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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톱을 먹은 쥐 Oct 10. 2021

행복을 공간에 고정시키기

내게 맞는 인테리어를 만드는 가이드라인

    인테리어 책은 많고 센스가 넘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오늘의 집 같은 곳에서 센스 좋은 사람들이 올려놓은 게시물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요. 그런데 부럽다고 생각은 하지만 직접 실천해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레퍼런스는 많지만 어떻게 적용할지, 적용하는 데는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비용을 들여 현실화하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유지될지는 모르는 것이라 천지창조를 꿈꾸던 야심 찬 계획은, 살던 공간에 작은 소품 하나를 들이는 정도로 끝나게 되고는 합니다.


    이번에 글로 정리해 보려는 것은 몇 년 전 이사를 준비하면서 생각해보았던 인테리어 방법입니다. 여러 디자인 방법들을 인테리어 하는데 적용해서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인테리어를 찾아낼 가이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행복을 가구처럼 설치하는 가이드라인


0. 목적


    어떤 시공간에 있건 사람은 행복과 절망을 두루 느낍니다. 절망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은 사회 시스템이나 정신건강 수준에서 해결할 문제일 것이니 그 부분은 제하고, '현재 상황에서 행복을 최대화'하는 인테리어를 만드는 것이 이 가이드라인의 목표입니다.



1. 생활을 정리하기


    먼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찾아봅시다. 경험해보지 못한 무언가가 나를 대단히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폭은 일정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 '무언가'가 이루어지더라도 금시에 익숙해지고 이전까지 느끼던 행복과 절망의 폭 안으로 수렴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일상에서 긍정적인 순간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집의 사용자인 자신이 클라이언트이자 디자이너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자신이겠지만, 익숙함 때문에 놓치는 부분이 더 생기기도 하죠. 익숙하지 않게 자신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프레임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는 'Journey map'을 그려보는 것이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가로축은 시간, 세로축은 자신의 행복도로 두고 일주일, 하루 단위로 생활을 정리해 나갑니다. 집과 관련된 이벤트를 기록하고, 그것이 나의 기분을 어떻게 하는지 같이 적습니다. 집 밖에 있더라도 집과 관련된 내용을 적을 수도 있습니다. 가령 '밖에 나왔는데 전기매트를 켜 두고 온 것 같아 불안해졌다'는 상황도 있을 수 있겠네요. 상상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경험한 것들을 적는 것이 중요합니다.



2. 행복을 문장으로 쓰기

 

    앞에서 멋진 그래프를 그렸을 수도 있겠지만 적당히 적어 벽에 붙인 포스트-잇도, 노션에 기록한 간단한 메모여도 상관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얻어야 할 것은 문장들입니다. 


    먼저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요소를 정리합니다. '주말 아침 볕이 드는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티브이를 보다 잠깐 낮잠이 드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꼭 인테리어와 관련될 필요는 없습니다. 일어난 사건들을 모두 기록하여 행복의 요소를 분석하고(사람/물건, 시간, 공간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얻는 행복을 정의할 수 있다면 결과물이 효과가 있었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3. 절망을 문장으로 쓰기

인간은 누구든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고 안심을 얻기 위해 살아간다.
 - Dio Brando


    일상의 질을 높이는데 한 가지 더 중요한 요소는 절망을 피하는 것입니다. 자주 마주치는 일상의 절망을 찾아내면 좋습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들이지요. 축축한 수건, 넘쳐나는 쓰레기통, 쌓여있는 설거지거리, 불안하게 쌓여있는 옷더미가 될 수도 있겠네요. 당장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 일이어도 괜찮습니다. 아니면 문제를 보면 해결책이 먼저 떠오르기도 하는데, 일단은 사건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떠올린 해결책을 너무 사랑하게 되어 하나의 문제에만 집중해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4. 삶의 필수 요소들


    집이 수행해야 하는 기본 기능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주'의 기능으로 떠올리는 것은 먹고, 씻고, 자고, 물건들을 보관할 수 있는 외부와 단절된 공간입니다. 기본 요소라고는 하지만 어떤 기능은 축소하거나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부득이한 경우에 한하지만 대부분 요소는 외주화가 가능합니다. 그 요소를 더하고 뺌이 나를 불행하게,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생각해봅시다.



5. 아이디어를 만들기


    최고의 집들이 선물은 무엇일까요? 받는 사람 취향에 반하지 않으며, 실용적이고, 작거나 소모품이라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종합적으로 고려해 봤을 때 최고의 선물은 '공간'입니다. 물론 아공간 주머니를 구할 수 없으니 휴지나 방향제를 집들이 선물로 들고 가는 거겠죠.


    인테리어에서 가장 큰 제약조건은 한정된 공간과 예산입니다. 멋진 인테리어를 참고하다 보면 한 가지도 제대로 구겨 넣기 힘든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단 목표는 이상적으로 세워봅시다. 이번 단계는 앞서 문장으로 정리했던 것을 아이디어로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행복의 요소는 그것을 강화하거나 유지하는 방법을, 절망의 요소는 배재하거나 발현을 지체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봅니다. 많은 문제들은 해결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들어가지 말라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생기는 오솔길은 어디에 길이 생기면 좋을지 힌트를 주고, 난간에 쌓여있는 쓰레기들은 어떤 쓰레기통을 설치하면 좋을지 알려줍니다. '원래부터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봅시다.



