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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Oct 03. 2020

4대 여행서를 읽고 낸 결론, '여행은 오해의 미학'

여행은 '떠남의 미학'이 아니라 '회귀의 미학'이 아닌지...

   


여행감독인 나에게 성경과 같은 책들이 세계 4대 여행서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 오도릭의 <동방기행>,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이에 꼽힌다. 하지만 이 책들의 공통점은 진짜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직접 썼는지 의심스러운 책들도 있다. 오류와 오해로 가득 차 있다. 이 여행서의 고전을 통해 나는 여행의 불완전성을 확인했다.      


셰프들은 ‘당신이 먹는 음식이 당신 자신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여행감독인 나는 ‘당신이 하는 여행이 당신 자신이다’라고 말한다. 그 사람이 하는 여행 방식을 통해 그 사람을 재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델 카스트로의 여행과 체 게바라의 여행은 어떻게 두 사람을 장기 집권자와 영원한 혁명가로 갈라놓았는지 들여다본다. 그 둘의 혁명이 만들어 낸 오늘날의 쿠바는 어떤 여행지가 되었는지 여행가의 관점에서 살핀다.      


헤밍웨이도 나는 여행가의 관점에서 평가한다. <킬리만자로의 눈>의 무대였던 탄자니아와 <노인과 바다>의 무대였던 쿠바 등 헤밍웨이가 거쳐간 곳을 여행하면서 그를 여행가의 관점에서 평가했다(다음 여행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무대였던 스페인도 갈 예정). 나는 가장 탐욕스러운 여행자로 헤밍웨이를 재해석한다. 현대의 여행 중 가장 하이엔드 여행으로 꼽히는 것이 익스트림 레포츠인 사냥을 그중에서도 맹수 사냥을 즐기는 여행이다. 그런 여행의 개척자가 바로 헤밍웨이였다. 사냥한 동물을 박제해서 집필실에 걸어 놓고 글을 쓰고 왕좌와 같은 자리에 앉아 낚시를 할 수 있는 낚싯배를 가지고 있었던 헤밍웨이에게 여행은 예술적 성취에 대한 보상적 배설이 아니었을까 한다.      


백범 김구는 ‘탈옥 여행’ 경험자다.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혐의로 수감되었던 백범 김구는 어찌어찌하여 대탈옥의 주동자였다. <백범일지>에는 탈옥 전후 과정이 다이내믹하게 서술되어 있다. 탈옥 후 그는 전국을 유람하며 자신이 탈옥시킨 죄수들을 찾아다녔다. 그들의 대접이 후했는지 박했는지 <백범일지>에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근대판 무전여행을 한 셈이다. 이 무전여행은 이후 그가 민족주의자로 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김구의 철학을, 나는 그가 한 여행을 중심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본다.       



세계 4대 여행서에 대한 여행감독의 감상평 :      


1) <이븐 바투타 여행기> : 여행에서 새로운 여행을 꿈꾸다     


세계 4대 여행서 중에서 <이븐 바투타 여행기>가 가장 내 스타일과 맞는 것 같다. 이유는 세 가지다. 하나, 마일리지가 가장 많다. 10만 km를 넘는다. 30년 동안 동쪽(아시아) 북쪽(유럽) 남쪽(아프리카)을 두루 여행했다. 둘, 이방인(이슬람)의 시선이다. 오도릭의 <동방기행>이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기독교의 시선,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불교의 시선을 대변하는 것과 비교된다. 셋, 가장 여행자답다. 여행에서 새로운 여행의 이유를 찾는다. 한 가지 더하자면 시인인 이븐 주자이의 요약본이 현존하는데 윤문이 되어 있고 문장에 텐션이 있고 레토릭이 있고 뭔가 극적이다.     


“나는 힘을 북돋아 줄 길동무도 없이 홀로 여행을 하였다. 영광스러운 성소들을 찾아가고 싶은 오래 묵은 소중한 충동에 압도되어 내 마음은 흔들렸고, 내 친구들과 단호히 작별하며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집을 떠났다. 부모님께서 아직 살아계신 데 그분들과 헤어지자니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슬펐고, 나도 부모님도 모두 괴로웠다.”  

