌아볼 계기라도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