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헛간을 태우다.」
1. 감상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은 아마 이 글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세련되고 간결한 하루키의 문체는 단편에서 더욱 응축된다. 스토리에 몰입하기 위해 불필요한 디테일을 과감히 생략한 이 작품은, 나로 하여금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도 서사의 중요한 전략임을 깨닫게 했다.
'알 수 없다'
이 한 마디 말이 이 단편을 요약하는 가장 적절한 말 같다. 서술자인 ‘나’는 물론 등장인물들의 이름조차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분명한데, 그 정점에는 '그'가 있다.
꼭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은 많은 수수께끼의 청년들.
하루키는 '그'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이런 '수수께끼'같은 청년이 더 알 수 없는 짓을 한다. 바로 '헛간을 태우는' 짓이다.
세상에는 헛간이 얼마든지 있고, 그것들은 모두 내가 태워주기만 기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헛간을 태우는 이유라고 할만한 것이 고작 저 정도이다. 그런데, 한 술 더 떠서 주인공인 '나'는 '그'가 헛간을 태울까봐 불안해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헛간을 태울까봐 매일 조깅을 한다.
이 작품의 모호함은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하지만, 나는 굳이 ‘그녀’의 실종이나 ‘헛간’에 상징을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불확실한 감정 흐름 자체를 감상하는 것이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이라고 느꼈다. 다만, 모든 것은 명확하지 않고, '알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둔다면 말이다. 모든 단서가 하나의 해답으로 수렴되지 않는 점, 불가해한 인물과 사건 앞에서 주인공이 점차 혼란에 빠지는 서사는 <곡성>의 정서와도 닮아 있다.
2. 비평
첫째로 나는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계급 간의 무의식적 폭력 양상’에 주목하고자 한다. 수수께끼 같은 청년 ‘그’는 소스타인 배불런의 『유한계급론』에서 말하는, 노동 없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자본을 소유한 ‘유한계급’의 표상으로 읽힌다. 배불런에 따르면 이 계층은 여가와 과시적 소비를 통해 하위 계층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며, 바로 이런 특징이 ‘그’의 모습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그는 어떤 일을 하는지 명확하지 않고, 시간과 여유를 풍요롭게 누리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런 ‘그’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이 바로 헛간을 태우는 일이다. 그는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것들은 모두 내가 태워주기만 기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할 뿐이다. 이때 헛간은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자 존재의 흔적을 상징할 수 있다. 문제는, 이 헛간들이 ‘불필요하다’는 판단이 전적으로 ‘그’의 계급적 감각에 따른다는 점이다. 상위 계층의 시선으로 타인의 삶을 가치 없는 것으로 단정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제거해버리는 것—이것이야말로 의식되지 않은 폭력, 즉 무의식적 계급 폭력의 전형적 행태라 할 수 있다.
두번째로, 작가의 의도를 살펴보고 싶다. 처음에 나는 이 작품에서 뚜렷한 의도를 읽어내기 어려웠다. 앞서 언급했듯, 이 작품을 읽으며 내가 받은 인상은 그야말로 "알 수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하루키는 ‘그’가 언젠가 자신의 동네 헛간을 태우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겪는 주인공의 심리를, 독자에게까지 전이시키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상실의 시대』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의 순례』—에서도 볼 수 있듯, 하루키는 서사적 결핍과 정서적 여백을 통해 ‘불확실성’이라는 감각을 일관되게 구현해내고 있다.
하루키의 작품 전반에는 그의 사적인 취향과 그것에 가까운 집착이 자주 드러난다. 재즈, 위스키, 달리기 등에 대한 반복적 언급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작가가 실제로 깊은 애정을 가지고 몰입하는 대상들이다. 가와카미 미에코와의 인터뷰를 담은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에서도 그는 이러한 취향에 대한 집착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하루키는 자신의 강박적 취향과 불안을 작품에 투영하고, 그것을 독자에게 전이시키는 방식으로 서사를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의 글쓰기는 실존적 불안을 견디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이며, 작가 자신이 삶의 혼돈으로부터 자신을 ‘붙잡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실제로 하루키는 매일 정해진 시간과 분량의 글쓰기를 철저히 지키는 이유에 대해 “자기 자신을 붙들기 위한 방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의식(ritual)이자, 실존의 불안을 견디기 위한 질서의 틀이다. 그렇게 탄생한 그의 소설은 단지 이야기를 넘어, 독자에게 불안과 혼란을 전이시키고, 결국 자기 존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문학적 장치로 작동한다.
3. 총평
『헛간을 태우다』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묘연한 세계를 그리며, 독자에게 설명되지 않는 불안과 감정의 여운을 고스란히 전이시킨다. 읽고 나서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인물과 사건들은 오히려 더욱 깊은 몰입을 유도하며,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지게 했다. 하루키의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은 그 불안을 섬세하게 감싸 안으며, 실종, 고립, 강박과 같은 주제를 통해 삶의 공허함과 실존적 무게를 잔잔히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