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먼저 자란 아이
“선생님… 저 아마 이번 달까지만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집이 조금 어려워서요.”
학원을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쉽지 않다. 이럴 때면 원생 유지를 위해 계속 다니는 게 어떻냐고 붙잡아야 하는데도, 그저 마음이 안쓰럽기만 한 아이들이 있다.
사실 아이가 나에게 그런 말을 직접 건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열이면 여덟은 말 한마디 없이, 학부모의 통보로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게 되는 게 대부분이다. 특히 학원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의 라포는 비누거품 같다. 부모가 찬물을 끼얹으면 하루아침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
B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용기 내어 내게 그런 마음을 드러냈다. 아마 나를 좋아하기에, 더 다니고 싶었기에 그 아쉬움을 솔직하게 보여준 것이겠지.
B는 여학생이었다. 종종 자신의 사적인 고민을 털어놓던 아이였고, 그럴 때마다 나는 진심을 담아 조언을 해주곤 했다. 이번에도 B를 다독이며 그만두기 전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힘내자고 했다.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방법도 몇 가지 알려주며 말이다.
가르치다 보면 종종 어린 시절의 나를 닮은 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럴 때면 그 시절의 나에게 텔레포트한 듯한 기분으로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사실 절반 이상은 먹히지 않는다. 벌써 다 커버린 것처럼 세상의 짊을 짊어지고 있는 눈을 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철든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저릿하다.
보통 철이 덜 든 아이들, 남을 과도하게 배려하지 않는 아이들은 대체로 가정환경이 안정적이다. 그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배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순수한 아이들 그대로의 마음을 가졌으면 하지만, 부모의 갈등과 결핍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이된다.
B가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던 것도 결국은 집에서 돈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불안정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부모의 감정이 학원비마저 아깝게 느끼게 했을지 모른다.
B의 1학기 기말 성적은 잘 나왔다. 중간 기말 통틀어 1등급을 받았다.
부모님은 예상외의 선택을 하셨다. 잘하니까 혼자 하라고 할 만도 한데, 아무래도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잘하는 과목을 꾸준히 이어가기로 아이와 합의를 했나 보다.
B는 지금도 학원에 다니고 있다. 가끔 교실 뒤편에서 묵묵히 공부하는 B를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의 어깨에 너무 이른 계절이 내려앉지 않기를, 세상이 조금만 더 아이에게 너그러워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