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co2를 줄일 수 있는 조언을 해 줄게. 숨 쉬는 걸 멈추면 돼. 그러면 우리는 1년에 300kg에 이르는 co2를 줄일 수 있어. 그러니까 이건 그냥 조언일 뿐이야.”
“너의 미래는 정신의학에 달렸어 그레타. 광기가 벌써 니 얼굴 표정에 서려있네.”
“그레타를 이제 집으로 좀 보내. 그만하면 됐어. 방학 참 길다. 이제 학교에 가고, 부모의 교육을 받자. 정말 짜증난다.”
16세 스웨덴 출신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유엔에서 연설한 이후 조롱의 말을 내뱉은 건 도널드 트럼프뿐만 아니다. 독일 미디어에서 보도되는 툰베리 기사의 댓글과 SNS에는 온갖 종류의 혐오 발언이 쏟아졌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결기 넘치는 훌륭한 청소년’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은데, 독일에서는 왜 이런 혐오 발언이 난무하는 걸까.
혐오는 격화되었고, 급기야 살인 협박까지 나왔다. 독일에서도 이런 반응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독일 미디어들은 앞다투어 전문가들을 찾아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레타를 향한 혐오의 지점은 세 가지다. 첫째는 여성, 둘째는 나이, 셋째는 장애다. 여성, 나이, 장애.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은 소수자 혐오의 목적지다.
독일 공영방송 ARD는 국제앰네스티의 연구 결과를 인용, “트위터에서 여성을 향한 언어 폭력이 확산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공격의 목적은 여성을 두렵게 만들고, 주눅 들게 하며, 평가절하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침묵하게 만든다”고 이 현상을 설명했다. 온라인에서 이런 경험을 겪은 여성들은 자기검열에 빠지고, 여성들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약화된다는 이야기다.
‘온라인에서의 혐오’란 책을 발간한 잉그리드 브로드니히(Ingrid Brodnig)는 “그레타에게 ‘히스테릭’ 하다는 비난은 전형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혐오 발언”이라면서 성차별적인 지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 표현 하나로 담론은 사라지고 툰베리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서 공격 받는다”고 설명했다. 툰베리의 아스퍼거 증후군이 공격의 대상이 되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한 인간이 가진 모든 특별함은 공격의 대상으로 이용될 수 있다.”
독일 심리학자 조 그뢰벨(Jo Groebel)은 “크고 프로페셔널하고 관성적인 정치인들에게 툰베리는 거대한 정치를 함께 꾸려나가기에 너무나 어리고 경험이 없다”면서 혐오의 이유를 분석했다. 또한 “독일인들은 조용히 있고 싶다. 평온을 해치는 행위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남성들이 주도하고 결정해야 하는 사회적 질서에 여성이, 그것도 ‘나이도 어린 여성’이 나서서 세계 무대의 주목을 받고 있다. 거기에 아스퍼거 증후군 판정까지 받았다니, 공격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인 셈이다.
혐오는 혐오에 그치지 않는다. 혐오를 위한 억측과 ‘가짜뉴스’가 확산된다. 항상 땋은 머리로 나오는 툰베리가 ‘나치의 전체주의를 따른다’는 말이나 ‘부모가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진다. ‘프라이데이 포 퓨쳐’ 시위의 배후를 의심하고, 환경 시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수년 전 쓰레기 더미 사진이 이 시위의 사진으로 둔갑하는 식이다.
요즘 독일 사람들에게 독일 사회의 가장 큰 이슈가 뭐냐고 물으면 100이면 90은 ‘환경 문제’라고 답한다. 독일에서도 수십 년 전부터 환경 운동을 해 오던 이들이 있지만, 이처럼 대중적 이슈로 환기된 적은 없었다. 툰베리의 영향이 컸다. 지금 툰베리를 향한 이 거대한 혐오는 그만큼 이 이슈가 독일 사회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기존의 질서에 반하거나 안정을 깨트리는 시도에는 늘 혐오가 따라온다. 그 주인공이 ‘어린 여자아이’라니 혐오는 너무나 쉽다. 다행히도 툰베리가 백인인 덕분에(?) 이 정도의 관심을 받으면서도 인종주의 혐오는 찾을 수 없다. 툰베리가 백인이 아니었다면, 인종주의 혐오 발언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할 수 없다.
2019.10.06. 미디어오늘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