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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나마나

내 눈을 보고 있었어요?

by 고로케


"너는 오른쪽 눈 밑에 점이 있네."

꽤 오랜 시간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 있다. 사람은 눈을 보고 말한다는 게 사실이라는 걸 나는 이때 깨달았다. 실제로 내 오른쪽 눈 밑에는 까만 점이 있다. 하필이면 눈 밑에 난 점이라 빼기도 곤란하다. 눈알과 가깝게 위치해서 왠지 점을 빼기도 무서웠다. 제거 시술에 대한 무서움이 컸던 건지, 아니면 그가 내 오른쪽 눈 밑 까만 점을 보면서 내 눈을 봐주길 바랐던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눈 밑 점은 그 자리 그대로 잘 있다.


이번 무쓸모임 글 주제는 '몸'이었다. 처음에 주제를 들었을 때 내 오장 육부에 관해 써야 하나, 과민성 대장 증후군, 체육인의 르네상스, 신체 콤플렉스 등 주제에 대한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무쓸멤버들의 글을 아직 안 봐서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멤버가 콤플렉스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나는 자연스럽게 내 눈 밑 점에 대해 글을 쓰자 생각했다. 그리고 전부터 쓰고 싶기도 했다.


최근 자주 지나는 길목에 통신사 대리점이 생겼다. 대리점 유리 문에는 아주 큰 손흥민의 등신대가 세워져 있는데, 항상 신호를 지나갈 때면 손흥민 등신대와 눈이 마주친다. 아마 그때였을 거다. 나는 평소 손흥민에게 큰 관심이 없어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볼 기회가 없었는데 그의 맑은 눈 밑에 있는 까만 점이 보였다. '흥민이도 눈 밑에 점이 있네' 혼자 머릿속으로 되뇐 그 이후로 나보다 0.5배는 좀 더 큰 그의 눈 밑 점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눈 밑에 점이 있으면 울 일이 많데."

고등학생 때인가,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창 전지현 코에 난 점을 보고, 사람들이 반질반질한 코에 인공점을 심는 게 유행이었을 때였다. 울을 일이 많다느니, 눈물점이라느니, 점하나에 사람 한 명을 울보화 시키는 걸 보고 눈 밑 점이 미웠다. 그리고 울 일이 많다는 말이 괜스레 재수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로 나는 잘 울긴 하지만 또 금세 울음을 그치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울보 성향이 눈 밑 점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눈 밑 점이 눈물점'이라는 공식은 친오빠의 한 마디로 내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지워졌다. 둘이 거실에서 치킨을 먹다 아주 우연히 손흥민의 5G 광고를 보게 됐다. 큰 티비 화면 속에 나온 그의 얼굴을 보고 나는 말했다.


"눈 밑 점이 눈물점이래. 손흥민도 나도 눈물점이 있지. 우리 둘 다 울을 일이 많은가 봐."

"너는 많을 수도 있지만, 손흥민은 아닌 거 같다. 오히려 기뻐서 울을 일이 많을 듯."


그렇다. '눈물'은 기뻐서도 흘리고 슬퍼서도 흘린다. 나는 그 사실을 간과했다. 손흥민은 경기장에서 기쁨의 눈물을 주로 흘리지 않나! 그날 이후 내 마음은 좀 더 가벼워진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손흥민 등신대를 보기 전까지 나는 내 눈 밑 점에 대해 신경도 안 쓰고 살았었다. 오히려 누군가가 내 오른쪽 눈을 보고 '눈물점이 있네요'라고 말한다면 '내 눈을 자세히 보고 있었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은 '손흥민 눈 밑 점'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한 이후였다. ‘점이 졸라 큰데 왜 안 빼냐' '콤플렉스가 아닌가 보지' 등 그의 점에 대한 말이 많다. 같은 눈 밑 점 사람으로서 아마 그도 점이 눈알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 무서워서 안 빼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니면 나처럼 평소에 생각조차 안 날 정도로 거슬리지 않아서 일수도. 혹은 그도 누군가 그의 점을 보다 시선을 옮겨 맑은 눈을 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거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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