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한,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
나는 작년, 정확히 올해 2월에 방송통신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지금은 비록 문예창작 대학원과 작가 지망생이지만, 불과 몇달 전까지만해도 엄연히 법학도였고, 법 전공자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인문학 위주의 책들을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지만, 문학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법학과 경제 관련 서적들을 주로 보게 된다. 물론, 이번에 본 김진한 변호사의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는 단지 그런 이유에서 보게 된 것은 아니었다.
오늘 이야기하는 책의 저자, 김진한 변호사는 아마 12월3일 계엄 이후, 탄핵 판결까지의 뉴스나 매체 보도 등에서 낯이 익은 분들도 꽤 있으실 것이다. 나 역시 그를 처음 보게 된 것은 뉴스 보도였다. 수방사사령관이 탄핵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날이었다. 그 사령관은 향후 자신의 지위나 평판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진실을 말하면서도 망설임이 없었고, 떳떳하고 진실된 모습으로 끝까지 증언에 임했다.
내가 인상깊게 본 것은 증인 신문을 마친 후 국회측 변호인의 인터뷰였다. 국회측 변호인은 거의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그 사령관의 소신있는 증언에 '참 군인을 보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잡혔다.
'저렇게 감상적인 변호사도 있구나. 저래도 되나?'
은연중에 변호사란 약간은 냉혈한 같은 느낌을 받았었나보다. 또는 치열한 법적공방같은 것들을 떠올리면 뭔가 감정적인 것들과는 거리가 느껴졌던 것 같다. 아니면 나 자신이 법을 전공했으면서도 법이 차갑고, 딱딱하게만 느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어설프게라도 법을 조금은 들여다봤다는 나 조차도 이런 법에 대한 선입견들을 갖고 있기 마련인데, 일반 시민들의 경우엔 얼마나 멀고, 어렵게 느껴질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알려주기 위한 지침서가 아니라, 우리가 '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전문용어들이 난무하고 어려운 한자어로 도배된 법전이나 법 해설서와는 거리가 멀다. 작가는 법의 연원부터 역사적 변천과정들을 소개하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던 여러 사례들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또한 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형량(衡量)'의 문제로 우리가 아는 '벌을 내릴 때의 크기나 무거운 정도'를 뜻하는 형량(刑量)과는 구별되는,
문제가 되는 사안을 다양한 관점에서 고려해 가장 적절한 결정을 찾는 작업을 지칭하는 법률 용어
이다. 단어를 그대로 풀이하자면, 추측하여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형량이 중요한 이유에 관해서는 저자는 법이 '입법자가 만든 일반적, 추상적인 규범'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국가의 주인인 우리 국민들이 법에 대해서 더 잘 알아보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그런 모습이 법의 추상성을 그나마 해소하고 보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작가는 역설하고 있다. 이런 작가의 주장에서 나는 작가, 김진한 변호사의 법과 시민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상향에 대한 진취적 의식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법의 '형량' 외에도 학문적으로 법의 해석 방법이나 민법, 형법 등 각 법들의 대전제라고 할 수 있는 원칙들도 소개하고 있다. 학부생 때 이 책이 있었더라면 좀 더 이해가 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로 설명이 잘 되어 있다. 감히 작가의 생각을 넘겨짚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책은 어떤 지식의 전달 보다는 감정을 불러 일으키거나 태도를 변화시키는 그런 쪽에 좀 더 중점을 두지 않으셨을까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꼭 지금 법조계로 진출을 준비하는 로스쿨 학생들이나 법조계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고 많은 것을 느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 중간중간에 독일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작가가 직접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보고 배우고 느낀 점들과 험난한 역사적 여정을 거쳐온 독일 법역사를 많이 다루고 있다. 막상 독일은 내 입장에서는 '선진국의 표본'같은 느낌과 동시에 전범이라는 역사적 오점을 동시에 지닌 나라라 생각된다. 그런데 법의 역사로 보자면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나치의 집권 시기를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독일의 저력이 제대로 표현된다. 그들은 잘못을 뛰어넘어 재발을 막고자했고, 근원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애쓴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법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지금의 독일 법문화를 이루어낸 것이라 이야기한다. 독일이 절대선은 아니겠지만, 정말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특히 현재 혼돈의 대한민국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도 이 책은 지금 시점에 우리가 국가를 바로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다.
평소 정치적 사안이나 사회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면, 나는 늘 “너무 이상적이다”,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같은 부정적인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적어도 법에 관해서만큼은 내가 평소에 품어왔던 생각들과 저자의 신념이 놀라울 정도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깊은 공감과 안도, 그리고 벅찬 흥분을 느꼈다.
게다가 그 생각들이 단지 감정적 공명이 아니라, 훨씬 더 논리적이고 깊이 있는 방식으로 풀어져 있다는 점에서 마치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TV에서 기자회견을 본 이후, 이미 저자에 대한 신뢰가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그 신뢰는 더욱 단단해졌다.
한편으론 칭찬 일색의 글이 되어버렸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함께 읽고, 저자의 따뜻한 시선과 법에 대한 깊은 애정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자의 진심 어린 메시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 우리가 법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다듬어갈 수 있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기를 감히 바라본다.
그리고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하며,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