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사원으로써 일을 한 건 이곳이 처음이다. 두 번의 인턴생활 기간만 1년이 넘었는데 얄궂게도 직장 경험으로 쳐 주는 곳은 없었다. 처음으로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스스로 직장을 나온 건 두 번째 인턴 때였다. 며칠 동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끙끙거리며 고민했다. 말재주가 있는 편은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 얘기를 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본부장까지 면담을 했었던 것 같다. 홀가분했다. 퇴사라는 단어는 가벼운 단어구나. 계약만료 약 한 달 전에 나는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뒤에 지금 회사에 입사했다.
2015년 4월 1일, 나는 만우절 날 입사했다. 몸이 약한 편은 아닌데 이런저런 잔병이 한 번에 오는 스타일이다. 전날 얄궂게도 비가 왔고 몸이 좋지 않아서 여기저기 병원을 다녔다. 점심으로 김밥을 사서 먹었는데 하필 그 김밥을 먹고 체했다. 너무 아팠다. 내가 수요일에 입사를 했는데, 수. 목. 금 다 아팠다. 나와 같이 입사한 두 명의 동기는 내게 휴가를 내라고 권유했는데 입사 초반이라 휴가를 내면 잘릴 것 같았고, 정작 어떻게 전자결재를 올려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다.(알려주고나 말해라) 여튼 꾸역꾸역 이꾸역의 기질이 나와서 어떻게든 3일을 다녔다. 정말 지옥 같은 3일을 보냈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그냥 피식 웃음이 난다.
나는 날짜를 세는 사람이었다. '이제 XX일 뒤면 안 나오는군'. 터지는 폭탄을 앞에 둔 사람처럼 매일을 카운트다운했다. 앞으로 뭘 할까, 같은 분야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하나 생각도 했다.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회사 가는 길목에 큰 해바라기가 몇 개 있었다.(지금은 없다. 그곳에 새 건물이 들어오면서 해바라기도 같이 사라졌다.) 여름~가을에는 출근길에 습관처럼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해바라기를 바라봤다. 노란 해바라기가 바람에 좌우로 흔들리는 게 꼭 인사를 하는 것 같았고, 유독 해맑은 해바라기가 신기하기도 했다. 이제 해바라기를 바라볼 날도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짜를 센다는 거, 큰 위안이 됐다. 적어도 나에게는 아주 명확하고 변명하지 않아도 될 끝이 있다는 점에서 만사가 지친 날은 정말 큰 위로가 됐었다.
퇴사를 많이 생각했던 때고 취업 준비를 가장 많이 했던 해다. 2016년은 너무 암흑과도 같은 때여서 기억하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쓰기 위해 2015, 16, 17, 18년도 일기를 다시 볼까도 생각했지만 보지 않았다. 매년 일기에는 퇴사라는 두 글자가 나온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파도에 떠밀리듯 마지막에 결심이 흐려졌고 여전히 이곳에 있지만 다시 2016년으로 돌아간다면 꿋꿋하게 버틸 자신은 없다.
전사에 이런 메일을 쓸 날이 올까? 오겠지, 분명히 오겠지.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잘 안된다. 새로운 곳을 향한 설렘과 두려운 마음? 그래도 친했던 몇 안 되는 동료를 두고 떠나는 씁쓸한 마음? 지난 일들이 flashback처럼 지나갈까? 인수인계서는 몇 장을 만들어야 할까? 거미줄처럼 업무가 많으니 아예 한 달 전부터 만드는게 낫겠지? 마지막 working day는 어떤 표정으로 있어야 할까? 웃어야 하나? 마지막 식사는 팀점을 해야 할까? 좀 어색할 거 같은데? 모두가 휴가를 낸 사이에, 아니면 팀 회의를 간 사이에 닌자처럼 떠나볼까? 마지막 면담 때는 그동안 느꼈던 걸 다 말해야 하나? 아니면 적정선에서 끊어서 얘기할까? 어차피 나를 모두가 아는 것도 아니니까 '퇴사' 메일은 특정 몇 명한테만 보낼까? 퇴사이후 몇 명의 사람들과 연락하게 될까? 무쓸모임은 퇴사하고 나서도 계속해도 되겠지, 온라인 베이스니까? 나를 쫓아내는 건 아닐까? 나는 그럼 계정을 변경해야 하나? 그건 좀 너무하네.
이번 글 주제가 너무 어렵다. 글을 하나 완성했다가 전부 다 갈아엎었다.(그래서 제목이 샘플 2다. 원래는 샘플 1이라는 제목으로 임시저장을 했다가 제목 포함, 본문 내용을 조금만 수정하려 했다.) 문득 샤워를 하다 '아,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은 거 같아'라고 느껴서 다시 작성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대학시절 에피소드가 머릿속을 재빨리 스쳐 지나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교수님, 그 교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네들은 nomadic life를 사는 거라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러니 우리는 '퇴사'라는 단어에 마음 한편이 무거워 지거나 무너질 필요 없다. 우리는 부모 세대와 다르다. 직장에 몸 바쳐 일하거나 평생직업의 개념은 없다. '끈기도 없구나, 회사를 관두다니!' 오래된 옛말이다.
아쉬운 점은 내가 좋아하던 몇 안 되는 동료들을 못 본다는 거. 가끔 그래서 나는 웃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우리가 회사라는 틀이 아닌 학교나 훨씬 이전에 다른 곳에서 만났음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종종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