   

“이른 아침 출발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반나절이나 늦게 아부 하르를 떠났다. 일행 22명은 모두 말을 탔는데 그중엔 아랍 인도 있고 외국인도 있었다. 그런데 일행이 사막에 이르렀을 때 난데없이 이교도 80명과 기병 2명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나의 동료들은 모두가 용감무쌍하여 그들과 한판 격전을 벌였다. 일행은 기병 중 한 놈을 사살하고 그의 말을 빼앗았으며 이교도 약 12명을 죽였다. 나는 어쩌다 화살 한 발을 맞았지만 다행히 무사했다. 하지만 내가 탄 말에 화살이 꽂혀 결국 빼앗을 말로 바꿔 탈 수밖에 없었다. 부상당한 내 말은 투르크 친구들이 먹어 버렸다. 도적들의 잘린 머리들은 아부 하르 성벽 위에 걸어 놓았다.”     


“사실 알라께 감사를 드리거니와, 현세에서의 나의 욕망, 즉 대지를 여행하려는 욕망은 이미 실현된 셈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 방면에서는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나는 도달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이제 남은 것은 내세의 일뿐이다. 그러나 나는 알라의 자비와 관용 속에 낙원에 들어가려는 나의 욕망이 필히 실현되리라는 강렬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 중에서     


2) 오도릭의 <동방기행> : 여행은 '이해의 미학'이면서 또한 '오해의 미학'이기도.      


여행기를 보면 대부분 여행지에서 얻은 깨달음을 전한다. 그런데 그 깨달음은 기실 이해가 아니라 오해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수사 오도릭의 여행기도 기실 이슬람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있다. 그들은 악하고, 그들은 미개하고, 그들은 야만적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굳은 신앙심을 부각한다.     


섬여행을 하면 여행이 '오해의 미학'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섬에 가면 공통적으로 이런 소회를 밝힌다. “여기는 너무나 고요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라고. 하지만 섬의 시간은 두 배로 빠르게 흐른다. 섬사람들은 해의 시계에 맞춰 살아야 하면서 동시에 달의 시계에 맞춰 살아야 한다. 그래야 바다가 주는 선물을 건질 수 있다. 그리고 1인 1역이 아니라 2역 3역 4역 5역을 해야 섬의 생태계가 굴러간다. 그런데 여행에서만 오해가 빚어낸 깨달음이 있을까? 우리 삶의 깨달음은 진정 다 이해의 산물일까. 여행은 일상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세상 각이한 지역의 갖가지 풍속과 특징은 이미 여러 사람들에 의해 숱하게 이야기된 바 있다. 그렇지만 나, 프리울리의 수사 오도릭도 자신의 희망에 따라 영혼의 결실을 얻고자 바다를 건너 여러 이단의 나라들을 찾아다니며 듣고 본 엄청나고 놀라운 일들을 새삼스레 그대로 다시 이야기하게 됨을 당신들은 이해해주기 바란다.” 

    

“이 도시는 위치상 적지이며, 빵과 와인이 비축되어 있으며 수목이 무성하다. 옛날엔 여기가 자못 거룩한 고장이었다. 여기가 바로 알렉산드로스 왕과 맞서 그토록 어마어마한 전쟁을 치러낸 그 포루스 왕이 살았던 황성이었으니까.”     


“이곳이야말로 지금껏 남아 있는 이 세상의 그 어느 도시보다도 한껏 소중하고 교역에도 유리한 도시다.”   

  

“대칸이 사는 궁전은 웅대하고 장려하다. …궁전 중앙에 큰 항아리 하나가 놓여 있는데, 높이는 2보 이상이며, 몽땅 메르다카스라는 보석으로 제작하였다. 항아리는 금으로 테를 두르고, 모퉁이마다 격돌하는 자세를 취한 용을 배치하였다. …항아리 속 술은 궁정에서 관을 통해 보내지며, 그 옆에는 많은 황금 고블릿이 놓여 있어 마음대로 떠 마실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답하면서 그대들에게 고하노니, 무함마드는 지옥의 자식으로서 그와 그의 마귀 아버지가 있을 자리는 마굴뿐이다... (중략)... 불이 우리를 태워버린다 해도 이것이 우리 종교(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것은 오로지 우리의 죄 때문이며, 하느님은 우리가 잘 타도록 헤아려주실 것이다”(오도릭이 전해 들은 수사 토마스의 처형 전 마지막 말)     


3)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 여행은 '만남의 미학'이 아니라 '이별의 미학'이 아닐까?      


