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하늘과 함께 더욱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계절인 가을이 왔습니다. 제주의 황금빛 물결을 자랑하는 억새와 푸른 바다는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고르라에서는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 안타까운 4.3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음블로그에서 '광제'로 활동하고 있는 양경만 작가와 함께 떠나는 제주도 여행코스 3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 중문 천제연 폭포 (4.3 희생자 위령비)
중문관광단지 입구에 있는 천제연 폭포는 제주를 대표하는 명승지이다. 이곳에 가서 보면 절로 숙연해지는 것이 있으니 바로 4.3 희생자 위령비다. 과거에는 소나 돼지를 잡는 장소로도 사용이 되기도 했던 천제연 폭포의 주차장.
이곳이 피비린내 나는 학살의 현장으로 바뀔지 누가 알았겠는가. 1949년 1월 4일, 무고한 양민 36명이 천제연 폭포 주차장에서 학살이 되고, 위령비에는 인근 마을에서 희생된 총 786위 영령들이 이름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4.3당시 제주경찰국 토벌대는 무장대를 효율적으로 진압하기 위하여 제주 산간지역 곳곳에 주주둔소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그곳 중 한곳이 바로 시오름 주둔소이다. 몇 년 전 조성된 한라산 둘레길을 걷다보면 만날 수 있다.
한때 제주도 전역에 32개의 주둔소가 있었으며, 토벌대 60명이 한꺼번에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규모의 주둔소도 있었다. 시오름 주둔소는 30명 규모로서 100전투사령부의 주요 거점이기도 했다.
3. 정방폭포 학살터
천제연, 천지연 폭포와 함께 제주의 3대폭포 중 하나인 정방폭포, 동양에서 유일하게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절경을 간직한 이 명소에서도 4.3당시에는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당시 서귀리 108명, 중문면 42명, 남원면 32명, 안덕면 31명, 대정면 11명 등 모두 248명이 학살을 당한 곳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들을 추모하는 시설은 전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제주도내 주요 학살터에는 추모시설들이 만들어져 있지만, 한라산 이남에서 가장 많은 양민들이 희생된 학살터에 위령비 조차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남원읍 중산간 마을인 의귀리, 수망리, 한남리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 작전은 1948년 11월 7일부터 시작됐다. 무장대는 토벌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토벌대가 주둔하고 있던 의귀국민학교를 습격하였고 이 과정에서 군인 4명이 목숨을 잃는다.
이에 토벌대는 복수를 하기 위해 주민 80여명을 의귀리의 밭으로 끌고 가 두 차례에 걸쳐 학살을 자행했고, 대부분의 시신들은 흙만 대충 덮은 채로 방치되고 있다가 그해 봄 세 개의 구덩이를 파서 매장을 하고 만다. 이후 부모형제들이 땅을 사들여 의로운 넋들이 함께 묻혔다는 의미로 '현의합장묘(顯義合葬墓)'라는 묘비를 건립하게 된다.
4.3 당시의 의귀국민학교는 의귀리, 수망리, 신흥리, 한남리 등 인근 네 개의 마을 어린이들이 함께 다녔던 학교이다. 4.3이 한창이던 1948년 12월 15일 강제로 폐교되었고, 같은 해 12월 26일부터는 이곳에 육군 제2연대 1대대 2중대가 주둔을 하게 된다.
이후 무장대의 습격을 받는 등 격전지로 변했고, 군인4명과 무장대 51명, 그리고 주민 80여명이 학살되는 장소로 변해버렸다. 수용소와 전쟁터로 사용이 되었던 국민학교, 이곳은 4.3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1949년 8월에 와서야 남원국민학교 의귀분교장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