냅다 '퇴사' 를 할 수 있었던 이유
살면서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 온다고 하던데...
신기하게도 34세 되는 해,
곁에 있는 주변 사람들, 환경, 시간 등 모든 것들이 180도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광고대행사에서 인하우스 마케터로, 그리고 위메프에서 무신사 솔드아웃으로 이직하며
10년간 커리어를 쌓아왔다. 광고대행사를 떠난 이유는 브랜드 인하우스 마케팅을해 보고 싶어서였고
위메프를 떠난 이유는 가장 열정적으로 일했던 동료들과 또 다른 전쟁에서 도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퇴사는 커리어를 성장시키기 위한 선택이었고, 다른 고민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의 퇴사는 달랐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회사 무신사 솔드아웃은 한정판 운동화를 웃돈을 주고라도 사려는 사람들이 모인 플랫폼이었다. 운동화를 좋아하냐고?
아니, 사실 나는 운동화를 잘 신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회사를 오게 된 이유는 많이 배우고 의지했던 상사분이 감사하게도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주셨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부족했고 그에게 더 배워야 할 것이 많았으며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직 후 현실은 쉽지 않았다.
이미 기존의 마케팅 팀은 거의 폭파되어 팀원들의 사기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갑자기 뚝 떨어진
팀장이라는 사람을 믿고 따르는 이도 없었다. 시스템도 없었고 함께할 사람도 없었다.
처음부터 다시 나와 같이 믿고 일할 동료를 만들어야 했고, 한정판 리셀이란 시장을 이해해야 했으며
성과도 내야 했다. 야근은 물론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았고 일에만 집중해야만 했다.
이 회사의 모든 직원들은 한정판 신발에 진심이었다. 나도 관심을 갖고 직접 신발을 거래해보고
팔아도봤으나 업무로 인한 관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소비에 있어서 각자 가치 다르지만 여전히 100만원이 넘는 운동화에 열광하고 거래되는 것을 보며
나라면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 먹거나, 좋은 숙소에 머무는게 나에게는 더 낮겠다는 생각을 했다.
꼭 직원의 모두가 다니는 회사의 찐 팬일 필요는 없다. 좋아하지 않아도 일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나의 직무는 마케팅이였기 때문에 고객과 시장을 깊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마음 한켠의 짐으로 계속 남아있었다.
매일 똑같은 시간 6시 기상, 꽉 막힌 내부순환도로에서 시간을 버리며 9시에 회사에 도착한다.
주간보고는 왜 하필 월요일 오후 2시인지.. 점심은 사치다.
대충 옆 파리바게트에 들려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회의 1분 전까지 보고 할 자료를 만든다.
기 빨리는 주간보고 후, 팀 내 크고 작은 의사결정이 필요한 회의가 시작된다.
동료들과 저녁을 시켜 먹고 그제야 한숨 돌리며 밀린 일을 시작한다. 이태원이라 야근하고 집 가는 택시도 잘 잡히지 않는다. 12시 넘어서 어렵게 잡은 택시를 타고 도착한 집 그렇게 쓰러져 잠이 든다.
그렇게 똑같은 매주가 반복된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표면적으로는 매월 KPI를 달성해나가고 있지만 모든 것을 미뤄둔 채 일하는 것에 비하면 노력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마치 영혼없이 KPI만을 맞추는 기계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였다.
어느 순간부터 일을 즐기며 하고 있는게 아니라 악으로 깡으로 꾸역꾸역 버티면서 일하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됬다. 누구보다 일을 좋아했던 내가 왜 더 이상 즐길 수 없을까?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자신감이 떨어졌고, 하루하루 에너지가 고갈되며 지쳐갔다. 이건 단순히 일을 관둬야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였다. 내가 달려 나가야 할 원동력을 잃었다.
나... 왜 이러고 있지?
무엇을 위해서 이러고 있지?
지금은 직장인으로 사는 삶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은 이런게 아니었다. 그냥 단순하게 일이 힘들어서, 월급이 불만족스러워서, 사람이 힘들어서, 일이 하기 싫어서 이런 정도가 아니었다. '퇴사' 보다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인가?
✔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가?
✔ 어떻게 살고 싶은가?
✔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가?
✔ 나는 무엇을 이뤄내고 싶은가?
✔ 나는 어떤 걸 가장 싫어하는가?