여행에서 새로운 만남을 갖고 그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지만 우리의 감수성을 깨워주는 것은 이별이 아닐까? 물과 공기 같아서 평소에 소중함을 몰랐던 사람, 그런데 그가 해주던 것을 내가 직접 하려니 생각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생각난다. 남자들은 훈련소 가는 날 감수성이 확 열리는 경험을 한다. 가수 김광석이 말한 대로 모든 것이 새롭다. 훈련소에서는 사실 두고 온 애인 생각보다 부모님 특히 어머님 생각이 많이 난다. 여행은 두고 온 이에 대한 그리움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행에서는 또한 '다르게 만난다'는 것도 매력이다. 일상에서 만났다면 친구가 될 수 없었을 것 같은 사람, 나와 너무 달라서 부담스러웠을 사람과의 만남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사람을 보는(혹은 평가하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여행은 만남의 미학’이라는 명제도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     


“달 밝은 밤에 고향 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

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 보지만/ 바람이 거세어 화답이 들리지 않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는데/ 남의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일남(日南)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

- 남천축국에서     


“고향 집의 등불은 주인을 잃고

객지에서 보수(寶樹)는 꺾였구나.

신성한 영혼은 어디로 갔는가?

옥 같은 모습이 이미 재가 되었구나.

그대의 소원 못 이룸이 못내 섧구나.

누가 고향으로 가는 길을 알 것인가?

부질없이 흰 구름만 돌아가네.”

- 북천축국에서     


“보리수가 멀다고 근심하지 않는데

어찌 녹야원이 멀리요

다만 매달린 것 같은 길이 험함을 걱정할 뿐

이미 바람이 휘몰아침도 생각하지 않도다.

여덟 탑은 참으로 보기 어려우니 

어지러이 오랜 세월에 타버렸다.

어떻게 그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질까?

오늘 아침에 눈으로 본다.”

- 바라나시에서     


“그대는 서역이 먼 것을 한탄하나

나는 동방으로 가는 길이 먼 것을 한하노라.

길은 거칠고 굉장한 눈은 산마루에 쌓였는데

험한 골짜기에는 도적떼도 많도다.

새는 날아 깎아지른 산 위에서 놀라고

사람은 좁은 다리를 건너기를 어려워하도다.

평생에 눈물 흘리는 일이 없었는데

오늘만은 천 줄이나 뿌리도다. "

- 토하라국 와칸에서      


4)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 여행은 '떠남의 미학'이 아니라 '회귀의 미학'이 아닌지...   

  

8천 미터 고산을 8개나 오른 선배가 있다. 그 선배에게 그렇게 위험한 곳에 갈 용기가 어떻게 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 선배가 '있어 보이게' 답하길 "위험은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하는 것이다. 위험을 감당할 용기가 날 때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 대한 계산이 정확히 섰을 때 올라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위험을 모험으로 바꾸면 여행에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여행은 결국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에는 캠핑을 자연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자연의 한 복판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불멍을 때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어느 날 캠핑을 다녀와서 내가 진짜 즐기는 것은 문명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멍만큼 물멍도 좋았다. 혹은 그 이상으로. 여행의 의미 중 하나는 일상의 안전을 확인하는 일인 듯.     


“나는 내가 본 것의 절반만 말했을 뿐이다.”

- 임종 직전 진실을 말하라는 지인들의 추궁에 답하며    

 

"높이와 추위 때문에 새 한 마리 날지 못한다. 불을 피워도 잘 타지 않고 평소처럼 열을 내뿜지도 못하며 음식을 요리하기도 힘들다. "

- 파미르 고원을 지나며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최고의 도시라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 중국 항저우 묘사     


"다부져 보이는 체격과 검고 잘생긴 두 눈에 염소수염을 기르고 혈색이 불그스름한 60대 남자. 백성의 숫자에서나, 영토의 크기에서나, 보물이 값어치에서나 세상 통틀어 가장 강력한 지배자. 위대한 칸은 필요할 때마다 정자를 해체해 어디든 다닐 수 있도록 이런 식으로 설계하게 했다. 여기에 200개가 넘는 비단 끈이 대나무를 엮어 정자의 모양을 잡아준다"

- 쿠빌라이 칸에 대한 묘사     


“그곳에서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금이 나기 때문에 금이 대단히 많다. 그러나 아무도 그 섬에서 금을 가지고 나오지 못하는데, 그것은 어떤 상인도 어떤 사람도 대륙에서 그곳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 지팡구(일본)에 대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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