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4.3 70주년 2018 제주 방문의 해를 맞아 - !
벚꽃이 흩날리는 4월. 그리 밝지만은 않은 제주의 봄은 맑은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집집마다 4.3 으로 떠나보낸 가족들을 향한 그리움이 가득 묻어나고 있는데요. 제주는 올해 4.3 70주년을 맞아 제주 방문의 해를 선포했습니다. 제주 도민들은 물론 제주를 사랑하는 여행자들에게도 2018년은 4.3을 더 많이 기억하는 해가 되길 바라며, 오늘은 1947년 제주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탕 탕 탕'
3.1절 28주년을 맞아 관덕정 앞에서 진행된 기념집회. 그 속에서 울려 퍼진 총성은 순식간에 그날의 분위기를 바꿔놓았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은 병원으로 옮겨졌고, 총 6명의 사망자와 6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는데요.
이날의 사건 경위는 관덕정 앞 광장에서 기념집회를 구경하던 한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에 탄 말에 차이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기마경찰이 그대로 가려고 하자 일부 구경꾼들은 돌멩이를 던지며 쫓아갔고, 경찰은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하게 되면서 구경꾼들에게 총을 발포하게 된 사건인데요.
1947년 3월 1일은 시위대가 아닌 구경꾼들이 경찰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사망하게 되면서, 제주도민들의 정부와 미군에 대한 불신, 분노의 기폭제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막기 위한 5.10 총선 반대로 2.7 구국투쟁에 이어 4.3 무장봉기가 일어났는데요.
이에 대한 보복으로써 남한 정부를 수립한 이승만 정권은 1948년 연말. 제주도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제주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외의 지점 및 산악지대의 무허가 통행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폭도배로 인정하여 총살에 처할 것이라는 포고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후 제주에서는 약 30만 명의 제주도민 중 약 3만 명을 학살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 시절 제주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담아 놓은 제주 4.3 평화기념관. 다랑쉬굴 사건, 당시 도민들에게 가해졌던 총상과 창상, 고문의 흔적들. 이곳에는 제주의 아픈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4.3 평화기념관은 평화공원 내에 위치해 있으며, 위령제단과 위패봉안실, 추모광장, 봉안관, 각명비원, 행방불명자비원, 초대광장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도서 9,313권, 일반문서 5,456점, 증언채록 영상·음향 1,302건, 사진 116장으로 총 16,187개의 사료들을 소장·관리하고 있으니 함께 확인해보시는 것도 좋겠죠?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에서 볼 수 있는 문장인데요. 아름다운 제주도의 이면에는 이런 아픈 역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올해만큼은 꼭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70년이 지난 오늘밤에도 많은 4.3 피해자들은 그날의 기억에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1948년 그 전후로 일어났던 사건들은 단지 지나간 일들이 아닌 지금도 그들에게는 이어지고 있는 하루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잊지 않으며, 다시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언젠가 다시 내 자신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래의 4.3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주 4.3. 그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저릴 제주의 그 누군가를 위해. 제주의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올 한 해는 제주를 방문하는 모든 분들이 아름다운 제주를 느끼고 제주의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보셨으면 합니다.
"둘째 아들도, 며느리도, 큰아들도
모두 내 눈앞에서 잡혀갔어.
모두 걱정 말라면서 떠나갔는데
아무도 안 돌아와.
아직도 가슴이 가득해오면
목에서 피가 쏟아져 나와.
너무나 억울해서 나는 몇 백 년이고
아들을 다시 보기 전에 죽을 수가 없어.
절대로 죽을 수가 없어..."
- 양은하 어머니(윤희춘, 작고)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