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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Oct 06. 2018

마음만은 중산층

| 부와 인성은 정비례?     


얼마 전, 한 택배기사의 글이 화제가 됐다. 자신이 택배 배송을 하면서 중산층과 서민층을 대해본 결과, 두 계층의 예의에 차이가 있다는 것, 즉, 서민층보다 중산층의 인성이 좋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물론, 그의 경험을 폄하할 생각은 없고,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저런 인성으로 살아왔으니 부자들이 부자인 것이다"라는 말에는 실소가 나왔다. 그 글을 보면서 중산층에 대한 그의 갈망이 느껴짐과 동시에, "내 아이가 돈 없는 아이들과 섞이는 게 싫어서 이 동네에서 계속 살려고 한다"라고 말했던 어느 전문직 종사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중산층과 서민층을 나눈 기준은 대상자를 만난 장소였다. 그가 만난 사람이 그곳에 사는 사람인지, 잠시 들른 사람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상자를 만난 장소에 따라 사람의 계층을 구분한 것이다. 그의 기준은 ‘돈’이었다. 돈의 많고 적음은 인성의 척도가 될 수 없다. 나는 돈이 없어서 밑바닥을 치다가 요즘 좀 살만해졌는데, 그럼 나는 점점 인성이 좋아지는 건가?     


그가 중산층에게 받았다는 친절(미소, 엘리베이터 버튼 눌러주기, 음료수 주기 등)을 서민층에게 받았다 해도, 그는 과연 그들의 인성이 좋다고 판단했을까? 힘든 상황에서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할 수는 있겠지만, 친절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친절이라는 것은 인성을 이루는 많은 요소 중의 하나일 뿐이고, 정말 인성이 좋아서 친절을 베푼 사람도 있겠지만, 얕은 동정심이 친절로 나타난 사람도 있을 테니까.     


나는 친절한 편이다. 예전에 직장에서 친절직원으로 뽑힌 적도 있다. 그의 기준으로 보면, 택배기사님과 마주치면 인사하고, 기사님들한테 문자 받을 때마다 감사하다고 답문 하는 나는 친절한 중산층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리 좋은 사람도 아니고, 돈도 없다.          



| 중산층의 기준     


일단, 중산층과 서민층의 구분 기준이 ‘부(富)’라는 것부터가 별로다. 중산층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리 명확한 것도 아니지만, 나는 ‘중산층에 속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다보스 포럼의 개념에 동의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나라별 중산층 기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다른 나라는 누군가에 의해 제시된 기준이고 우리나라는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 기준이기 때문에 비교 대상으로 삼기에 무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구성원이 인식하는 기준과 크게 차이는 없을 것이다. 단, 프랑스의 기준 중 일부(외국어, 스포츠, 악기, 요리 등)는 우리나라에선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프랑스 : 퐁피두 대통령이 Qualite de vie(삶의 질)에서 제시한 기준     

1. 외국어 하나 정도는 하기

2. 스포츠 직접 즐기기, 악기 다루기

3.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하기

4. 공분에 의연히 참여하기

5. 약자 돕기, 꾸준히 봉사활동하기     


영국 : 옥스퍼드대에서 제시한 기준      

1. 페어플레이 하기

2. 자신의 주장과 신념 가지기

3.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기

4.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하기

5.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하기     


미국 :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기준     

1.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기

2. 사회적인 약자 돕기

3.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기

4. 정기적으로 비평지 받아보기     


한국 : 직장인 대상 설문 결과     

1.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 월급 500만원 이상

3. 2,000CC급 중형차 이상 소유

4. 예금 잔액 1억원 이상 보유

5. 1년에 한 번 이상 해외여행 다니는 정도         


      

| 돈 없어도 고상하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라의 중산층이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을 의미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자녀 교육도 할 수 있고 문화생활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지원해줄 수 있고, 먹고 싶은 거 사줄 수 있는 정도면 좋겠는데, 앞날이 깜깜하다.


나는 소유욕이 없는 편이라서 그나마 다행인데 아가는 어떤 성향으로 자랄지 모르니 두렵다. 돈이 많지 않더라도 없어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타인에게 민폐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범을 보여야할텐데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 걱정되기도 한다.


정말이지 고상하게 나이들고 싶으니, 로또나 사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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