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배움'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중·고등학교에는 대학 가려고 공부를 했다. 대학교 때는 감사하게도 재밌어서 공부했다. 그리고 기왕 들어간 대학이니 졸업은 해야 하니까. 회사원이 된 지금은 나를 위해 공부를 한다. 그림, 포토샵 등 내가 재밌어하는 걸 공부하는 게 꽤 괜찮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스피드 스케이트, 수영, 헬스, 복싱, 발레 등 정말 오만가지 운동을 했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시작한 운동은 스피드 스케이트였다. 아빠는 새벽 5시가 넘으면 나를 뒷좌석에 태웠다. 태우기보단 잠에 취한 아이를 그냥 일단 넣고, 빙상장으로 향했다. 하굣길엔 엄마나 회사 아저씨가 교문 앞에 있었다. 그리고 같이 빙상장으로 향했다. 솔직히 그 당시 힘들었는지, 좋았는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몇 가지가 있다. 주말이면 아빠는 내 스케이트 날을 갈기에 바빴고, 장갑 손끝을 다듬기 바빴다. 스피드 스케이트는 코너를 잘 돌아야 하는데, 코너를 돌 때 손을 짚어야 한다. 짚기보다는 얼음판을 부드럽게 스친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개구리 손 모양의 장갑을 꼈는데 아빠는 항상 그 개구리 손끝이 둥그렇게 되도록 본드 칠 같은 걸 했던 거 같다.
스피드 스케이트는 2-3년 정도 하고 관뒀다. 관둔 이유는 몰랐는데 최근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코치의 칭찬을 들은 아빠는 '고로케가 근성이 있구만. 서울대도 갈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그만두게 했다고 한다. 물론 나는 서울대는 못 갔다. 운동과 공부는 또 다른 얘기다.
그 이후, 아빠는 곧장 나를 데리고 수영장으로 갔다. 물이 무서웠다. 하지만 아빠는 물을 무서워하는 나에게 공포를 극복해야 한다며 훈련을 시켰다. 그 결과는 성공이었다. 나는 수영을 즐겼고 동네 수영 대회에 참가해서 은메달을 딸 정도로 수영을 곧잘 하게 되었다.(대회는 몇 번 나갔는데 항상 은메달이었다. 그래서 관뒀다. 물론 이때는 내가 머리가 커서 내 의지로 관둔 거였다.)
20살. 다시 수영장에 갔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우리 반은 당시 20살인 내가 아저씨?라고 부를 정도의 나이가 있는 선생님이었는데, 추워서 물 밖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발로 차서 물에 넣었다. 아, 얼마나 친근한 방식인가. 지금 선생님은 나보다 5-6살 어려 보이는 젊은 남자인데 눈이 마주쳐도 인사조차 안 하는 아주 건조한 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저렇게 유들유들한 선생님이 그립다.
24살. 복싱은 당시 과외를 하던 학생이 같이 가자고 하도 꼬셔서 갔다. 복싱도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어느 날은 깨끔 발을 하고 하루 종일 제자리 뛰기만 한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손만 움직인다. "선생님, 이거 하면 다리가 완전 알다리 되는 거 아녜요?" 전직 선수였다던 선생님이 내 말을 듣고 본인 다리를 보여줬다. 나보다 얇고 가느다란 다리었다. 반박할 말이 없어서 다시 복싱에 열중했다. 아쉽게도 너무 지나친 열정으로 인해 무릎이 나갔다. 엉엉 울면서 빙판길을 미끄러지듯 달려 신경외과로 갔다. 그 당시 신경외과, 정형외과.. 여튼 뼈다구 치료하는 병원은 다 다녔다. 지금도 좀 힘들면 오른쪽 무릎이 묵직하다.
2018년 7월, 팀장님의 추천으로 어떤 미지의 병원에 가게 되었다. 의사는 내 골반을 보고 '일반인보다 더 굳은 골반'이라고 했다. 치료보다는 수영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수영! 그래, 올 것이 왔구나. 2018년 9월. 건강을 위해 다시 수영을 등록했다. 이 얼마나 설레는 시작인지! 왕년의 물개가 다시 살아나는구나! 하지만 생각보다 나는 수영을 오래 쉬었다는 걸 첫날 알아챘다. 쭈뼛거리며 물에 들어갔고, 처음엔 유아용 풀에서 음-파- 음-파-를 배웠다.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선수였다고!' 오랜만에 레인에 머리를 담그니 가슴이 답답하기까지 했다. '아, 망했다.' 마음속 외침이 들렸다. 하지만 내 주변 어른들은 항상 같은 말을 했다. 몸으로 배운 건 다시 금방 돌아온다고. 맞는 말이었다. 수업 3일 만에 거의 모든 감각이 다 돌아왔다. 바로 중급반으로 넘어갔다. 말이 중급이지 우리 선생님은 워밍업을 '자유형 5바퀴, 5바퀴, 5바퀴..' 이렇게 시킨다. 정말 대단한 인간이다.
지금도 수영을 한다. 컨디션이 관건이다. 어느 날은 늪지대를 헤엄치는 것 같다. 어느 날은 몸이 가볍다. 손쉽게 레인의 1번이 되었다. 1번은 괴롭다. 나는 이명이 있어서 한쪽 귀가 잘 안 들린다. 특히나 우리 젊은 선생님은 목소리가 작아서 웅웅 울리는 수영장에서 뭐라고 하는지 듣기가 여간 쉽지 않다. 결국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뭐요? 뭐? 뭘 하라고?'라고 계속 묻는다. 그래서 그런지 내 주변엔 사람이 별로 없는 거 같다.
앞으로 수영을 몇 달 더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근 10년 만에 다시 시작한 운동이 꽤 괜찮다. 생각해보면 살을 빼기 위한 운동은 해 본 적이 없다. 아, 있다면 복싱 정도였다. (1kg도 안 빠졌다. 나는 그만큼 많이 먹는다.) 지금은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한다. 정말 워딩 그대로 '살기 위해서'다. 10대의 운동은 20대의 건강을, 20대의 운동은 30대를, 30대의 운동은 40대 건강을 책임진다고 했다. 나는 40대를 위해 투자하는 거다. 그래, 그런 생각으로 오늘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