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괜찮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믿고 싶어지는 건 취향이 없어서일 것이다.
삶이 우디앨런 영화처럼 매일 아름다웠으면 했다. 비극적이어도 혹은 영화 속 빛과 바람 그리고 시공간에 맞추어 따스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번달 주제는 죽음이란다. 편집장님이 내게 1000자짜리 내용을 채우라셨다. 워낙 병신같이 일을 하니 그냥 뒈지라고 보낸 일감같았다.
“야, 이번 주제는 ‘죽음’이니까 가장 좆 같은 우리 자기가 써보자. 이번에는 맞춤법 좀 지키고. 알겠지?”
막상 쓰라고 하니 못 쓸 것 같았다. 죽음은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내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어야 한 글자라도 쓸 거 아닌가. 그리고 그럴듯하게 써서 이번엔 편집장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야지 않겠는가. 최선을 다하자. 이번만큼은 병신모드가 아니다. 이번만큼은 내가 ‘이상’이며 ‘김훈’이며, ‘강신주’일 것이다.
“당신은 2시간 후에 죽습니다.”
070에게 또 전화가 왔다. 오늘은 딱히 위기의 순간이 없는데 왜 전화가 왔을까? 난 좀 의아했다.
“야, 오늘은 별일 없는데 왜 전화했냐?”
“그것이 가장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뚜뚜뚜”
역시. 070은 똑 같은 말로 되풀이했다. 2시간 뒤에 죽음을 알리는 것이 가장 적절하단다. 아니 2시간 뒤에 죽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뜻인가? 아니면 2시간 뒤에 진짜 죽는데 여태까지 내가 운이 좋아서 피했던 것일까? 생각해보니 궁금해지네? 은근히 생각을 많이 남기고간 070이었다. 그리곤 난 이런 글을 남길 수 있었다.
모두가 ‘죽음’이라는 말에 어색하다. 사전적인 의미만 알 뿐,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진 않는다. 꼭 저주받은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죽음은 저주받을 단어가 아니다. 죽음에는 아무런 가시가 없다. 되려 일종의 흥분을 넣어줄 수 있다. 혹시 삶이 무료한 독자가 있다면 이번 호 ‘죽음에 대하여’를 추천하고 싶다. 짜릿한 흥분을 단어로 느껴보자. 이 단어가 주는 마법 같은 능력을 말이다.
1월호 ‘죽음에 대하여’는 나름 나쁘지 않게 팔렸다. 특별하게 판매부스가 많이 빠지지 않았다. 근데 내게 이상한 분위기가 생겼다. 편집장님으로부터의 환심이었다.
“야 씨바. 이새끼 또라이인건 알았는데 이상한거 시키니까 참 잘 쓰네. 야! 이번달에도 써봐. 주제는 ‘늦은 겨울, 새로운 봄’이야.”
겨울과 봄이라는 주제로 또다른 1000자를 채워야 했다. 내가 딱히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었다. 근데 웃긴건 난 취향도 없기 때문에 이런식의 요구사항이 크게 어렵지 않다. 그리고 대단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욕은 먹으면 되는거고, 1000자는 채우면 되는거고, 그러면 월급이 나오니까 그냥 쓰면 되는거 아닌가?
또 070에게 전화가 왔다
“당신은 2시간 후에 죽습니다.”
“야 공칠공! 이제는 욕하는 것도 지친다. 넌 왜 맨날 같은 말만 반복하냐? 지겹지도 않냐?
“그것이 가장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뚜뚜뚜”
한결 같은 070. 이젠 왜 내게 전화를 거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그냥 외로워서 그러는구나 싶다. 나처럼 외로운데 뭔가 컴퓨터 천재라서 070으로 번호를 따와서 중국으로 IP를 추적하게 만든 다음에 내게 전화를 건 것일거야. 오타쿠처럼 컴퓨터만 보면서 매일 사는 사람일거야. 외로웠던 거지 그니까 내게 전화하지 않겠어? 근데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6개월동안 계속 전화할까. 진짜 희한한 세상이다.
컴퓨터 모니터를 켜고 <늦은 겨울, 새로운 봄>을 타이핑했다. 그리고 나선 허망하게 모니터만 바라본다. 늦은 겨울과 나는 무슨 관계일까 나는 2시간 뒤에 죽을 텐데. 그리고 그것은 가장 적절한테 새로운 봄이 온들 무슨 상관일까.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데. 곧 3월이 온다. 또다른 시간이 다가오지 특별한 계절이 내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내겐 아무런 취향이 없기 때문에 하나의 주기처럼 다가오는 계절은 굉장히 무의미할뿐이다. 그렇다고 죽고 싶은가. 계속 내게 죽는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목소리는 30대 남자 같았고, 걸걸하지 않고 담백한 목소리를 가진 자다. 협박전화도 아니니 무섭지도 않다. 그의 전화가 올때면 잠깐 심장이 느려진다. 내가 예전에 잊고있던 심호흡을 느낀다.
잘 기억 안 나는 신났던 그 시절로 잠깐 돌아간다. 그땐 난 지금처럼 무의미하지 않았다. 웃었고 즐거웠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였나. 난 그의 전화가 이젠 반갑다. 이렇게 뻘짓하는 이순간에도 난 그의 전화가 다시 한번 왔으면 한다. 그는 내게 잊혀졌던 흥분을 가져다준다. 아마 천재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이글을 봤으면 좋겠다. 나처럼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반갑겠다. 특별한 취향이 없는 사람도 동질감이란 것은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연락해라 070-0000-0000. 내가 죽여주겠다. 2시간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