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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15. 2020

<심야식당>을 닮은 여행자의 느슨한 연대

여행자들 사이에는 '간섭하지 않는 결속력'이 필요하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보면서 내가 도모하는 여행자 플랫폼의 관계 맺기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간섭하지 않는 결속력’이 바로 그것이다. 나이가 든 사람끼리의 관계는 보여주는 만큼만 보고 상관해달라는 만큼만 상관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을 굳이 보려고 하고, 상관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굳이 상관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폐를 끼치는 것이다.      


<심야식당>의 고객들은 서로의 ‘현재’만 본다. 혈연 지연 학연 등 그들의 과거는 굳이 보려 하지 않는다. 그 현재도 ‘이곳(심야식당)’의 현재만 봅니다. 그가 일하는 ‘저곳’이 아니라 식당 맞은편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만 본다. 그의 일상이 아니라 그가 힐링하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그들은 심야식당에서 다르게 만난다. 덕분에 선입견에 빠져 있던 상대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심야식당 주인장이 마음을 열어준 것처럼 그들도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준다. 내가 구축 중인 여행동아리의 온도가 아마 그쯤이 아닌가 싶다.      


분명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그리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과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있다. 그런데 이를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시간만 걸린다고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본성을 드러낼 ‘상황’도 필요하다. 착한 사람만으로 혹은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만으로 모임을 만들면 최선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여행자 플랫폼을 설계하면서 주목했던 것은 ‘인간관계의 미학과 공학’이다.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그리고 인격적인 사람과 비인격적인 사람이 따로 있지만, 이 부분은 내가 관여할 수 없지만, 사람들이 서로 착하게 만나는 것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은 설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어떤 사람의 본성과 인격이 요리의 재료라면 그들이 착하게 만나고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는 것은 요리사의 일이다. 내가 하는 여행이 바로 그 요리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여행에서 다르게 만나고 여행감독이 그 만남에서 역할을 한다면 그들은 훨씬 좋은 기억을 가져갈 수 있다.      


연극에서 대사는 크게 독백과 대화 그리고 방백으로 나뉜다. 나는 여행의 언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기존 패키지여행에서는 독백만 있었다. 대화는 가이드와 잠깐씩 나눌 뿐 자신의 SNS에서 독백을 써 내려갔다. 여행자끼리의 관계 맺기는 차단되어 있었다. 모두 여행사의 편의에 의한 것이지만 이런 식의 관계 맺기가 되다 보니 여행자들도 다시 안 볼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관계를 맺을 일이 없는 사람은 눈치 볼 일도 없다고 생각하고 오직 자신의 유익만 추구한다. 그러다 보면 그 방식이 세련되지 못하는 사람도 나오고, 우리는 그런 사람을 '진상'이라고 부른다.     


내가 추구하는 여행자 플랫폼은 대화와 방백으로 가득 찬 여행을 한다. 여행자들끼리의 대화가 있고 나와 다른 여행자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엿듣는 방백적 상황이 있다. 여행에서 다시 볼 사람들이고 적극적으로 관계 맺기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착하게 행동하고 인격적으로 말하려고 한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가보면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 같지만 끝없이 엄마와 아이 컨택을 하면서 ‘여럿이 혼자’ 논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패키지여행이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가이드에게만 케어 받다 보니 다 큰 어른들이 어린아이처럼 된다.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고 제대로 제 때에 던져지지 않는다고 투정 부린다. 삶에 능동적이었던 사람들이 여행만 가면 지극히 수동적이 된다. 여행에서 대화와 방백은 이런 ‘잃어버린 여행력’을 찾아주는데도 도움을 준다.      



여행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 사람들끼리 친해진다. 대학시절 우리의 MT가 그랬다. 누구는 사전 답사를 가고 누구는 오락시간을 기획하고 누구는 카레를 만들었다. MT를 다녀오면 사람들의 친소관계가 바뀌어 있었다.      


여행의 목적은 여행 그 자체로 충분하다. 그 시절 MT는 여행하겠다는 것 말고,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친해지겠다는 것 말고는 다른 목적이 없었다. 회사의 워크숍과는 달랐다. 그래서 즐거웠다.      


그래서 ‘90년대 학번을 위한 여행 연합 동아리의 MT 느낌’을 복원하는 여행을 기획해 보았다. 가이드 입만 바라보지 않고 각자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도록 분담했다. 그렇게 여행을 하고 오면 대학시절 MT와 마찬가지로 금방 친해졌다.      


사람들이 처음 단체버스에 올라타서 퍼져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대부분 출발하자마자 잠이 든다) 어시장의 동태 상자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꽁꽁 얼어있다. 그랬던 것이 여행이 진행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가 생기고 녹아서 서로 어울려 노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마을’이 만들어진다. 일종의 느슨한 연대다. 그 사람에 대한 ‘느낌’에 기초한 연대가 만들어진다. 다음 여행에서 인연은 더 깊어지고 어느덧 흉허물 털어놓는 여행친구가 된다.      

기존에 알던 사람들과 여행을 가면 최고다. 말해 무엇하나. 그런데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어렵게 시간을 맞춰 함께 여행을 가도 서로 형편이 달라져 있으면 불편하기도 하다). 그래도 시간을 맞추려고 노력을 하는 나이는 괜찮다. 30대 중후반까지는 서로 시간을 맞추려는 노력이라도 한다. 그런데 40대에 들어서면 시간을 맞추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정이 건어물이 되어버린 나이가 되면 서로에게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견적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규 투자를 하지 않고 유지 보수 비용만 들인다. 그래서 송년회와 상갓집에서만 만난다. 그런 건어물 가게에서 여행까지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서로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기대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 온다. 여행감독은 그 만남을 설계한다.      


설렘을 설계하는 일, 그것이 여행감독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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