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친다는 것, 기다린다는 것.
우리 학원에는 하나의 규칙이 있다.
원장님의 영업 비밀이라 설명은 생략하겠다.
다만 확실한 건, 이걸 성실하게 따르는 아이들 치고
실력이 안 오르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습 방법이라는 건 결국 습관의 형식이다.
습관이 쌓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 동안 버티는 태도가 사람을 만든다.
대부분 아이들은 따른다.
문제는 상위권 몇몇이다.
고집이 있고, 자기 방식이 있고,
효율을 명분으로 든다.
선생님, 이건 너무 비효율적이에요.
저는 이렇게 해야 더 잘 돼요.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나도 학생 때 효율을 따졌고, 지금도 효율 좋아한다.
하지만 효율을 핑계로 기본을 건너뛰는 순간
묘하게 빈틈이 생긴다.
눈으로만 공부하면 편하다.
손 안 아프고, 모르는 것도 ‘대충 아는 것처럼’ 넘어간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꼭 두 문제는 놓친다.
항상 애매하게 틀리는 부분이 생긴다.
출제자의 의도를 읽지 않고
내 추론만 믿는 순간 틀리는 문제들.
조금 빠른 자신감이 만든 균열이다.
나는 이걸 억지로 고치려 하지 않는다.
교육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다.
시간이 가져가는 영역이다.
그중에 G가 있다.
전형적인 우등생.
예의 바르고, 냉정하고, 자기 방식이 확실하다.
모든 과목 잘한다.
전날 벼락치기로 통합사회 100점을 받고
전교 1등을 했다고 한다.
국어도 전교 10등.
그럴 만한 아이다.
우리 방식도 알려줬지만
그 아이는 자기 루틴을 고집한다.
선생님, 저는 이렇게 해도 괜찮아요.
지금은 맞다.
감각이 있고, 기억력도 좋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방식은 느슨하게 쌓이는 이해다.
단단한 계단식이 아니라,
한 번에 떠올리는 방식이다.
그 차이가 중요하다.
특히 국어 문법처럼 장기 축적형 영역에서는.
그래서 말한다.
지금도 잘해. 근데 걷지도 않고 어떻게 뛰어? 천천히 가는 것도 필요해.
그 말이 당장 변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표정으로 티가 날 정도의 깨달음도 없다.
그래도 괜찮다.
이런 학생은 하루가 아니라
한 학기, 혹은 일 년 단위로 변한다.
이건 힘으로 끌어당기는 일이 아니라
서서히 중심을 옮겨가는 과정이다.
신념과 규칙.
학생과 교사.
아이의 확신과 내가 지켜본 시간.
매일 줄다리기를 한다.
내가 이길 때도 있고,
아이의 기세가 앞설 때도 있다.
둘 다 괜찮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결국 아이가 흔들리지 않는 방식으로
스스로 서게 만드는 일.
오늘도 조금씩 당기고,
조금씩 놓아준다.
가르친다는 것,
결국 기다린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