6.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쓸모없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집에 두지 마라.
- William Morris

    벤다이어그램을 그리고 각 영역에 다음의 이름을 붙입니다.

호감: 내가 이것을 쓰고 싶어 할까?
실현 가능성: 내가 실현할 수 있을까?
생존 능력: 이것을 생활에서 유지할 수 있을까? 

    뛰어난 해결책은 이 세 가지 요소의 교집합에 있습니다(*Terence Chan의 아이디어 검증 방법을 참고함).

판단이 어렵다면 좀 더 세부 요소를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정삼각형의 꼭짓점에 항목 이름을 쓰고 각 요소의 점수에 따라 큰 원을 그립니다. 상황에 따라 기본 점수를 줄 수도 있겠네요. 자원이 충분하다면 실현 가능성에 가점을 줄 수 있습니다. 1:1 사이즈의 기린 모형을 집에 둔다는 아이디어는 호감이 100/100이라도 일반적인 건물의 천장 고를 생각했을 때 실현 가능성은 0/100으로 기각입니다.



7. 배치하기

주거 해부 도감, 마스다 스스무

    마스다 스스무의 주거 해부 도감에서는 방의 배치를 카드놀이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책에서 말하는 것은 집짓기 수준 공간 배치를 말하는 것이지만, 인테리어 할 때 가구 배치에 활용할 수 있어 보입니다. 


    도구가 유연하면 만들어지는 결과도 좀 더 유연해질 수 있습니다. 종이와 펜이 더 간단한 도구지만, 배치를 바꿔가면서 생각하기에는 카드가 더 좋지요. 카드가 제일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도구는 상황에 맞게 사용하면 됩니다. 태블릿에 그림을 그려도 되고, 마인크래프트에서 집을 만들고 배치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들을 실생활 평면 위에 배치해보고 제대로 구성될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자리가 부족하면 버릴 카드를 선택하고, 서로 가깝게 배치될수록 좋은 카드가 무엇인지도 생각해봅니다. 이리저리 바꿔보고 좋은 방법을 찾아봅시다. 로열 스트레이트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원 페어로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8. 프로토타이핑과 테스트


    좋은 가구는 비쌉니다. 실제로 생활 속에서 사용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멋진 접이식 가구는 물건이 싸여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수납장은 쓰레기를 효과적으로 보관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며 멋진 테이블이 새끼발가락의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땐 모형을 만들고 프로토타이핑(모형을 만들어 사용해봄)합니다. 일반적인 가구 스케일을 대신할 임시 물품으로 골판지 박스가 있습니다. 택배를 받을 때마다 생겨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충분히 튼튼해서 모양을 잘 유지하며 필요한 경우 가공도 쉽거든요. 테이블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위치에 적당한 크기의 박스를 둔다거나, 날개를 안으로 접어 넣은 박스로 수납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들여놓고 싶은 가구와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박스를 실생활 공간에 두고 진짜 가구인 것처럼 사용해보면서 걸리적거리지는 않는지, 생각한 만큼 물건을 잘 정리하게 되는지 테스트해 봅니다. 좋은 수납장이지만 접근이 어려워 잘 쓰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위치를 바꿔가며 테스트해보고 충분히 잘 쓰고 있다고 판단한 뒤에 가구를 구매하면 됩니다.


    하지만 포장용 박스가 위생에 결코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빠르게 마음을 정하고 버리도록 합시다. 곧 이사하니까 가구를 사기는 아깝다고 생각하던 때, 마침 커다랗고 튼튼한 박스가 생긴 김에 임시 수납공간으로 썼던 적이 있습니다. 안에 작은 박스를 채워가면서 칸을 늘리다 보니 1년 넘게 그대로 살게—환경에 대해 한마디 해보려는 행위예술—된 적이 있습니다. 환경에 좋으면 다른 생물에게도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지구의 지배적인 생물종은 곤충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제안


    마음껏 꾸밀 수 있는 공간을 가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공간이 있더라도 멋지게 꾸미는 것도 어렵죠. 오늘의 집 같은데 올라오는 인테리어 포스팅을 보다 마음에 드는 걸 보면 재건축과 인테리어의 경계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작업을 거쳐 결과물을 만들어내고는 합니다. 결과에 확신이 있다 하더라도 이만한 자원을 쓰기는 쉽지 않지요. 


    보기 그럴듯한 인테리어를 추구하다 보면 길을 잃기 쉽습니다. 인스타그램 포스팅이 일상에 포함된다면 사진이 잘 나오는 공간을 마련하는 결과로 이어나가면 좋지만, 시작점으로 삼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외형 아래에서 생활에 좋은 공간을 만드는 목적이 자리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뼈대를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일상의 행복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고, 외형은 멋진 인테리어 자료들을 참고해서 붙여 넣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가성비 인테리어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가성비의 성능에 자신의 행복을, 비용에 절망을 포함해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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