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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Oct 04. 2020

쿠바가 준 깨달음, ‘관광은 서비스업이 아니라 자존업’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쿠바에 가야 한다

 


관광은 서비스업이 아니라 자존업이다. 쿠바 여행이 준 깨달음이다. 관광을 서비스로 접근하는 건 하수다. 관광은 자존업이다. 관광지 사람들의 자존감이 여행자의 만족감을 극대화한다. 관광은 서비스업이 아니라 행복업 즉 자존업이다.        


물론 쿠바의 역설도 있었다. 모두가 쿠바에 가고 싶어 하는데, 정작 쿠바의 젊은 세대는 다들 쿠바를 떠나고 싶어 한다. 우리 가이드도 그랬다. 그는 쿠바가 이룬 것보다는 쿠바가 주지 못하는 것에 주목했다. 나라는 가난하지만 사람들의 삶이 비루하지는 않았는데 그걸 느끼기에 그는 아직 젊었다.      


쿠바인들은 자존감으로 꽉 차 있다. 심지어 구걸하는 사람들까지. 복지에 적극적인 사회주의 국가답지 않게 거리에 구걸하는 사람이 제법 있었지만 태도가 당당했다. ‘어때 쿠바 좋지? 쿠바 좋으면 나한테 돈 좀 내시지’하는 태도였다.  


    


아르메니아는 가난하지만 격조 있는 나라였는데, 쿠바는 가난하지만 자존감이 있는 나라였다. 무엇이 쿠바인들의 자존감의 원천인지가 궁금했다. 곰곰 따져보니 그럴만했다.      


일단 쿠바는 혁명을 이룬 나라다. 혁명을 이룬 나라의 자존감은 독립을 이룬 나라의 자존감보다 한 수 위다. 독립을 통한 자존감이 외적 자존감이라면 혁명을 통한 자존감은 내적 자존감이다. 혁명을 이루고 강대국 미국에 맞서고 소련으로부터도 거리를 두었던 쿠바의 도도함이 국민성에도 나타났다.      


혁명 정부가 문화예술 교육과 체육 교육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쿠바인들의 자존감의 원천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쿠바인들은 일단, 스타일이 좋다. 그리고 피지컬이 좋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면 사람을 만날 때 당당할 수 있다.       


일종의 자기 완결성이 있는 셈인데, 일본인의 자기완결성과도 대비된다. 쿠바인의 자기완결성이 감성적이라면 일본인의 자기완결성은 이성적이다. 하나는 낭만적이고 하나는 결벽증적이다. 쿠바인들은 외형이 아니라 행위에서 자기완결성을 추구한다. 거기에서 나온 춤과 음악은 매력적이다. 그 매력이 여행자를 홀린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쿠바의 레스토랑은 대부분 음식이 별로다. 플레이팅도 별로다. 청소 상태도 너저분하다. 그런데 스타일이 좋아서 넘어간다. 음식이 별로여도 음악에 홀려서 음식은 뒷전이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한다. 쿠바는 레스토랑에서 음악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곳에서 음식도 주는 곳이라고. 쿠바는 그런 곳이다.       


쿠바의 매력을 구성하는 4대 요소를 꼽아보라면 아프리카 조상들이 물려준 소울,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긴 유산인 정열, 미국 자본주의가 뿌려놓은 퇴폐와 향락, 쿠바혁명이 남긴 자존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셋도 비교 불가이지만, 이중 쿠바혁명이 원초적 자존감과 연결된다. 특히 피델 카스트로가 인상적이었다. 관광객의 공간에는 체 게바라 상징이 압도적이었지만 쿠바인들의 일상 공간은 피델이 주인공이었다. 체 게바라는 동상이 있지만 피델 카스트로는 동상이 없다. 게바라는 이용하는 사람이고 카스트로는 기억하는 사람인 셈이다.      


쿠바를 버리고 미국으로 탈출하는 사람을 보고 갈 테면 가라 하고, 자신보다 인기 많은 게바라를 마음껏 추모하게 하고, 자신의 무덤에 ‘FIDEL’ 이름 다섯 글자만 남긴 남자, 쿠바 여행은 피델 카스트로의 자존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그런 피델처럼 쿠바인들도 자존감 덩어리들이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말은 쿠바인에게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그들은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았다. 스타일로 누추함을 극복했고 사치를 눌렀다.      



쿠바 여행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우리를 쿠바로 이끄는 매력과 우리가 쿠바를 기억하는 매력은 달라지게 된다. 그것은 여행 주에 기대하지 않았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런 새로운 매력에 대한 발견은 여행자에게 축복이다.      


쿠바로 이끄는 것을 꼽아본다면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체 게바라 그리고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쿠바에 다녀온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으로 쿠바를 기억하지 않는다. 모히토가 아니라 다이끼리로 아바나를 기억하듯이 말이다.      


쿠바인들이 국부로 여기는 독립운동가 시인 호세 마르티의 '관타나메라',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라고 했던 피델 카스트로의 자존감, 거리의 이름 없는 밴드들이 선물한 멋진 순간들, 이것들로 쿠바를 기억하게 된다.     

그 자존감에 묻어 지낸 쿠바의 모든 순간들이 좋았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쿠바를 가야 한다. 쿠바는 우리 인생의 ‘중간 정산’이자 남은 인생을 위한 ‘중간 급유’가 되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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