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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Mar 07. 2020

[서평] 방전된 나, 충전하기

[더퀘스트] <사실은, 많이 지쳐 있습니다> 서평단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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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로나19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됐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정신이 없다. 머리 속은 복잡, 마음은 답답. 급한 일을 마무리하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펼쳤다. 오랜만의 서평이라 설렌다. 잠시 딴 이야기이지만, 카페인 좀 줄여볼 생각을 하던 차에, 생강차가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생강만은 부담스러워서 레몬 섞인 티백을 사서 2주일 정도 마셔봤는데 나한테는 안 맞는 것 같다. 다시 커피. 


<사실은, 많이 지쳐 있습니다>라는 책의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두껍지 않은 표지와 적당한 크기를 가지고 있어서, 서평단이 아니었어도 일반 서점에서 무심결에 집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평소에 단순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더 그렇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책 크기를 조금만 늘려 책 전체 페이지 수를 줄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책을 쫙 펴서 읽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책이 접힌 부분에 글을 읽기 위해 책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귀찮았기 때문이다. 접힌 부분만이라도 여백이 좀 있었다면 책을 읽는 것이 더 수월했을 듯하다.


책에는 내용과 연관되는 삽화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머릿말에서 '어떤 부분이 지나치게 길다고 느껴지면 그냥 그림만 보고 넘어가도 괜찮다.'고 했다. 성격(만화책을 봐도 아주 작은 글과 그림까지 다 보고 넘어가는 피곤한 성격)상 그러지는 않았지만, 가끔 너무 길다는 느낌을 받을 때 생각을 환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삽화였다. 삽화의 의미를 모두 파악할 수 있던 건 아니지만.


초반에는 인용된 인물과 글이 너무 많게 느껴져서 그 내용에 과부하(Overwhelm)가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번 쉬고 다시 읽었다. 그대로 인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녹여 내어 기술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내 읽기 능력(등장인물이 많은 소설은 읽지 않는다.) 탓일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은 또 누구야.'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초반보다 인용이 줄어든 편(글 스타일에 익숙해진 것일 수도)이라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바쁘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어떤 모임에서든 내가 얼마나 바쁜지 이야기하느라 또 바쁘다. 나 역시 그랬다. 나의 20대는 정말이지 24시간이 모자랐다. 내 다이어리에 있는 일정을 보고 지인들이 연예인이냐고 했을 정도다.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부담해야 하는 그때의 상황은 충분히 과부하가 걸릴 상황이었다. 잠도 부족했고, 먹는 것은 부실했으며, 몸과 머리를 써야할 일은 많았다. 바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도 그나마 과부하를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을 쪼개며 술 한 잔했던 내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 덕분이었다. 


30대 초중반은 일하면서 취미생활도 병행할 수 있을 만큼 안정된 시기였다. 일과 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는 취미생활로 풀었고, 그때도 역시 내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30대 후반에 일과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배가 되었고, 거기에 결혼까지 합해지면서 더 힘들어졌다. 참석해야 하는 집안 행사가 많아지면서 내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졌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아가를 낳고 기르면서 불합리한 일을 많이 겪었다. 아가의 존재는 내게 큰 축복이며 행복이지만, 그만큼 날 힘들게 하는 일이 많았다. 그 과부하를 견딜 수 없을 때, 만날 수 있는 내 사람조차 없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었다. 오롯이 아가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삶. 그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웠다. 


정말 힘들었을 때는 하루를 마치며 잠자리에 누워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일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피곤한 게 아니었다. 그저 지쳐서 무기력해졌던 거다. 그래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그만할 것과 계속할 것, 새롭게 시작할 것을 정했고 그렇게 했다. 그 결정때문에 힘들어진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과부하에서 벗어나기는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내 과부하가 가족에게 전이되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 뿐이다.


원래 멀티력(한번에 여러 일을 하는 것)이 높은 편이었던 나. 그런데 육아를 하면서 그 멀티력은 엄청나게 상승했다. 그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내 정신이 피폐해지고, 몸을 돌볼 수 없어졌으니까. 방전이 되어간다고 느낄 때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 때리고 있는다. 그게 내가 찾은 충전 방법이다.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좋은 방법을 찾아 적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다. 칭찬 받은 기분.


넘쳐나는 정보, 그 안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야 하는 피곤함까지 더해져, 과부하를 겪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 요즘 최고의 과부하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코로나19 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정부와 의료진이 아닐까. 지금은 그들이 책을 읽을 여유조차 없겠지만, 이 상황이 종료되고 난 후에 이 책을 통해 지친 마음을 다독였으면 좋겠다. 이 상황이 어서 안정되기를. 모든 사람들이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 다시 일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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