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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Mar 28. 2023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일인가



  밀물이 들어오고 썰물이 빠져나가듯 때마다 일어나는 일이 있다. 한 번 이 일이 일어나면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은 이야기로 가득 찬다. 그 일 외에 다른 이야기들은 머물 자리가 없어진다. 모두의 관심사는 바로 그 일의 전말을 향한다. 맞다. 유명인의 약물 오남용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일종의 청소다. 마약이라는 단어는 그 이름부터가 무시무시하다. 머릿속에 마약, 두 글자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이미지들이 있다. 몰골이 말이 아닌 중독자, 눈빛이 불안정하고 마음이 불안해 보인다. 허름한 옷을 걸친 얇은 몸에서는 생명의 힘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손이 덜덜 떨린다.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흰 가루, 어떤 가루는 얇은 줄 모양으로 펼쳐 코로 흡입하고, 또 어떤 가루는 쇠 숟가락에 담아 불 위에 숟가락을 올려 녹인 후 주사기에 넣어 자기 팔을 찌른다. 도대체 저 짓을 왜 하는 거지, 저렇게 삶을 망쳐가면서. 이 정도면 충분히 마약에 대한 마음속의 이미지들을 모은 것 같다. 이제 다 끌어모았으면 한꺼번에 모아서…… 비워버리자. 이 글은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근원을 알 수 없이 자리 잡아버린 묵은 생각을 버리지 않고서는 읽을 수 없는 글이다. 그런 묵은 생각들은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도록 방어하는 일을 한다.


  영적인 성장에 관심이 많았던 지난해에 말로만 듣던 디톡스를 하게 되었다. 나마저도 처음엔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매운 음식과 정제설탕, 카페인을 전부 2주 동안 끊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배불리 먹은 뒤 커피를 마시며 단 걸 먹는 일이 삶에서 사라지게 됐다. 문제는 내가 바리스타 일을 하며 먹고살던 때라는 것인데, 좋은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선 다른 카페도 많이 가보고, 거기 바리스타는 어떻게 하는지도 눈여겨보고, 여러 카페의 다양한 음식들도 맛봐야만 뒤쳐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카페인이라는 약물 자체를 넘어 ‘카페 문화’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에 들었던 핑계일 뿐이었다.


  커피는 나에게 심한 중독 증상을 가져온 약물이었다. 하루를 시작하려면 커피부터 마셔야 했고, 일하다가 지치는 느낌이 들면 또 커피를 마셨다. 하루 일과가 끝날 즈음이면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도 서로 바빠 얼굴 볼 틈이 없던 동료들과 한 데 모여서 뜨거운 커피를 내려 마셨다. 누군가는 그게 네 번째 커피라고 했고, (퇴근 후 육아가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는 여섯 번째 커피라고 했다. ‘나만 이렇게 카페인에 의존하는 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중독자였다. 당연히 나는 손을 떨었고, 두통에 시달렸고, 심한 생리통에, 가끔 심장이 저릿한 느낌도 드물지만 나타났으며, 커피 없이는 생각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날 봐, 내 이야길 들어, 내가 얼마나 중요한데, 날 좀 보라니까, 나, 나, 나! 하는 짜증스러운 에고의 목소리도 커져만 갔다. 커피를 끊는 데는 8일이 걸렸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처음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로부터 8일 동안 악의 화신이라도 된 것 마냥 기분이 엄청나게 나빴고, 무척이나 피곤했으며, 모든 게 최악이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8일이 지나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평화로운 날들이 시작되었다. 그건 카페인의 금단현상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카페인에 중독되었는지 따져보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언제 처음 카페인을 접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았기 때문이다. 탄산음료에도 카페인이 들어있고, 맛이 달달한 자양 강장제나 피로 회복제에도 있었다. 커피맛이 나는 우유나 아이스크림에, 케익과 빵에도 카페인은 숨어있었다.  아이들이 접할  있는 식품이다.  이상한 일은 어디에서 일하든 일터에는 커피가 구비되어 있고, 커피 마시는 시간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커피는 정말이지 산업사회의 약물이었다. 복용하고, 힘을 짜내서,  열심히 일해라,  많이 생산하라.


