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고통이다. 고통에 경중이 어딨겠냐마는 내가 33년을 살면서 가장 불편하고 삶에 큰 지장을 주는 건 바로 편두통이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15~6살부터 두통이 자주 있었던 것 같다. 글을 쓰기 위해 아주 깊은 심연의 기억 속을 뒤적거리자니 고등학교 3학년 때 양호 선생인지, 여하튼 누군가가 '머리가 그렇게 자주 아프면 전용 약을 먹어야지, 000처럼.'이라고도 말했다.
내가 편두통 약을 먹기 시작한 건 22살 때부터다. 미국을 다녀오고 나서인데, 하도 머리가 아프다 하니 평소 자주 다니던 내과 의사가 소화제와 진통제가 섞인 나름의 편두통 약을 지어줬다. 그리고 나는 그 약을 약 11년째 먹고 있는데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일단 강력한 진통제라 그런지 먹으면 매우 졸리고 갈증도 심하게 난다. 더불어 내가 장염 땜에 머리가 아픈 건지, 감기 때문에 아픈 건지 그 '두통의 이유'를 아주 잘 파악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편두통이 아닌데 편두통 약을 먹을 수도 있으므로) 매번 약을 처방받을 때마다 나는 '이거 중독되는 거 아녜요?'라고 질문하고 의사는 '중독될 만큼 복용하지 않는걸'이라고 대답하는 흔치 않은 대화도 오고 간다. (약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방문해서 일주일분, 즉 21개를 처방받는다. 이렇게 처방받은 약은 반년 정도 먹는다.)
하여튼 편두통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머리가 아프면 모든 감각이 살아난다. 특히 시각과 후각. 전등 빛이 눈에 거슬리고 바람에 타고 오는 미미한 냄새도 코에서 맴돈다. 속이 메슥거린다.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하면 하루는 종쳤다고 보면 된다. 회사에서도 급하게 반차를 내던, 반반차를 내던, 뭐라도 던져버리고 어서 집으로 와서 누워야 한다. 속이 메슥거리고 춥고 난리를 치다 구토까지 시작되면 일단 그 다음날도 끝났다고 생각해야 한다. 하루 편두통 약을 3번 복용하는 건 내 입장에서 '재앙의 날'이 다가오는 거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병원에 가서 진통제를 맞아야 한다. (물론 엉덩이에) 이런 두통은 일 년에 한번, 혹은 2년에 한번 찾아오는데 나는 이걸 '발작성 두통'이라 부른다.
편두통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최근 '예고 없음'은 거짓이라 가정하고 편두통 전조 시그널을 찾아 헤맸는데 대부분 편두통이 오기 전 목과 어깨가 유독 뻣뻣하고 어지러움이 오는 것 같다. 여하튼 예고 없는 편두통 때문에 늘 가방엔 편두통 약을 지니고 다녀야 하고, 회사에도, 집에도, 심지어 출장지에서도... 내가 머무는 공간엔 편두통 약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늘 내 가방 속 파우치에 편두통 약 봉투가 몇 개가 있는지를 되새긴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왜 치료받을 생각을 안 하냐 묻는다면, 대답은 '나도 해봤다'이다. (물론 mri까진 안 찍었다) 일단 도수치료는 해봤지만 편두통엔 효과가 없었다. (이명에는 꽤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올해, 즉 2020년에는 명의에도 나온 유명 대학병원 신경학과에 가서 편두통을 고치겠다 다짐했건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병원 근처도 못 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정확히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편두통이 더 심해진 것 같아 검색을 하던 중, 나는 블로그에서 이런 제목의 글을 읽게 되었다. '신경과 의사가 추천하는 비약물적 편두통 치료 - 달리기가 제일 좋은 운동 치료입니다.'
달리기? 달리기라고? 글을 정독했다. 글의 요지는 2011년 편두통 치료에서 운동의 효과에 관한 신경과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토피라메이트라는 약물을 이용한 편두통 치료와 운동의 효과가 같았다는 거다. 만약 운동 유발 두통(즉, 운동을 하면 두통이 나타나는 체질)이 아니라면 땀이 나고, 숨이 찰 정도의, 그리고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달리기를 하면 편두통이 개선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달리기? 어렵지 않았다. 평소 나는 운동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는 사람이기도 했고, 편두통을 위해서라면 24시간도 달릴 수 있었다.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주 3회는 꼭 달린다는 것을 목표로 저녁 8시 무렵에는 집 밖을 뛰쳐나갔다. 무리하지 않으려고 인적이 드문 공원이 나올 때까지는 경보하듯 잰 걸음으로 걷다가 생각한 지점이 다가오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고 나면 땀이 비 오듯 오고 귓속에는 음악소리뿐 아니라 심장소리도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잠시 마스크를 벗고 공기 냄새를 맡았다. 여름향이 났다. 분명 바람은 차고 나도 패딩을 세 겹이나 입었는데 여름밤의 냄새가 났다.
그렇게 주 3-4회를 목표로 달렸다. 실제로 편두통이 약간 오려고 한 날, 약을 먹고 뻗을지(약물 중독자는 아니다), 아니면 무리수를 두고 달리기를 할지 고민하다 결심하고 나간 날이 있었는데 미미했던 두통이 말끔히 나아졌다. 심지어 생리 전, 후, 생리 기간 동안 평소처럼 두통이 올 걸 각오하고 무덤덤하게 지냈는데 (내 오랜 생리통은 편두통이다) 생리통이 없었다! 이건 기적이었고 매직이라 환호성을 질렀다.
달력을 본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코로나19가 소강상태가 되며 출근을 해야 했고, 퇴근 후 집에 오면 밤 9시가 넘기에 내 러닝은 자연스럽게 금, 토, 일 주기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랬다. 4월 24일 금요일. 나는 평소처럼 러닝을 하러 신나게 뛰어나갔고 내 왼쪽 무릎도 같이 신나게 나갔고 오른쪽 다리로만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25살 복싱하다 집 나간 왼쪽 무릎이 다시 나갔던 거다. 생각해보면 내 러닝 코스는 러닝머신과 달리 매우 경사가 높고 낮고 난리고, 그다지 곱고 예쁜 길은 아니었다. 이렇게 내 '야외 러닝'은 막을 내렸고 나는 신경외과를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아니, 아직도 복싱해요?'
'아, 아뇨. 달리기하다 다쳤어요.'
'아니, 그럼 지금은 무슨 운동해?'
'아무것도 안 해요. 저는 직장인이에요.'
'당분간은 운동하면 안 돼. 그냥 걸어만 다녀요.'
이렇게 나는 5월 10일인 지금까지 달리기를 못 하고 있고, 내 바지 속 왼쪽 무릎엔 아대를 늘 착용해야 하고, 5월 18일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이 문을 열 때까진 달릴 수 없다는 현실이고, 나는 그 사이 두 번의 편두통 약을 먹었다는 3주간의 실험 일지다.
덧붙이자면 달리기를 하는 동안 나는 편두통약을 한 번도 먹지 않았다. 평소 다이어리에 편두통 약을 먹은 날은 따로 기록하는데 신기하게도 달리기를 한 주에는 약을 먹지 않았다. 나처럼 뛰거나 빨리 걸어도 두통, 어지럼증이 없다면 추천할 법 한데, 반대 체질이라면 비추... 실제로 아는 지인 몇몇은 내 말을 듣고 빨리 걷기를 하거나 뛰다가 어지럼증에 며칠 연차를 냈다는 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