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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론 Aug 18. 2022

도보배달 아저씨에게 드리는 편지

쨈 병 뚜껑을 닦는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는 아저씨가 자주 물건을 수령하러 오시는 파리바게트의 알바생입니다. 사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최근 엄청난 비와 햇볕이 내리쏟는 와중에 포스기에 '도보배달-60분'이 찍히니 자연스럽게 이 비와 햇볕을 뚫고 도보배달을 다니는 사람은 누굴까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몇 번 주의깊게 살펴 이 지점의 도보배달은 아저씨가 다 하시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늘 드리려는 편지는 우리의 일과 하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아저씨한테 드리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네요. 따가운 볕을 가로지르는 아저씨 뒷모습을 보면서 이 상념이 시작됐기 때문이려나요.


배달은 이시대의 돈벌이란 무엇인가 보여주는 일인 것 같습니다. 배달업이라는 분야가 뜬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 많은 기업들이 달려들었고 오토바이, 자동차, 심지어 어딘가에서는 로봇이 배달을 하고 있을 정도지요. 오토바이를 끌고 다녀본 적은 없지만 한번에 엄청나게 많은 양을 가져가 싣고 눈 깜짝할 새 배달완료가 뜨는 것을 보면 이거 참 빠르다 생각합니다. 모름지기 돈을 벌려면 그렇게 벌어야겠죠. 할 수 없는 일도 기계의 도움을 받아, 1분에 10곳, 10분에 100곳, 1시간에 100만원. 자는 순간에도 돈이 돈을 벌게. 그런 게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의 말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걸어간 만큼만 받는, 등에 질 수 있을 만큼만 배달하는 도보배달은 어쩐지 제 눈엔 서글퍼보입니다. 너무 정직하달까요. 가게 앞으로 쌩하니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비교하면 아저씨의 발걸음은 한없이 느려 보입니다. 날씨의 영향도 배로 받을 것 같고요. 몸이 아프면 바로 못하게 되고. 영 수익성이 없는 일이잖아요. 쨈 병 뚜껑을 몇십분째 광나게 닦고 있는 제가 할 말은 아닌가 싶지만.


  뚜껑을 닦는 일은 도보 배달과 어느정도 비슷한  같습니다. 급하지만 서두를  없고( 병이 깨져 닦을  없는 바닥까지 쨈이 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악몽입니다.)  한만큼만 티가 납니다. 쨈은 보통 사이즈와 미니 사이즈  종류로, 미니 사이즈는 손에 두개를 한번에 잡을  있을 정도의 크기입니다. 쨈을 좋아하는 가족이라면  끼에  닦아먹을 정도? 저는 그런  병의 유통기한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뚜껑에 일주일간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선입선출을 위해 열을 맞춥니다. 쨈이 진열된 곳은 선반  단이지만  일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빨리'하고자 마음먹으면 엄청나게 빠르게 끝낼 수도 있겠다 싶은데요. 그렇지만 오늘도,  줄을 청소하는 데만 30분은   같습니다.


중간에 아저씨가 배달할 빵을 수령하러 오셨지요. 전 쨈 병을 닦다말고 급히 포장해둔 물건을 확인해 넘겨드립니다. 왠지 모르게 아저씨가 오시면 더 허둥지둥하게 됩니다. 오로지 자기가 걸은 시간만큼만 버는 사람에게 걷는 시간 외의, 부차적인 시간을 더해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서요. 저도 일한 만큼만 받는 사람이니까, 이런 부분은 생각이 닿게 되네요. 부끄럽고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아저씨에게 일종의 동지애를 느꼈나봅니다.


아저씨는 어떠세요? 저는 종종 '그렇게 바보같이 살면-'으로 시작되는 주변의 걱정을 듣곤 합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 돈을 받기가 어려웠고, 비싸게 받으면 안되는 이유는 뭐고, 돈이 돈을 벌게 하는 일에 관심이 없고 그런 생각들을 꺼내놓으면 자주 듣는 이야기에요. 저는 그냥 적당히 받고 싶을 뿐인데요. 남들은 그 뒤에 쪼들릴 제 모습을 걱정하는 거겠죠. 실제로도 돈에 쪼들리고 있어요. 쨈 병 뚜껑을 닦다가도 이게 맞나 싶었거든요.


출근하면 정해진 시간동안 최대한의 것들을 해두고 싶어요. 그래서 눈에 보이면 일단 해둡니다. 아무도 안 닦은 구석을 발견했다면 제가 닦고 싶어요. 돈을 벌고 싶다고 다른 사람의 매장에 와놓고 가만히 서서 노는 건 어째선지 마음이 불편해서요.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 부분에서 이미 다른사람의 말이 날아듭니다. "니가 사장이냐? 너 매장도 아닌데 받은 돈만큼만 해." 저도 동의해요. 받은 만큼만 일하는 게 맞죠. 하지만 조금만 비틀어 생각하면, 받았으니까 그만큼은 해내고 싶습니다. 그만큼이 얼만큼이냐? 9160원이 얼만큼이죠? 만원도 안되는 돈이니까 쨈 병 뚜껑의 먼지따위 휘휘 걷어내고 5분만에 슥삭 닦아치우면 되는 건가요? 그럼 이 시간은 받은 만큼만 일한 가성비 좋았던 시간이 되는 걸까요?


하지만 저의 셈은 여기서부터 이상한 고집이 작용합니다. 어째선지 이 쨈 병 뚜껑을 얼마나 광나게, 새 제품처럼, 물때 자국이 남지도 않게 반짝반짝 닦느냐가 이 한 시간을 좌우하고, 오늘 하루를 좌우하고, 제 인생까지 결정할 것 같다는 이상한 고집입니다. 정해진 액수를 받는 한 시간, 그 액수에 따라 해야할 일은 정해져 있지만 그 일을 '어떻게' 해낼 건지가 사실상 인생을 운전하는 핸들의 역할이라고 그렇게 생각해버리는겁니다. 이것은 아마 쉽게 설명하면 '태도'라는 거겠죠.


무얼 하느냐보다, 얼마를 받느냐보다 중요한 건 그 일을 할 때의 내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면 굽은 어깨를 펴게됩니다. 아저씨의 뒷모습에 남모르게 응원을 보내기도 합니다. 비가 오는 날 가져가시는 봉투에는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테이프로 꼼꼼히 마감을 하게 됩니다. 출근하며 교대하는 오전 알바생이 고생하지 않게 퇴근하기 전 슬리브나 빨대, 쇼핑백을 꽉꽉 채우게 됩니다. 다음주면 또 만날 사장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모여 퉁퉁 부은 발로도 가볍게 집으로 걸어가게 하고, 밥을 먹으며 오늘은 어떤 손님들이 왔는지 마구 떠들게 합니다.


아저씨. 어떤 일을 하며 살지가 중요하다는 건 너무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건 스스로 터득하는 진실이네요. 다음주에도 우리는 만나게 되겠죠. 비가 엄청시리 온 후라 바람이 시원해졌어요. 아저씨의 배달과 걷는 시간도 좀 더 선선해지길.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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