  어쨌든, 중요한 건 우리가 커피에 중독되는 이유가 열심히 일하기 위함이라면, 모든 약에는 중독되는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독에 대가가 따르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약을 필요로 하고, 다시 이야기는 돌고 돌아 그것이 바로 중독이다.


  우리는 아동 학대에 대한 뉴스를 보며 마음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끼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학대당한 작은 아이에게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에 고통스럽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면 우리는 잊는다. 헤로인과 알코올은 아동학대 생존자들이 성인이 되어 의존하게 되는 가장 흔한 약이라는 것을.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중독성이 심하기로 널리 알려진  약들을   경험해도 중독되지 않을  있지만, 마음속에 상처와 슬픔이 너무  사람들의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헤로인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았어야  사랑이 결핍된 이들이 더욱 의존하게 되는 약이다. 생존자들의 마음속 아이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는데,  이상 그들은 아이의 겉모습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당신이 미안해하며 눈물 흘렸던  아이와, 몸만 커진  약물 중독자는 속이 다르지 않다.


  저명한 중독 심리학자 게보 마테 Gabor Mate  주장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결국 모든 인간은 어떤 것에든 중독된다. 그리고 중독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유를 충분히 살펴보지 않은  무조건 중독은 나쁘니 당장 끊어야 한다고 중독의 대상만을 제거한다면,  사람은 그나마 그를 살아있게 하는 것을 잃는 셈이다. 실제로 많은 중독자들이 약물을 끊으려다 목숨을 끊는 이유는 삶의 낙이 사라진 세계에 다시 이전의 고통이 생생하게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많은 헤로인 중독자들이 ‘헤로인이 그들의 삶을 구했다 생각한다고 한다. 헤로인을 접하기 이전에는 심각한 자살 충동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약으로 잠시  세상의 고통을 잊으려  것이다.


  어릴 때 당한 폭력, 성폭력, 전쟁과 사고 후유증, 소중한 존재의 비극적 죽음과 같은 일들은 한 인간이 혼자 감당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대고 세상은 손가락질한다.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다고 비난하기도 하고, 나약하다고 얕잡기도 한다. 세상은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살기 위해 붙잡은 지푸라기를 놓고 도덕적으로 비난한다. 하지만 어떤 도덕도 한 사람의 인간보다 우선시되어선 안된다. 결국 그들이 살 수 있는 세계는 어디에도 없게 되었으며 그 세계는 곧 우리가 사는 세계다. 그들은 곧 우리다. 많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트라우마에 고통받는다. 우리도 언제 어떤 일을 겪어 삶을 떠나고 싶어 질지 모를 일이다. 그 최악의 순간에 잠시라도 모든 고통을 잊게 해 줄, 나를 편안하게 해 줄 약이 있다면 그 약을 선택하겠는가, 죽음을 선택하겠는가. 손가락질당하는 중독자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삶을 택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약의 도움이라도 받아 살아보려고 했을 뿐이다. 과연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선택을 우리가 비난할 수 있을까? 생존자를 앞에 두고 왜 그렇게 생존해야 했느냐고 따져 물을 수 있는 일일까?


  약물 오남용이 위험하기 때문에 문제라면 위험을 줄이기 위한 교육을 하면  것이다. 중독자를 범죄자로 만들어야  이유는 없다. 여기서 교육이라 함은 약물은 나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사용해선  된다는, 중고등학교 체육시간에 배울 법한 오래 묵은 내용을 말하는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카페인 중독과 알코올 중독의 온도가 다르듯이, 우리가 마약으로 뭉뚱그려 생각하는 모든 약물이  다르다.  약물들의 차이부터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약물들을 복용했을  몸에서,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사용자와 주변인들이 안전할  있는지, 어떤  이상으로 썼을  위험해지는지 같은 것들을 교육 내용에 넣는다면 좋을  같다. 위험한 것은 약물이 아니라 약물에 대한 무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교육은 약물 중독자들만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약물 사용자로서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손에 놓인 감기약  은 누가 만들었으며, 이 속에 어떤 환각 성분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정도는 아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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