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론 Aug 15. 2022

아픈 발이 하는 이야기

가장 단순한 감각

아침에 눈을 뜨고 누워있는 시간이 길지 않은 편이다. 세수를 하지 않은 얼굴이 번들거리고 간밤의 온기가 불편하게 몸을 감아온다. '세수 해야지' 생각하고 침대에서 내려와 발을 딛는 순간 익숙한 왼발의 통증이 왼다리로, 몸으로, 정신으로까지 퍼진다.


이 발은 내게 몸에 허락된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잘 살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물론 상상이다. 특히 그 점에 대해 많이 생각하니 통증도 그렇게 와닿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해낸 생각임에도 유의미하다고 느낀다. 간만에 건전한 삶을 위한 생각을 했구나. 회피하고, 수긍하고, 남처럼 그저 살아갈 방법을 궁리하지 않고서. 


회사를 관둔지 9개월이 되었다. 회사에서의 일과는 다른 성격의 일들을 많이 경험했다. 누군가를 가르치기도 하고, 디자인을 팔기도 하고, 빵집을 청소했다. '회사에서만큼' '열심히' 해야한다는 보이지 않는 강박에 쫓겨 시키지 않아도 시간을 충실히 살려 노력했다. 작업실 벽의 페인트칠을 혼자 해냈을 때 그런 강박의 절정에서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단 한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으려 했던 시간들, 그래야만 나에게 생활이 보장된다는 생각을 증명해낸 기분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도 내가 외면한 다른 것이 잔인할 정도로 빨리 내 뒤에 서서 귓속말을 했다. '나..이제 아플게?' 몸이 아팠다. 허리가 유리조각에 꿰인듯 날카로운 통증이 찾아오고 누워서 바보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대체 나 뭐하고 있는 걸까. 움직이지 못하는 '절대안정'의 시간에 누워 나는 나 자신이 바보같다는 생각을 50번정도 한 것 같다.


기운을 내 몸을 일으켜 병원에 가 치료를 받고, 밀린 일을 처리하고 또 새로운 사람과 만나 새롭게 일을 시작하고. 지난 두달은 재개의 달이었다. 적지만 회사 밖에서 혼자 받은 일이 돈이 된다는 경험을 하고 이게 프리랜서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뭔가 불안하고 이상하지만 괜찮지 않아? '프리랜서'라는 새로운 명함을 받은 기분이 어때? 뭔가 번듯한 어른이 된 것 같아 좋지 않아?


라는 생각에 잠기지 말라는 듯, 우습게도 내가 지금의 생활에서 가장 또렷하게 느끼는 감각은 이 왼발의 통증이다. 다른 어떤 느낌, 추상,견해보다도 단순하게 나를 찌르는 감각. 한정된 생에서 어떤 이름 하에 안주하는 게 네가 원한 삶인지 지긋지긋하게 물어오는 감각. 회사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회사에 속한 듯 살아가는 개인이 되고 싶어 회사를 나온 것인지 되묻는 목소리. 아프다. 하지만 이 감각은 진짜야.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SNS에서 본, 주변인에게서 들은 게 아닌 오롯이 내가 느끼는 감각. 나는 이 통증이 던지는 의문점의 손을 들어 주련다.


끝이 있는 시간을 원하는대로 살아주겠다. 그리고 그 고민을 놓지 않겠다. 벌이로 날 설명하는 사람은 되지 않겠다. 그게 오늘 아침 욱씬거리는 발을 부여잡고 쓴 이 글의 결론이다. 

 

작가의 이전글 맥주와 와인의 차이점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