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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론 Aug 22. 2022

반가사유상이 눈을 감고 있는 이유

결핍이 주는 것

이번주는 스스로 정한 휴가 기간이었다. 일주일간이라고 정했지만 월, 화는 파리바게트에서 일하는 날이고 쉴 수 있는 건 수요일부터였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토요일은 나가야 하는 정기 모임이 있다) 짧은 휴가지만 일과 관련된 무엇도 손대지 않는 오로지 노는 날들이라니 신이 났다.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올까 이곳 저곳 찾아보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마지막으로 혼자 떠난 여행은 작년이었는데 초록색을 좋아하니까 초록을 원없이 볼 수 있는 곳에 가고싶다는 이유로 보성으로 정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떠오르는 곳이 없었고 그냥 그날그날 서울에서 가보고 싶었던 곳에 가기로 했다.


목요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큰 이유는 없었고 인스타그램에서 본 국립중앙박물관 광고가 생각나서였다. 방송인 파비앙이 정자가 있는 호수 쪽으로 걸어가 박물관 옆 정원을 소개했다. 사실 광고를 끝까지 보지는 않았다. 그냥 얼핏 본 정원의 느낌이 좋았고 꽂히면 곱씹지 않고 정하는 스타일이라 오늘은 박물관이다 생각하고 세수를 했다. 쨍하니 맑은 날씨다. 들뜨는 나들이에는 역시 뻔하지만 맑은 날씨가 좋다. 정원을 찍어오고 싶어서 무겁지만 카메라도 챙겼다. 최대한 많은 초록을 담아오자! 하고 출발했다.


집에서부터 국립중앙박물관까지는 꽤 거리가 있다. 생각한 시간보다 좀 더 한낮에 도착했다. 정원을 먼저 구경할까 하다가 먼저 어떤 전시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매표소로 향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소장품 전시인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이 진행중이었다. 인스타그램으로 자주 접했기에 한 번 볼까 싶어서 더 가까이 가보니 이미 매진이었다. 동시에 진행중이던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전의 표를 샀다. 아스테카 라는 민족이 있었던가? 싶었더니 영문 표기가 AZTECS다. 아즈텍이라는 단어로는 얼핏 들은 적이 있었는데. 하지만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생소한 문명이었다. 아스테카인들은 두 개의 달력을 조합해 날짜를 세었다. 태양력인 시우포우알리와 제의용 달력인 토날포우알리이다. 각각은 365일과 260일로 이루어지는데 전시에서는 큰 톱니바퀴와 작은 톱니바퀴를 원을 따라 굴리는 이미지로 설명하고 있었다. 두 톱니바퀴가 시작된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까지는 52년이 걸린다.(365와 260의 최소공배수) 52년마다 그들은 새로운 날이 무사히 밝아오기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다. 나라 안의 모든 불을 꺼뜨리고 새로운 하나의 불을 지핀 뒤 그 불을 나누어 다시 사용했다. 모든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태양이 무사히 떠오르길 기원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매일 보는 일출이지만 지금처럼 모든 것이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던 시대이기에 정말로, 어쩌면 내일은 정말 해가 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더욱 절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의 사람들이 보면 우스운 광경일지 모르지만 어쩐지 부러웠다.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 그리고 그로부터 절로 생겨나는 경건한 믿음 같은 건 정말 갖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 밝혀져 있다. 태양이 우주에서 엄청난 대폭발에 휘말리거나 하지 않을 경우 무조건 떠오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태양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큰지 그리고 지구에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지까지 밝혀졌다. 지금의 사람들에게 내일은 태양이 뜨지 않고 세상이 어둠에 잠겨 망할 수도 있으니 제사를 지내자고 하면 웃을 것이다. 그런 냉소 속에서 우린 살고 있다.


아스테카 전을 보고 나와 국립중앙박물관 2층 사유의 방으로 향했다. 1m정도 높이의 반가사유상 두 점이 전시되어있다는 설명을 읽은 후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를 지나 넓은 홀에 반가사유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카메라를 매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는 찍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눈을 감고 그 앞에 섰다.

반가사유상은 반가부좌 자세를 하고 사유를 하는 모습을 표현했기 때문에 반가사유상이다. 왜 반가사유상은 눈을 감고 있을까? 아마 주위에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더 집중이 잘 돼서가 아닐까?" 실제로 그랬다. 사유의 방에서 눈을 감고 있었던 몇 분간 정적을 온 몸으로 흡수하는 느낌이었다. 눈을 뜨고 있었을 때에는 반가사유상의 형태를 보고 있었지만 눈을 감으니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시각의 차단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익숙한 감각의 결핍이다. 그리고 그 안을 정적과 사유가 채웠다. 눈을 감아야 좀 더 집중이 잘 되는 이유는 우리가 숨쉬듯 사용하는 시각을 차단하고 이미지의 결핍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정보의 결핍 상태였던 아스테카인들이 신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처럼, 영적이고 추상적인 무언가는 가시적이고 명확한 것들이 결핍되어야 비로소 우리의 안을 채운다.

가진 것보다 스스로에게 결핍된 것들을 자각하는 사람이라야 창작을 지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가진 것들은 뚜렷하다. 지식도 물건도 돈도, 명확하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가지지 못한 것들은 모호하다. 항상 움직이고 변한다. 내면에 소용돌이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 저편에 있던 것들을 불현듯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걸 다 가진 미래의 내 모습보다 없는 게 더 많은 지금의 내 모습을 본다. 돈, 확신, 자신감, 꼭 가져야만 할 것 같은 것들이 없는 나라서 이렇게 글이라도 그림이라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없어서 좋다고 말하면 미친 것 같겠지만 정말로, 창작하기엔 없는 편이 좋다.  


3시간에 걸친 박물관 나들이를 마치고 나니 정원을 거닐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아쉽지 않게 집으로 가는 지하철로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또 이렇게 현재의 삶에 대한 믿음을 한 조각 얻고 간다. 귀한 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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