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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23. 2020

히말라야에서 조난당했을 때 배운 위험 계산법

선의가 빚어낼 수 있는 위험의 사례들

   

밤 여덟 시까지 일행이 돌아오지 않으면 정식으로 조난 신고를 하려고 했다. 해발 4000미터, 날은 어두워졌고, 아직 겨울이고,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눈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일행은 아이젠도 스패치도 헤드랜턴도 없이 올라간 상태였다. 잠시 마을 산책을 하겠다며 나갔는데 아직 소식이 없었다. 어두워질까 걱정이었고 그들이 올라간 골짜기를 눈안개가 덮쳐 시야를 가릴까 걱정이 되었다.   

   

네팔인 가이드를 포함해 6명이 올라갔다. 그런데 캄캄해지기 전에 내려온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내려온 한 명은 중도에 트레킹을 포기하고 내려온 사람이라 위의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네팔인 키친보이 두 명을 데리고 일행을 찾으러 간 한국인 가이드도 연락이 두절되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위성전화를 가져갔지만 신호가 가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네팔인 키친팀장 나왕도 올라갔다.      


기다리던 일행 중 한 명이 남은 네팔인들을 데리고 올라가자고 했지만 말렸다. “우리도 저 언덕을 넘어가면 바로 구조대가 아니라 조난대가 된다”라고 말하면서.      


해가 지니 너무 걱정이 되었다. 여덟 시를 마지노선으로 잡았다. 그 시간까지 안 내려오면 정식으로 조난 신고를 해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보려고 했다.      


피가 마르는 것 같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서 불빛 하나가 내려왔다.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내려왔다. 키친팀장 나왕이었다. 우리가 묻기 전에 그가 우리에게 물었다. “저녁은요?” 박영석 엄홍길 등 고산 등정팀의 키친팀으로도 동행하며 예정된 시간에 1분도 안 늦는다는 그의 투철한 직업의식이 돋보였다.     


저녁은 남은 키친팀에 부탁해서 먹었다고 하자 그는 우리 일행의 소재를 확인했다며 한 시간쯤 걸려서 내려올 것이라며 무전기를 건네주었다. 무전기로 연락을 해보니 네팔인 가이드가 받았다. 모두 무사하다고 했다. 내려오고 있다며 30분 정도 있으면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40분 정도 지나서 멀리 헤드랜턴 행렬이 보였다. 전봇대 사이에 늘어진 전선줄 같은 포물선을 그리며 일행이 다가왔다. 다들 넋이 나가 있었다. 괜찮냐는 안부에도 대부분 답을 하지 못했다. 롯지로 데리고 가서 난로 불을 쬐게 했다.      


나중에야 들었다. 마을을 산책하다 내친김에 빙하가 보이는 뷰포인트까지 올라가기로 했다고. 마치 랑탕리룽에서 흘러내려오는 강줄기처럼 보이는 옥빛 빙하를 보기 위해 갔는데 올랐던 길과 다른 길을 내려오다 길을 찾지 못해 헤맸다고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눈이 오거나, 눈보라가 불거나, 누가 미끄러져 다치거나, 기온이 급강하하지 않아서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곳에서, 곧 어두어질 시간인데, 그것도 겨울에, 어떻게 그런 무리한 산행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누구도 두 번 다시 그런 산행은 하지 않으리라는 것.    


한국인 가이드 외에 네팔인 가이드와 네팔인 보조가이드 그리고 한국인 보조 스태프까지 구성하고 위성전화와 무전기 그리고 고소증에 대비한 산소통까지 가져가서 대비했는데도 빈틈이 있었다.     



모험가들은 ‘위험은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 랑탕트레킹 때 더 냉정한 계산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랑탕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폭설로 나흘 동안 강진곰파 마을에서 고립되었다. 원래 이 마을에서 숙박하고 해발 4986m 체르코리 고지에 올랐다 오는 것이 목표였는데 계속 눈이 내려 마을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일행 중 몇 명이 고소증 때문에 힘들어했는데 그중 둘은 쓰러져서 응급조치를 해야만 했다. 특히 한 명은 증세가 심해서 손가락 발가락을 전부 바늘로 찔러보았는데도 피가 나오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의사와 위성전화로 지시를 받으며 따뜻한 물을 마시게 하고 머리를 낮게 하고 흉부압박상지거상법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응급 지식을 총 동원해 겨우 살려낼 수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환자들을 난로 가까이에 앉게 했는데 그것이 산소 포화도를 떨어뜨려 오히려 그들에게 해가 되었다는 것을. 선의가 빚어낸 위험이었다.      


조난도 사실 선의가 빚어낸 위험이었다. 한국인 보조 스태프가 “놀면 뭐하냐 마을이라도 한 바퀴 돌아보자”라고 제안했던 것이 위험을 초래했고 ‘빙하를 보여주겠다’와 ‘더 나은 길을 찾아서 내려오게 하겠다’는 네팔인 가이드의 선의가 결합되어 빚어낸 위험이었다.     


 


나흘 동안 고립되었다가 구조 헬기가 왔을 때 여행감독이었던 나는 맨 마지막 헬기를 탔다. 한 대가 카트만두까지 왕복해야 해서 첫 헬기가 8시 정도에 떴지만 내가 탄 마지막 헬기는 점심이 다 되어서야 탈출할 수 있었다. 한나절을 기다려야 했는데, 오히려 축복이었다. 해가 나서 눈부신 랑탕 계곡의 설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중에 우리가 지나온 그곳으로부터 두 가지 슬픈 소식을 들었다. 하나는 악천후에 헬기가 추락해 네팔 관광부장관 등이 사망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우리가 묵었던 강진곰파 롯지에서 한국인 여행자가 사망했다는 것.   

  

헬기가 오지 않아 대사관을 통해서 군용 헬기까지 수배했지만 결국 맑은 날씨를 기다려서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한국인 여행자가 난로가 있는 휴게실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에 그의 일행들도 우리처럼 그에게 좋은 자리를 양보했다가 죽을 자리가 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산에서도 몇 번 ‘선의가 빚어낸 위험’을 겪었다. 욕지도에서 산행을 할 때는 길을 잘못 들어섰는데 서로 길을 찾겠다며 앞으로 나간 사이 뒤따라오던 일행들이 험한 사면을 그대로 따라와서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서로 다투듯이 길을 찾아 나선 선두 그룹과 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험한 길을 따라온 후미 그룹의 선의가 엉켜 위험을 초래할 뻔했다(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최근 설악산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오색약수 코스로 당일 대청봉을 왕복하는 빠듯한 산행이었는데 산행 초보 두 분이 일행보다 몇 시간 늦게 정상에 올라왔다. 중간에 만난 다른 일행들이 격려를 해주어서 끝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정상에 오른 시간은 오후 네 시였다. 해가 짧은 산에서, 그것도 설악산과 같은 큰 산에서는 위험한 일이었다. 이것 역시 그들을 격려했던 일행들의 선의가 초래한 위험이었다(캄캄한 산길을 더듬으며 내려왔지만 사고는 없었다).        


산행에서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선의가 빚어낸 위험’은 일상의 도처에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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