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스페인 확진자 수가 14만 명이 넘었다. 전 세게를 쥐다 못해 목까지 조르고 있는 원인불명의 바이러스가 원망스러웠다. 스페인 확진자 관련 뉴스를 보면서 물을 마시다 문득 대학 4학년 휴학 시절 뜨거운 여름날이 생각났다. 대학 근처에 괜찮고 저렴한 치과를 알려달라던 그, 한국어 문법을 제대로 알려달라던 그, 이 정도는 스페인에서 더운 축에 끼지 않는 다던 그, 그는 바로 스페인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을 만난 건 휴학계를 낸 여름이었다. 당시 우리 대학은 교환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에 스페인 모 대학과 협력관계를 맺어 스페인에서 온 교환학생이 많았던 때였다. 나 역시 한창 스페인 리그 라리가와 메시에 빠져 스페인어에 열을 올릴 때였고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주 우연한 기회로 스페인 교환학생인 그를 만났다. 한국어에 갈증을 느끼는 그와 스페인어에 갈증을 느끼는 나. 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멋진 만남인가!
이런저런 생각의 파도를 타던 때 내 머릿속을 헤치고 나온 사람은 스페인 학생도 아닌 바로 윤이었다. 윤은, 정말 아직도 알 수 없는 사람인, 그러나 한 번쯤 다시 만나 보고 싶은 윤은 나와 같은 중학교를 나왔다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머릿속 어디에도 윤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어쩌다 윤을 만나게 된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여름날 나는 스페인어 학습을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우연히 만난 남학생과의 언어교류를 위해 sns에 크루를 모집한다 글을 올렸을 뿐이다. 그걸 윤이 보고 나에게 연락해 왔다.
"야, 고로케. 너 정말 나 기억 안 나? 너무 섭섭하네. 나는 너 기억나는데."
까무잡잡한 피부에, 정정하자면 까무잡잡도 아닌 까만 피부에 바싹 마른 윤은 시원한 미소를 갖고 있었다. 웃을 때 윗니 8개 이상이 보이면 미인이라던데 윤이 웃으면 피부와 대조되어 더욱 하얘 보이는 이가 훤히 드러났다. 윤기나는 까만 머리에 그을린 피부의 윤은 하얀 원피스에 하얀 에스파드 샌들을 신고 나왔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건 정말 내 기억엔 윤의 흔적이 없다.
"우리 아빠가 6천만 원을 투자했다 날렸어. 액땜했다고 쳤어 집에서는."
윤은 24살임에도 본인 명의의 차를 끌고 다녔다. 아직까지 면허라곤 없는 나는 그런 윤의 모습이 신기했다. 60만 원, 600만 원도 아니고 6천만 원을 날려도 액땜했다 치는 그런 담력도 신기했다. 만약 우리 집이었다면 엄마는 벌써 화병으로 입원했을거고 아빠는 술독에 빠진 사람처럼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며 끌탕을 했을 거다. 윤은 많은 것을 쥐고 그 위에 있어 보이던 그런 사람이었다.
윤과 마지막으로 만났던 건 그 해 겨울이었다. 하도 나오라고 성화를 부려 윤의 차를 타고 신도시에 생긴 카페를 갔다. 나는 빨간 체리 에이드를 마시고 윤은 까만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하도 오래 입어 성글어진 니트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다. 윤은 신경 쓰지 않고 본인 얘기에 집중했다. 당시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취업이라는 청춘의 덫에 걸려있었다. 그런 얘기를 나눴다. 어디에 취업해서 같이 살자느니. 미국 썸머스쿨에 꼭 같이 가자느니. 그런 이상한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그때까지도 나는 윤이 낯설고 불편했다.
그 뒤로 윤과의 연락은 끊겼다. 자연스럽게 끊긴 건지, 아니면 내가 일부러 도망쳤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윤은 그 사이 외국계 가구점에서 일을 했고, 그 일이 너무 힘들어 미국으로 도망을 갔다 했다. 정정하자면 일을 관두고 썸머스쿨을 갔다 했다. 윤다운 선택이었다. 그 뒤 나는 모회사에 입사하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윤도 알 수 없는 산 아래 자리 잡은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나는 윤을 보았다.
"저 여자 애 좀 봐라. 저게 뭐니 정말."
운전대를 잡았던 엄마가 한마디 했다. 역까지 걸어가면 40분이라 아침마다 엄마가 역에 나를 내려준다. 창 너머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봤다. 러닝을 하는지 까만 머리를 높이 묶고 가슴골이 다 보이는 탱크톱을 입은 여자였다. 바지는 까만 나이키 레깅스만 입었다. 어디서 많이 본 여자였다. 그렇다, 그녀는 윤이었다.
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고 자기를 드러내며 살고 있었다. 그런 윤이 스페인 코로나 확진자를 보다 생각났다. 그 여름날 뜨거웠던 태양 아래서 웃던 윤이라는 사람이. 만약 지금 다시 그 때로 돌아가 윤을 만난다 해도 나는 윤 근처에서 벗어났을 거다. 나는 비겁하고 작은 사람이라 거침없는 윤이 부러웠을 뿐, 어울리지 못하는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