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는 아이
우리 애… 기술이라도 배우게 해야 할까요?
공부는 팔자라는 말이 있다.
사주팔자대로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글 잘 쓰는 사람에게는 문창귀인운이 있다느니, 펜 잡고 사는 사람에게는 현침살이 있다느니—이상하게 딱 맞아떨어지는 무언가가 있는 건 사실이다.
나 역시 그런 이야기에 은근히 흥미를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학원에서 만나는 아이들, 잘하는 애든 못하는 애든 다들 자기 팔자대로 살아가는 거겠지 싶어 굳이 차별하지 않는다.
우리 학원 H는… 솔직히 말해 머리를 잘 안 쓴다.
누나가 공부를 잘하는 걸 보면 ‘안 하는 것’ 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머리가 굳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계도 안 돌리면 녹이 슬듯이, 얘는 학원에 오면 뇌를 꺼내 사물함에 두고 가는 것 같다.
숙제는 성실하다.
자습서를 읽고, 문제를 풀고, 답을 체크하고, 오답 정리를 하고, 노트도 쓴다.
그런데 결과는… 늘 충격적이다.
이럴 때 부모들은 결국 전화한다.
“우리 애… 공부 그만 시킬까요?”
“기술이라도 배우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나는 처음엔 정말로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머리가 없는 아이에게 빨리 다른 길을 찾아주는 게 맞겠다고도.
하지만 원장님은 달랐다. 그 학생을 학원에 잡아두셨고, 학부모를 설득하셨다.
“기술도 공부해야 익혀요.”
원장님의 지론이다.
맞다. 기술을 배우는 것도 결국 공부다.
물론 몸으로 익히는 일도 있지만, ‘진짜 엔지니어’들은 결국 머리가 있어야 한다.
보통은 공부가 싫다고 해도 학교를 그만두게 하지는 않는다. 학교 교과를 배우는 과정은 단순히 지식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작은 사회를 경험하고, 갈등을 겪고, 해결해 나가며 살아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전 과목 교과서 속 아주 작은 정보라도 언젠가는 내 삶을 비추는 불빛이 될 수 있다.
못 배운—not ‘못 배운’이 아니라 ‘안 배운’—사람들이 불법을 자행하고, 캄보디아까지 넘어가 보이스피싱에 뛰어들고, 남의 주머니를 터는 데 혈안이 되는 시대다.
세상을 바라보는 힘이 있었다면, 최소한 그런 길로까지는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공부 잘한다고 무조건 잘 사는 것도 아니지만,
공부 못한다고 반드시 못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국어는 국어만 가르치지 않는다. 다른 과목을 이해하는 바탕, 세상을 바라보는 근력, 생각의 구조를 튼튼하게 만든다.
어릴 때 ‘독서하라’고 그렇게 말하던 이유가 결국 이것 아니겠는가.
잘 읽어라. 무엇이든 ‘읽는 힘’이 있다면, 아이가 걷는 길이 조금 거칠더라도 결국 잘 살아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부모들이 말하는 “우리 애… 기술이라도 배우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은 결국 공부를 포기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최소한의 자리를 지키며 버텨낼 힘이 있는지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말인 것 같다.
그 마음을 모를 수는 없다. 눈앞의 성적은 답답하고, 아이는 갈피를 못 잡는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줘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확신하게 된다. 기술을 배우든, 대학을 가든, 어떤 길을 선택하든 결국 그 길을 붙잡고 끝까지 밀고 나갈 힘은 ‘읽고 이해하는 힘’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결국 아이가 어떤 분야에서 일하게 되든, 그 일을 파악하고, 문제를 읽고, 판단하고, 해결하려면 기초 학습력이 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 한 권을 다 읽어낼 끈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 부모들이 서두르지 않았으면 한다. 너무 쉽게 방향을 꺾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지금 당장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자기 삶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조금씩이라도 쌓아가고 있는지 지켜봐 주었으면 한다.
길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읽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힘이 쌓이면서 어느 날 불쑥 자기에게 맞는 모양으로 열린다.
결국 중요한 건 공부냐 기술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걷든 그 길을 읽고, 이해하고,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힘을 지금 이 작은 공부 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기술이냐 공부냐. 우리는 묵묵히 책 한 권을 읽어내고 세상을 읽는 힘을 오늘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