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까지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
멘체스터에서 런던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어떤 라디오 방송에서 상금을 걸고 '멘체스터에서 런던까지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을 공모했습니다. 이 이벤트는 상당히 관심을 끌어서 각 분야의 전문가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어요. 어느 베테랑 운전기사는 자신만이 아는 지름길을 가지고 상세한 루트를 설명했고, 순간이동을 하면 된다는 마술사, 로켓을 쏘아 올리자는 공학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모두가 수긍하는 일등이 선정되는데 그 방법은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영어로 검색했을 때 원문을 찾을 수 없어(한국어로 검색하면 많이 나옵니다) 진짜 있었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인상 깊은 이야기였죠.
얼마 전 나와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차가 몇 대인지 보여주는 서비스가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티맵 서비스인 것은 알았는데 검색이 안돼서 못 찾던 중 코로나 시국에 캐리비안베이 가는 사람이 많다는 뉴스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티맵 모빌리티에서 출시한 'T지금' 서비스였네요.
소개하는 기사는 많은데 아쉽게도 보도자료 내용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 다 같은 내용이라 자세한 것은 알기 어려웠습니다. 일단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 검색하는 사람의 일정 범위 기준으로 특정 목적지를 선택한 계정이 몇이나 되는지 알려주는 서비스라고 합니다. 목적지로 가는 차량이 소수인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간단한 조치로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보를 가지고 더 재밌는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 인용한 이야기에 이어 목적지 기반 실시간 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얘기했을 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도로 속성과 경로 계산, 실시간 교통 정보를 종합해 최적의 길을 찾아내는 내비게이션이 있습니다. 이미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해주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더 이상 빠르게 갈 수는 없지만 가는 길을 더 즐겁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위치기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소셜 미디어를 제안해봅니다. 현재 같은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끼리 대화하는 클럽하우스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있습니다.
도로는 대단히 특이한 공간입니다. 면적을 가지고 있지만 선으로 표현되고,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지만 반복해서 방문하기도 하고, 빠져나가기 위해 계속 움직이지만 그 위에 머무는 것이기도 합니다. T지금 서비스는 도로보다는 현 위치와 목적지를 기반으로 하여 정보를 주지만, 현 위치와 방향, 속도를 가지고 같은 도로 위를 가는 이용자들을 그룹 짓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외부 청취자를 철저하게 막을 필요는 없지만 소속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룹을 짓는 것이 유리합니다. 또 대화 기록이 남도록 한다면 '경부고속도로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명예의 전당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위의 조건과 함께 지금, 여기에서의 이야기가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이야기는 나와 가장 가까운 상황이 반영되는 이야기라고 하죠. 차가 밀린다면 밀리는 상황에 대한 얘기가 될 것이고, 좋은 날씨, 앞쪽에서 일어난 돌발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될 수도 있겠네요.
자율주행이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운전 중 쓸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의 소셜 네트워크가 아닐까요? 사용 맥락에 맞춰 인터페이스에서도 고민할 것이 많습니다. 발언권 신청은 어떻게 할까요? 박수는 어떻게 칠까요? 음성 인터페이스를 사용할 여지도 있겠네요.
포스퀘어를 기억하시나요? 체크인 열심히 하면 그 지역의 시장(Mayor)이 될 수 있었지요. 그 자체로 재미도 있었고 모르는 지역의 맛집 찾을 때도 유용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서는 모두의 기억에서 잊힌 것 같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위치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는 사용자층이 한정적이긴 하지만 그나마 포켓몬 고 정도가 남은 것 같네요. 어찌 되었든 이상하게 생긴 조형물을 보고 '여기가 우리 동네 제일 인기 있는 포켓몬 체육관이야'라고 소개하는 건 멋지지 않나요? 현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가 더 흥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운전을 하지도 못하고, 클럽하우스도 사용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제안하는 서비스라 허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으면 졸기나 하는 재미없는 동승자로서 힘들게 운전하는 운전자에게 대화 상대라도 찾아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