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위 피날레

by 허무

몇 시간이나 되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물고 있던 담배를 검지와 엄지로 집어 들었다. 필터 바로 앞까지 타들어 갔다. 빨간 불꽃은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 재떨이에 꽁초를 문지르자 바닥엔 시커먼 재가 흩어졌다. 머그컵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컵을 거꾸로 들고 입안에 털었지만, 혀끝에 닿는 액체는 없었다. 컵이 놓여 있던 자리엔 컵 바닥면대로 물기에 젖어 자국을 남겼다.

그는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러다가 눈을 질끈 감거나 손등으로 눈을 비비곤 했다. 하지만 응시하는 것 외엔 다른 동작은 없었다. 책꽂이에 가지런히 자리 잡은 책들을 눈으로 훑었다. 이따금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키보드 위에 얹기도 했다. 그게 전부였다.


며칠 뒤 그가 살던 빌라 건물이 시끄러웠다. 건물 앞에는 119 응급차와 경찰이 와 있었고, 사람들은 모여서 수군댔다. 그의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땅을 치며 울고 있었고, 그런 어머니를 누나는 쪼그려 앉아서 붙들고 있었다.


그는 죽었다.


그의 시신이 실려 나올 때 그의 어머니는 시신에 매달려 거의 졸도할 뻔했다.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한 번씩 고개를 내밀어 봤다. 하지만 일주일은 고사하고, 한 달에 한 번을 채 집 밖을 나서지 않던 그였기에 창백한 회색의 마른 시체가 흰 천에 덮인 모습만을 볼 뿐이었다.


그의 짐은 정리할 것도 딱히 없었다. 책들은 노끈으로 묶어서 건물 앞에 내다 놓았다.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었는데 한 번도 편 적이 없는 듯한 책도 있었다. 옷가지나 살림살이들은 죄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어서 종량제 봉투와 분리수거 비닐에 담겨 각각 버려졌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컴퓨터는 켜진 채였다. 화면에는 워드프로그램이 띄어져 있었고, 하얀 화면에 그저 커서만 깜빡거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휴대전화, 노트북 등의 가전기기들은 가족이 챙겼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이내 그의 죽음은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되었다. 수십 년을 머물면서 호흡을 하고, 먹고, 배설했을 텐데 그의 흔적은 조금도 남지 않았다. 살아생전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