✔ 미래에 내가 원하는 모습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연관이 있을까?
6개월 동안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두 가지였다.
나는 이번 회사를 통해 내가 좋아한는걸 해야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적어도
이 회사의 직원들이 덕업일치인 것 처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 해보자.
퇴사 전 마지막 프로젝트로 플리마켓을 기획하고
운영하게 됐다. 나는 마케팅일을 하며 퍼포먼스 마케팅보다 브랜딩을 더 하고 싶었다.
하지만 브랜딩이라는 건 회사에 돈을 줄여야 할 때 가장 먼저 줄이고 뭔가 마케팅을 해야 하겠다 싶으면
다시 라이브 되는 게 브랜드 캠페인이었다.
나는 항상 여기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으로 나에게 주어진
이 프로젝트를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었다.
한 달 넘게 행사를 준비를 하고 오픈하기 하루 전,
저녁부터 밖에서 벌써 사람들이 줄을 스기 시작했다. 오픈 당일, 데이터로만 보던 고객들을 내 눈으로 보는 순간 정말 오랜만에 마음속에 불이 지펴지는 게 느껴졌다. 3일 내내 밤을 새도 충분할 정도의 에너지였다. 그때 느꼈다. 나 아직 이 일 좋아하네!?
"나 아직 브랜딩에 목마르구나!"
그렇다면.. 이직을 하는 것은 나의 선택지에서 제외되어야 했다. 회사라는 구조와 브랜딩의 특성상 내가 겪었던 아쉬운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크게 휘청거리지 않는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 또한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에이전시의 경우 다양한 프로젝트는 가능하나 첫 회사가 대행사였다 보니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결론은 하나. 같이 일하고 싶은
회사를 찾아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는 것.
퇴사를 고민하게 만든 마지막 장벽, 안정감
어느 정도는 확실해졌는데 퇴사를 입 밖으로
말하기까 내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 고정적인 직장과 월급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누군가와의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점
이 모든 걸 포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해 봤다.
객관화
✔ 현재 상황
미혼, 아이 없음, 부양할 가족 없음
>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나 혼자 먹고살 만큼은 벌 수 있다.
✔ 커리어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실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 공백기가 길지만 않다면 언제든 반겨줄 회사는 있다.
✔ 이직
다시 직장으로 돌아간다면 최소 3년 이상은 일해야 한다. 그때 나는 30대 후반이다. 그럼 지금 보다 잃거나 포기해야 할게 더 많아진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결론은 명확했다.
그래 그럼 딱 1년만,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
그래도 대세에 지장 없잖아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부딪혀보자. 그렇게 클라이언트 하나 없이 나는 홀로서기를 시작해 보기로 결심했다.
결정을 하고 나니 설레임과 불안함이 공존했다.
그때 이 고민의 과정을 함께 했던 대표님이 해주신 말이 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네 선택에 대해 걱정 어린 말을 할 거야. 하지만 누구도 너만큼 깊이 고민하진 않았을 거야. 그러니 스스로를 믿고, 너의 길을 그대로 나아가."
이 말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내 마음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퇴사 후 내가 그동안 느꼈던 욕망을(여유 있게 밥 먹기, 울리지 않는 알림,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 등)
해결할 수 있는 곳 스위스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난 퇴사를 하고 20일 동안 스위스에 머물기로 했다. 유럽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스위스에서만 여유롭게 풍경을 보고, 멍 때리고 여유롭게 밥 먹고 그냥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렇게 보내다 왔다.
그렇게 스위스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앞으로
나의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자! 의 다짐과 나의 강점인 추진력 하자! 이 의미가 담긴 나의 이름 "하고"
그렇게 난 퇴사 후 나의 이름을 '하고'라고 소개할
때마다 무언가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생기기 시작했고 더 이상 이 복잡한 서울에 없어도 된다는 사실에 내가 가장 마음 편히 머물던 곳, 강원도 고성
매번 도망치듯 달려왔던 고성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3도 4촌의 삶을 시작하며 나의 주변의
사람들은 물론 나의 환경, 시간이 바뀌기 시작했다. 고성에서는 비효율을 추구하는 낭만적인 고서아
(고성사는 서울아가씨)로 서울에서는 누구보다 효율과 완벽을 추구하는 '하고'로 두개의 자아로 살아간다.
그렇게 난 경로를 재입력하고 또 한번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