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교육
“너 꿈이 뭐니?”
“부자 돼서 놀 거예요.”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대답하면, 순간 웃음이 나지만 한편으론 씁쓸해진다. 예전엔 과학자나 선생님을 이야기하던 아이들도 많았는데, 지금 아이들은 훨씬 더 솔직하다. 돈만 있으면 굳이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세상도 어느 정도 그 믿음을 강화해주는 시대다.
숙제 했냐고 물으면 “못 했어요, 좀 바빴어요”라고 말한다. 바빴다는 말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굳이 캐묻지 않아도 안다. 공책은 거의 그대로인데 눈은 무겁고, 머리는 흐리고, 손은 폰을 떠나지 않는다. 문제를 풀다가 멍해지고, 필기하다 말고 허공을 바라보고, 집중이 흩어지면 조용히 졸음과 싸운다. 해야 할 걸 알면서도 하기 싫음에 자꾸 밀리는 표정이 교실 곳곳에서 보인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좀 안쓰럽다. 잘 배우지 못해서 문제를 풀지 못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싶어서다.
초등학교 때 쉬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는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그 습관을 슬며시 이어간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결과를 얻기를 바란다.
이건 비난이 아니라 교실에서 오랜 시간 학생들을 지켜보며 얻은 조용한 결론이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다.
엉덩이로 한다.
앉아 있는 시간, 버티는 힘,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것을 선택하는 근육.
이걸 먼저 길러야 다른 능력들이 따라온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도파민 속에서 자란다.
궁금한 건 검색으로 해결하고, 생각은 짧고 빠른 화면에 맡긴다. 깊이보다는 속도, 축적보다는 소비에 익숙해진 시대다.
사실 나도 느낀다.
책을 읽다가도 금세 화면으로 시선이 옮겨가고
영상 한 편 보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마음 한편이 허전해진다.
엄마라서, 바빠서가 아니다. 집중력이 자꾸 어딘가로 흘러가는 시대를 살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더 그렇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그걸 참을 이유는 별로 없다.
그래서 ‘공부에 오래 붙어 있기’가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렸다.
교육은 층을 쌓는 일이다.
초등에서 기초를 배우고 중학교에서 넓히고 고등학교에서 비로소 깊이를 만든다.
그런데 기초 없이 갑자기 비약을 바라는 순간들이 있다.
흙을 다지지 않은 땅에 건물을 올리려는 마음.
잘 되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부모도, 아이도, 교사도 그 현실 앞에서 마음이 흔들린다.
아이들은 잊는다. 심지어 잘하던 아이도 잊는다.
중학교 때 그렇게 외웠던 품사와 문장 성분이 고등학교에 올라오면 낯선 단어처럼 보인다.
그래서 다시 가르치고, 다시 풀고, 또 반복한다.
이게 지루해 보여도, 교육은 원래 잊음과 반복의 싸움이다.
학원은 길을 보여줄 뿐이다.
직접 걷는 건 아이고
옆에서 속도를 맞춰주는 사람은 부모다.
그냥 맡긴다고 되는 것도,
억지로 끌어간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같은 자리를 함께 지키는 힘,
그게 결국 아이를 오래가는 사람으로 만든다.
공부는 재능보다 태도이고
순간의 성적보다 꾸준함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잊고, 다시 배우고,
또 쌓아가며 자란다.
그리고 그 과정 옆에서
다그치지 않고 놓지도 않는 마음,
나는 그게 교육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