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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Feb 07. 2020

인생 후반부를 시작하며

얼마 전부터 노트북에 "앱을 열 수 없습니다."라는 창이 계속 생겼다. 구글링하며 이리저리 해봐도 해결되지 않아서, 이미지 파일을 그림판으로 열어보거나 pdf로 변환해서 볼 정도였다. 작업할 것이 많다는 핑계로 미련하게 그렇게 사용했다.


얼마 전, 시간 여유가 생겨서 윈도우 업데이트를 했다. 루 스크린이 떴다. 하... 왜 이렇게 업데이트만 하면 문제가 생기는지. 이 역시 해결이 되지 않아 은 밤에 서비스 예약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방문했다. 윈도우를 다시 설치해야 한다는 기술자의 판단 하에, 파일을 옮기고 윈도우 초기화를 했다.


그날은, 오후에 화상 미팅, 제출해야 할  가지 서류와 시스템에 입력할 내용 정리 등, 할 일이 많았던 날이었다. 꼭 이럴 때 일이 꼬인다. 남편 노트북을 빌려 급한 일은 처리했다. 블루 스크린을 봤을 때는 완전 멘붕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학기 시작 전에 깔끔하게 세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상황다. 남편에게 부탁해서 윈도우부터 OA(한글,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 프로그램을 정품으로 싹 깔았다. 평일 계속되는 야근으로 피곤할 텐데 도와준 남편에게 감사.


작년에 약 15년 간의 사회생활을 정리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통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아이 어린이집은 출근이 늦은 남편이 등원하고 내가 하원했지만, 버스 한 번 놓치면 오후  7시 반까지 어린이집에 혼자 있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컸다(감사하게도 아이는 너무 잘 지내줬). 이런 상황에 다시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것은 포기했다. 몇 군데 본 면접에서 빠지지 않은 질문은,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맡길 사람이 가까이에 있느냐.", "아이가 너무 어린데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겠느냐."였기 때문이다. 면접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그런 질문받은 적 없는데, 정말 다르구나."라고.


퇴직 후, 나라에서 지원하는 이런저런 교육도 받아보고, 여기저기 지원서도 내보면서, 내 인생 후반기는 강사로서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막연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자신이 없었는데, 여러 교육과정을 이수하면서 받은 긍정적 평가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공고문을 보고 지원한 결과, 3월부터 대학 강의를 맡게 되었다. 번 학기에 잘해야 계속 이어질 테니 정말 중요한 시기인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강의를 해왔으니 잘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는, 프리랜서는 커녕 계약직으로 일해본 적이 없어서 풀타임으로 근무를 하지 않는다는 게 어색하긴 하다. 일단은 서류 검토와 면접을 통해 내게 의를 맡겨주신 분들의 결정이 옳았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고,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하고 싶다.


항상 생각한다. 수업은 누군가는 가르치고 누군가는 배우는 게 아니라, 서로 배우는 시간이라고. 5살 아이를 가르칠 때도 배우는 것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혼자 고군분투하느라 바빴던, 토닥여주고 싶은 내 인생 전반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 후반기를 고상하게 살아보련다. 잘 해내고 싶다. 잘할 수 있을 거다. 아니, 잘할 거다. 아자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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