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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12. 2020

사람들이 말하는 관광과 여행의 차이

관광이 소비라면 여행은 허비다, 합리적 소비 vs 여백이 있는 허비

    

관광이나 여행이나? 아니다. 관광은 관광이고 여행은 여행이다. 사람들은 관광과 여행을 확실히 다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관광과 여행의 차이를 묻는 질문을 페이스북에 던졌더니 아래와 같은 답을 얻었다. 대체로 ‘여행은 좋은 것, 가치 있는 것, 의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인데 반해 관광에 대한 생각은 부정적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광과 여행의 차이를 들어보니 관광은 인공지능(AI)으로 충분히 대체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뷰포인트와 맛집 따라서 코스를 짜는 것은 AI가 인간보다 더 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관광과 여행의 차이를 보면 여행감독의 역할도 찾을 수 있었다.  일단 관광과 여행의 차이에 대한 생각 먼저 읽어보시라~      

밝은 것만 보는 게 관광, 다양하게 경험하며 사유하는 게 여행(최선희)  

유명 볼거리 위주로 수동적으로 다니면 관광, 유명 볼거리보다 지역 친화적 또는 일상과는 다른 재미 또는 쉼이 있고 적당히 능동적이면 여행(김혜진)

매 끼니 놓치지 않으면 관광, 가끔은 건너뛰기도 하고 커피와 빵 한 조각으로도 한 끼를 아름답게 해결하면 여행(정우진)

손발이 다니면 관광, 마음과 생각이 다니면 여행(최보기)

떨리면 여행, 안 떨리면 관광(소성일)

관광은 외부인이자 구경꾼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고, 여행은 내부인은 아니더라도 주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조희제)

(뇌의 용량이 가득 찼을 때) 아쉽지만 지울 수 있다면 관광, 끝까지 망설여진다면 여행(김태익)

경치만 보면 관광이고 그 경치의 맥락도 함께 보고 의미를 만들 수 있으면 여행이 아닐까(편성준)

깃발 따라가면 관광. 지도 보고 찾아가면 여행(이경호)

모험과 비모험(석병기)

따라다니면 관광 내가 가면 여행(이승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내 마음대로 볼 수 있으면 여행, 보여주는 것만 계속 보는 관광(민호균)

가이드 있으면 관광, 가이드 없으면 여행일 것 같은데, 오히려 관광의 대조 개념은 경험이 아닐까요? 관광으로서의 여행과 경험으로서의 여행(이혜림)  

장소를 수동적이고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관광객, 장소를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여행자(김재환).

보는 관광객, 사랑하는 여행자, 굳이 말하자면(박미경)  

경치와 먹거리가 중심이 되면 관광, 사람이 중심이 되면 여행(박남열)

구경을 일같이 하면 관광, 구경을 놀면서 하면 여행(김성훈)

차린 거 먹으면 관광, 차려 먹으면 여행(송호역)

관광은 보는 것 여행은 느끼고 담아 오는 것(김봉수)

관광은 랜드마크, 여행은 로컬(황지원)  

관광은 누가 많이 보냐? 여행은 누가 많이 느끼냐? 관광에 필요한 건 가이드. 여행에 필여한 건 나(설재영)

큰 맛집에서 매끼 먹으며 다니면 관광! 동네 골목에 있는 간판 없는 식당에서 먹으면 여행!!(권위영)

여행은 가슴 떨릴 때 가는 거고 관광은 다리 떨릴 때 가는 거?(민진기)  

강박 없이 가면 여행, 뭔가 보고 해야 된다고 쫓아다니면 관광(김옥순)

여행은 집을 떠나 다른 장소에 다녀오는 것(목적은 유람, 업무 등 다양)이고 관광은 집을 떠나 현지의 풍경, 문화 등등을 구경하러 다녀오는 것(이수경/관광통역자격사 시험 내용)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사람들은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관광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개발독재 시절에는 ‘오늘만 날이다’는 생각으로 경치 좋은 곳에 가서 회포를 풀고 오는 관광이 주류였다. 하지만 주 5일제로 바뀌고 연중 휴가를 가는 생활이 시작되면서 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관광의 대상은 사물이다. 좋은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이 대상이다. 여행의 동반자는 사람이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나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이 중요하다. 이 말은 사물에 대해서 고민하면 관광이고 사람에 대해서 고민하면 여행이라는 말이 된다. 사람과의 만남 중에는 자기 자신과의 만남도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패키지여행은 관광의 대상만 고민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끊어놓는다. 문제가 생길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그래서 여행 참가자들은 가이드만 바라보고 가이드 말만 듣고 가이드하고만 관계를 맺고 오게 된다. 물론 그 관계도 비행기를 타는 순간 종료된다.       


여행감독으로서 내가 여행을 설계할 때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고민한다. 여행에서의 만남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다. 이 만남을 위해서는 여행 중에 숨을 곳/시간을 주어야 한다. 단체여행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함께 할 필요는 없다. 가능한 범위에서 개인 시간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위한 최고의 여행감독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시간을 설계할 여지를 줘야 한다.      


두 번째는 같이 여행하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과 여행한다면 그것은 정말 최고다. 하지만 다들 바빠서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고 기껏 맞춰 놓으면 사정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여행에 맞춰 사람을 짤 수밖에 없다. 모르는 사람과 여행을 갈 때는 알아가는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람을 불러야 한다. 알면 짐이 될까 봐 걱정이 되는 사람, 뭔가 불편한 사람, 사람에게 상처를 쉽게 주는 사람은 피해야 한다. 어느 정도 검증된 사람을 초대해서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여행동아리 형태의 여행자 플랫품을 구축하는 이유다.      


세 번째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이다. 현지의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플랜B도 세울 수 있다. 관광코스는 블로그에 얼마든지 나와 있다. 현장의 상황은 유동적이다. 천시(날씨)와 지리(교통)와 인화(여행팀) 등 현장 상황에 맞춰 여행 계획을 유기적으로 변경하려면 현지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여행자들이 이 전문가와 친분을 만들면 나중에 자신이 여행기획자가 될 수 있다.      



다시 관광과 여행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사실 관광과 여행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지는 않는다. 여행이 관광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관광지는 여행감을 높여주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더욱 고취시켜준다. 압도적인 풍광은 정식의 메인 요리 같은 것이다. 없으면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관광에만 목을 맬 필요는 없지만 소홀해서도 안 되는 이유다.      


만남은 인간을 넘어 자연과 문명과의 만남도 포괄한다. 자연과 인간의 만남에는 절묘함이 필요하다. 그 절묘함은 언제 방문하느냐는 시간에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 북촌도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낮시간이 아니라 새벽이나 저녁 시간에 다닌다면 호젓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문명의 만남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평소에 관심이 없던 것도 여행지에서 보면 관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평소에 안 들어가던 갤러리도 들어가고, 안 보던 건축물도 들어가 보게 되고, 안 듣던 음악도 들어보게 된다. 이때 설명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여행의 격을 높여주는 것은 함께 하는 사람이다.      


결론적으로,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고, 사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 사람을 짜기 위해서 회사도 그만두고 나와서 여행자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일단 내가 함께 여행하며 검증한 사람 100여 명을 불러들였고 내가 사회생활하면서 인생을 통해 검증한 사람을 또 100여 명 불러들였다. 여기에 지난 9개월 동안 여행자플랫폼을 구축하면서 만난 사람들로 진용을 꾸렸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여행 불가 시절이 되었지만 여행에 대한 상상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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