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필일낙(日筆日落)

하루하루 쌓아가기

by 허무

이틀 정도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우선 목표는 200자 원고지 기준 80매 내외의 단편 두 편을 완성해야 한다.

대략 공모전의 평균 기준이 그러했다.


지금까지는 절반도 채 못 쓴 한 편과, 이제 막 시작하려는 한 편뿐이다.

그나마 반 정도 쓴 것은 과제 제출에도 써야 해서 초단편(30매 내외)로 다시 각색해야 한다.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는 더욱 진도가 안 나가는 느낌이다. 진도가 안 나간다기보다는 정확히 말해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쓰면 유치해 보이고, 저렇게 쓰면 격에 맞지 않고. 물론, 어디까지나 내 기준일 뿐이다.

남들에겐 보인 적도 없는 글이라 어떤지 도무지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소설 쓰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스토리가 떠오르면 그 스토리를 시놉시스로 만들어둔다. 시놉시스라니까 뭔가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그냥 줄거리와 필요한 설정들, 장면들, 때로는 주제의식 같은 것들을 두서없이 막 적어본다.

그런데 나는 결말부터 생각한 뒤, 거꾸로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곧장 결말에서 시작까지 쭉 이어지는 형태는 아니더라도 반드시 결말만큼은 먼저 정해져야만 글을 완결시키기가 수월하게 느껴져서이다.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막 이리갔다 저리갔다 결국 끝맺지 못하고 엉뚱한 데 처박혀버리는 경우만 겪다 보니 아예 결말을 정하고 시작하는게 편하다.


써놓은 부분까지 수도 없이 마음속으로 다시 읽고 또 읽어본다.

그렇게 고쳐도 또 마음에 안드는 부분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이미 작문에 관해 널리 퍼진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밤에 쓴 편지'처럼 읽는 시간마다 글이 다르게 다가온다.

밤에 신나서 한 페이지를 써놓아도, 다음날 아침이면 체에 거른 듯 반 페이지만 겨우 남는다.


또 최근에는 안 좋은 버릇이 늘었다.

다른 사람의 글과 비교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그냥 읽고 감상하는데 그쳤다면, 지금은 문장을 하나씩 뜯어서 내 것과 비교를 한다. 잘난 척하며 다른 사람의 글을 깔보려는 건 절대 아니다. 비교를 거치면 열이면 열, 내 글에서 티끌들이 자꾸 부각된다. 한편으론 그러면 좋은 것 아닌가 싶지만, 그렇다고 지금 내 수준에서 그 티끌들만 쏙 빼 내고, 옥석만 남기는 기술이 있을리가 만무하다. 결국, 그 과정에서 내 글에 대한 혐오만 더해진다.

심지어 즐겨읽던 작가들의 문장과도 자꾸 비교를 한다.

'아니 하루키는 이렇게 잘 쓰는구만, (내가 쓴 글을 보며)이건 뭐냐? 이걸 소설이라고 쓰고 있냐?'


이렇게 혼자 신나서 글을 쓰다가,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좌절한다.

‘일필일락(日筆日落)’ — 하루 한 편 쓰고, 하루 한 번 낙담하는 나를 떠올리며, ‘일희일비(一喜一悲)’를 내 식대로 바꿔본 말이다.

그래서 하루키는 그냥 묵묵히, 무조건 매일 정해진 분량을 쓰는가 보다.

그래, 하루키도 그렇게 쓴다는데. 내가 뭐라고 이렇게 투덜거리기만 하고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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