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나마나

로봇, 그리고 블랙베리 Q10 사이

by 고로케


"아무 감정을 못 느끼는 로봇이 되고 싶지 않니?"


한때 많이 썼던 말이다. 께름칙한 말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주 썼다. 대학 때 만난 친구들 중, 지금까지 연락이 닿는 몇몇 친구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이 나와 같은 업종의 회사를 다녔다. 회사와의 거리가 가까워서 종종 퇴근을 같이 했다. 2017년의 일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대해 기대가 많았던 친구의 빛나는 얼굴이 보기 좋았다. 보고 있자면 신선했고 기분 좋은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늘 공덕역에서 만나 공항철도를 탔다. 콩나물시루 같은 열차에서도 시시덕거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회사에 관한 얘기였다. 어느 날부터 빛나던 그녀의 얼굴이 퍼석해졌다. 2018년 그녀는 일을 관뒀다. 그동안 나눴던 이야기도 있고, 그녀가 조만간 퇴사할 거라는 추측이 가능해서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퇴사라는 선택에 관해서는 딱히 별말 하지 않았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너도 혹시 로봇이 되고 싶지 않았냐는 질문을 했고, 그녀는 '난 행복만 느끼는 로봇이고 싶다'라는 예상외의 대답을 했다. (그런데 친구야, 사람이 행복만 느낄 수 있다면 광적으로 변할 것 같다.)


"블랙베리로 핸드폰을 바꿀까 봐. 블랙베리는 카톡이 안된대. 괜찮을 것 같아."


몇 년 전 내가 친오빠에게 했던 말이다. 저 말을 듣던 오빠는 딱 한마디만 했다. "나는 네가 사회를 등지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카톡을 안 한다고 사회를 등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휴대폰 자체를 없애면 약간 사회를 등지게 되겠지. 하지만 나는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그가 어떤 생각으로 저런 대답을 했는지 금방 이해했다. 같은 말을 얼굴이 빛나던 친구에게도 했었다. 좋은 생각이라는 대답과 함께 휴대폰 할부도 끝났으니 이참에 같이 블랙베리로 바꾸자는 실행 부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 대답이 너무 웃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묘했다.


사람은 짜치는 감정을 너무 많이 느낀다. 슬픔, 아쉬움, 분노 등의 대표 키워드를 제외하고도 말로 표현하기엔 힘든 묘한 감정들이 많다. 예를 들면, 드라마에도 많이 나오지 않나. '나도 지금 내가 슬픈지 기쁜지 모르겠어!!' 본인도 모르는 감정과 욕구를 인간은 너무나도 많이 느낀다. 가끔 나는 기도할 때 하나님은 사람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셨는지 물어본다. 이 많은 감정이 정리된 전선처럼 깔끔하게 한 줄로 정리되면 사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그래서 종종 로봇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본다.


카톡도 비슷한 맥락이다. 기계한테 휘둘려 사는 게 영 못마땅하다. 예전에는 그래서 아이패드에 카톡을 깔고, 휴대폰에서는 지워버린 적이 있다. (이 행동의 결과가 매우 안 좋아서 다시 휴대폰에 카톡을 설치했다.) 요즘도 종종 시도한다. 카톡을 휴대폰에서 지우고, 아이패드에 설치하는 그런 기이한 행동을.. 하지만 아이패드건 뭐건 어떤 식으로든 카톡을 설치하는 거 보면 나는 카톡이라는 굴레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는 못하나 보다.


소피아라는 로봇을 아는지 모르겠다. 소위 따뜻한 감성을 갖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슈퍼 인텔리전스 A.I가 되고 싶다는 로봇이다. 인터뷰에서 소피아가 하는 말을 들어 보면 소피아도 분노를 포함한 감정을 느낀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사람들과 일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면서 어색하게 웃는다. 별 생각없이 영상을 보다가 우리가 감정을 표현한다는 게 언제부터 '사람들과 같이 일하기 위해서' 라고 정의되기 시작했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https://youtu.be/S5t6K9iwc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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