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나마나

너의 시작과 마지막

by 고로케

"아빠,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강아지가 갖고 싶어."


13살 2월이었다. 하얗고 작은 강아지가 엄마의 검정 코트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주둥이가 길고 못생긴 강아지라고 엄마는 그랬지만 내 눈에는 눈이 소복소복 쌓인 주먹밥 같았고 검정 콩이 세 개 박혀 있는 얼굴이었다. 이름은 뭘로 지을까? 부르기 쉬워야 하니 '미미'라고 지었다.


"야!!! 너는 왜 내 만화책에 쉬해? 그리고 왜 내 연필 다 씹어먹어?"

미미는 내 만화책에 보란 듯이 쉬를 해 놨다. 분명 말티즈라고 그랬는데 푸들과 섞인 것 같다. 책상 위를 뜀뛰기하듯 넘나들더니 내 연필도 와그작 와그작 씹어먹기 일쑤였다. 꽃미남 짝꿍이 선물해 준 미피 목도리를 잘근잘근 씹다 이까지 빠진 적도 있다. 화도 내고 서로 깨물고 뒹굴고 울고불고 그렇게 우린 서로 같이 자랐다.


아주 슬픈 날에도 기쁜 날에도 미미는 늘 내 곁에 있었다. 미미는 우리 집에선 소위 '잡종견'으로 통했는데 새끼도 참 많이 낳았다. 미미는 총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본인 취침시간만 되면 아기들은 신경 쓰지 않고 내 침대에 올라와 쿨하게 잠을 잤다. 덕분에 15살이었던 나는 낑낑 우는 아기들을 달래려고 새벽 2시, 4시에 기상해서 분유를 먹였고, 눈이 안 보여 여기저기 기어 다니다 침대 밑과 책장 사이에 들어가 꽥꽥거리는 애들을 구출하기 바빴다.


미미는 여섯 마리를 낳았지만 첫째인 '하나'를 빼고 다섯 마리는 각각 친척 집에 보냈다. 우리끼리만 하는 말인데 미미가 출산 시 하나를 밟은 것 같다. 하나는 눈도 맞추지 못했고 다리도 절었고 많은 것들이 부족했다. 그래서 아빠는 우리가 하나를 키워야 한다 했다. 안 그러면 하나는 다른 집에 가서 구박받고 오래 못 살 거 같다고도 했다. 그렇게 하나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미미와 나는 아주 친한 친구 사이였다. 서로 눈만 봐도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았고 매일 곁에 머무르며 함께 잤다. 내가 아픈 날엔 미미가 내 곁에 와서 옆에 있어줬고, 미미가 아픈 날엔 내가 같이 있어줬다. 특히 취업 준비를 할 때 오랜 시간을 더욱 친밀하게 보냈다. 그렇게 나는 우리가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았다. 왜냐면 미미는 나이가 들어도 굉장히 튼튼했고, 녹내장이 있었지만 늙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증상이지 특별히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2016년 4월 5일이었다. 그때는 일요일이었는데 나는 어김없이 잠을 자고 있었고, 미미가 와서 나에게 뽀뽀를 마구 해댔다. 미미는 16살로 나이가 점점 들면서 입 냄새가 매우 심해졌기에 나는 '우왁, 냄새나. 저리 가지 못해?'라고 말하며 미미를 내보냈다. 그리고 교회를 가려고 평소대로 거실로 나와 아침을 먹었다. 미미는 늘 식탁 옆에 앉아서 뭐라도 주진 않을까 나를 쳐다봤는데 나도 그런 미미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엄마, 미미 좀 봐. 좌우로 흔들흔들 춤을 춰."

미미가 몸을 좌우로 흔들흔들 미세하게 움직였다.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러곤 갑자기 픽 쓰러졌다. 미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미미는 그렇게 갑자기, 평소처럼 아침밥도 잔뜩먹고 응가도 시원하게 했던, 그렇게 평범하게 행동하다 심장마비로 우리를 떠났다. 비가 오던 꽤 쌀쌀한 봄날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미미가 죽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와 나는 울면서 포근한 담요 위에 미미를 눕혔다. 미미를 손으로 만져봤다. 따뜻했지만 숨은 쉬지 않았다. 몸도 예전처럼 부드럽지 않았다. 환갑잔치에 갔다던 동물 병원 선생님에게 급하게 전화를 했다. 화장을 하기로 했다. 나는 미미가 가장 좋아하고 자주 입었던 파란 줄무늬 스누피 나시티를 입혀줬다. 그리고 설날 즈음에 구매해 ‘지금 말고 다음에 먹자'라고 약속했던, 하지만 끝내 먹지 못했던, 시저 통조림 두 개를 같이 꽃무늬 박스에 담요와 함께 넣어줬다.


미미가 떠난 그다음 달인 5월에 하나도 우리 곁을 떠났다. 14년 인생 중, 6년 동안 치매를 앓던 하나였다. 하나는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건강 상태였다. 그렇게 두 친구가 모두 곁을 떠났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심각한 감정 침체기를 겪다 결국 건너건너 아는 할머니를 통해 백설기 한 마리를 입양했다. 두부였다.


미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언 4년이 되었다. 미미는 딱 두 번 꿈에 나왔다. 한 번은 부엌에 서서 나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고, '미미!이리와' 말하니 막 뛰어왔다. 마지막 꿈은 내가 두부를 무릎에 앉히고 같이 놀고 있는데 미미가 스윽 나타났다. 내가 미미에게 '처음 보지? 얘가 두부야'라고 소개하니 다가와서 두부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미미는 더 이상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는 두부에게 모든 걸 맡기고 안심하고 잘 지내는 것 같다.


최근 사진첩을 보다 13살부터 29살까지 미미와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나도 성장했고 미미도 성장했다. 16년을 함께 살았던 친구이자 가족을 보내는 건 너무나도 슬픈 경험이라 다신 하고 싶지 않다. 지난달 철수누나의 인스타그램을 보다 깜짝 놀랐다. 철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글이 올라왔다. 가슴이 먹먹했다. 매우 슬펐다. 슬픈 시간을 보냈던 철수누나를 위로하고 싶어 공감 버튼을 꾹 눌렀다. 재택근무를 어언 한 달 반 이상을 하면서 두부, 감자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 시간이 참 소중하고 소중하다. 아이들에게 잘 해줘야겠다 다짐하는 또 다른 봄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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