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4일 미디어오늘 발행
최근 한국 공영방송의 새로운 육아 예능이 주목받는다. ‘아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는 돌봄 대란 실태 보고서라는 거창한 기획 의도를 담았지만, 솔직해지자. 그건 예능이다. 우리는 또다시 아이들을 소비하는 프로그램을 마주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방송 화면을 장악했다. 육아 경험이 없었던 남성 어른들이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어른들의 서투름과 아이의 순수함과 귀여움이 예능 프로그램의 주요 볼거리가 된다.
즐거움을 향유하는 것이 주목적인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은 가장 잘 팔리는 대상이다. 우리는 TV에 나오는 아이를 보며 ‘힐링’한다. 그것의 다른 말은 우리가 아이를 소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 배스킨라빈스가 아동의 성 상품화 광고로 큰 비판을 받고 영상을 내린 일이 있었다. 아이를 소비한다는 측면에서 육아 예능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육아예능을 이렇게 비판하지는 않는다. 간혹 들려오는 비판은 현실 육아와의 괴리감이 있다는 점이지만 아이를 ‘소비’한다는 인식은 크지 않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아이들을 긍정적으로 소비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아이들의 인기는 곧 돈으로 계산된다. 자신의 아이를 방송에 내보내기를 원하는 부모들이 많다. 유튜브가 생기면서 부모들은 이제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수많은 ‘키즈 유튜버’가 탄생했고, 우리는 이제 온라인에서도 아이들을 소비한다. 그동안 아동학대 등의 문제가 있었던 키즈 유튜브 채널을 보면 그 에피소드의 주 시청자층이 어른임을 알 수 있다.
독일 미디어는 아이를 소비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아이는 소비할 대상이 아니라, 미디어 교육을 해야 하는 대상이다. 독일에서 육아 예능이라는 개념은 있을 수 없다. 혹시 놓친 육아 예능 프로그램이 있을까 열심히 찾아봐도 나오는 건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뿐이다. 아이가 나오거나 아이가 직접 제작하는 프로그램도 같은 연령대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
물론 독일의 방송과 드라마에도 아이들이 나온다. 아이가 방송 카메라 앞에 서게 되면 그것은 곧 ‘아동노동’을 의미하고, 아동노동은 엄격한 절차를 거쳐서 이뤄진다. 독일은 ‘아동노동보호에 관한 법률’로 15세 미만 아동노동을 기본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다만 해당 관청의 승인이 있을 때 방송과 영화, 드라마 촬영, 무대 공연 등 미디어 출연이 가능하다. 연령대별로 허용되는 노동시간이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베를린시를 예를 들어보면 3살부터 6살까지는 8시부터 17시 사이에 하루 최대 2시간 일할 수 있다. 부모는 물론 학교, 청소년 관청, 의사의 동의가 필요하다. 6살부터 10살까지는 8시부터 22시 사이 하루 최대 3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부모와 학교, 청소년 관청, 의사의 동의가 명시되어야 한다. 노동 승인 신청서에는 정확한 노동시간과 종류, 경우에 따라서 방송 대본도 함께 제출해야 한다.
독일은 아이를 미디어에 출연시킬 때 양육권자뿐만 아니라 사회의 동의를 함께 받는다.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건 부모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부모가 항상 아이를 위해 좋은 선택만을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아동노동은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사회가 보살펴야 할 미래의 인격체로 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규정은 그러나 전통 미디어에만 해당한다. 독일도 새로운 미디어에는 대비하지 못했다. 공영방송에서부터 민영방송까지 ‘리얼리티 쇼’에서 아이들을 계속 소비해 온 우리에게 키즈 유튜버는 그렇게 새로운 콘텐츠가 아니다. 반면 이때까지 그런 형태를 쉽게 접하지 못한 독일은 꽤 당황하는 눈치다. 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는 영상인데, 이걸 놀이라고 봐야 하는지 노동이라고 봐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많은 미디어 교육자와 전문가, 언론은 이를 ‘노동’이라고 판단한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유명 유튜브 채널 ‘밀레이스 벨트(Mileys Welt)’의 대처를 눈여겨볼 만하다. 밀레이의 채널은 여느 키즈 채널과 다르지 않다. 올해 9살인 밀레이는 카메라 앞에서 놀고, 만들기를 하고, 쇼핑하며 어려운 도전도 한다. 구독자는 76만 명. 부모는 직장을 그만뒀다. 밀레이의 가족은 이 채널로 먹고 산다. 명백한 아동노동이다.
이러한 비판에 직면해 밀레이 부모는 지난해 9월 직접 카메라 앞에 섰다. 이 영상에서 그들은 밀레이의 영상 촬영이 해당 관청의 허가를 받고 정해진 노동시간 내에만 이루어지고 있음을 밝혔다. 앞서 소개한 보호 규정을 자발적으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키즈 채널에 비교해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음에도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아이를 출연시키는 유일한 채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른 키즈 채널의 부모들에게 이러한 규정을 함께 지키자고 호소했다.
미디어 교육자와 관련 기관은 ‘키즈 인플루언서’를 보호하기 위한 담론을 치열하게 이어가고 있다. 독일도 유튜브와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의 욕구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원칙, 아이들은 소비의 대상이 아닌 교육의 대상이라는 점, 아이의 출연에는 부모뿐만 아니라 사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온라인 생태계에서도 지켜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시 대한민국. 우리는 오늘 또 어떤 아이를 소비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