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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Oct 06. 2020

여행 기획은 '계산된 일탈'을 설계하는 것

훈련소에서 맥주를 찾던 그 훈련병은 여행감독이 되었다지


카투사로 군생활을 했다. 편했다. 하지만 인간은 절대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 이상을 원한다. 나도 그랬다. 평일 카투사들의 통행 제한은 밤 10시였다. 10시 넘어서 들어오는 사병은 게이트에서 명단을 작성해 예하부대별로 징계했다.      


카투사로 복무할 때 입대 전과 마찬가지로 과외 알바를 두 개 뛰었다. 돌이켜보니 대학시절 내내 과외 두 개는 상수였던 것 같다. 덕분에 집안 형편보다 과한 소비생활을 즐겼다. 과외 중 하나가 부대와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10시 전까지 돌아오는 게 불가능했다.     


방도를 구해야 했다. 넘어올 만한 담을 찾았다. 무려 군부대 담을~ 찾아보니 철책이 없는 곳이 있었다. 물론 담장 바깥도 공용 시설이라 그 시설까지 넘어와서 다시 담을 넘어야 하는 이중 담타기를 해야 했지만 어쨌든 찾아냈다. 담장 아래에는 ‘군견 순찰 구역, 무단 통행 시 발포함(?)’ 정도의 글귀가 있었던 것 같다. 담장 아래서 살펴봤는데 당연히 군견도 발포도 없어서 모험을 감행했다. 그리고 과외도 제대도 무사히 마쳤다.      


평택의 카투사 교육대에서는 밤마다 탈영(그들 기준으로 한다면)을 감행했다. 매일 밤 점호를 마치고 나면 다시 운동복을 챙겨 입고 500 지역(그들 기준의 위수 구역)을 벗어나 공중전화로 뛰어갔다. 훈련병은 500 지역 안에 있어야 하고 여기를 벗어나면 탈영이라고 경고했었지만 훈련병인지 기간병인지 누가 관심이나 있겠냐는 생각으로 매일 소통을 즐겼다.     


사실 그렇게까지 전화를 애타게 찾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썸을 탄다고 일방적으로 간주하던 여인에게 전화를 하긴 했지만 내 전화를 그리 반겼던 것 같지는 않다(아 이렇게 허비한 시간과 정열을 다른데 쏟았으면~). 깨알같이 쓴 친구들 전화번호를 들여다보면서 전화도 하고 삐삐도 남기고 그랬다.      


평택 캠프 험프리는 헬기장이 있어서인지 부대가 넓었다. 그 넓은 부대를 달리면 답답한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 암튼 밤마다 전화할 곳을 궁리하며 뛰어갔는데 어느 날 미군 헌병 차량이 갑자기 내 옆에서 멈춰 섰다. 순간 가슴이 철렁. 들켰나? 차창을 내린 헌병은 나에게 로드 가드 베스트를 입고 뛰라고 경고하며 떠났다. 일종의 야광 조끼인데 부대 안에서 밤에 달릴 때는 그걸 입고 뛰는 게 매뉴얼이었다. 다음날부터 하나 짱박아서 입고 뛰었다.     


교관들은 신병들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카투사 스낵바(분식점)에 데려갔다. 처음 간 날 냉장고에 맥주가 유독 맛있어 보였다. 스낵바 아저씨한테 맥주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만원이라고 했다. 세상에 한 병에 만 원짜리 맥주가 어딨냐고 했더니 아저씨도 지지 않고 세상에 맥주 찾는 훈련병이 어딨냐고 했다. 결국 못 사마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기어이 맥주를 마셨다. 교관들 막사의 자판기에서 뽑아 마셨다. 버드와이저였던 듯. 달러만 들어가는 자판기였는데 거스름돈으로 미리 달러를 확보한 다음 덜컹 뽑았다. 그 캔맥주를 들고 화장실 안의 샤워실에 들어갔다.     


맥주 캔 뚜껑을 따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처럼 맥주를 마시던 놈들이었다. 우리보다 교육대에 보름쯤 먼저 온, 교육이 끝나면 공동경비구역 JSA에 버려질 허우대 좋은 놈들이었다. 평소엔 우리를 갈구던 놈들인지 웬일인지 그날은 나를 반겨주었다. 뭔가 일탈의 동지의식? 함께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눴는데 다들 나보다 동생들이었다.     



돌이켜보니 그리 모험을 즐기지는 않는 스타일인데 때때로 ‘계산된 일탈’ 정도는 즐겼던 것 같다. 사실 여행을 계획한다는 것은 ‘계산된 일탈’을 설계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행 자체가 일탈이기도 하고 여행에서는 일탈의 욕구가 더 커진다. 그때 섬세한 계산이 필요하다.      


일상과 일탈, 이상과 이탈. 이것이 여행의 함수가 아닌가 싶다. 공식은 이렇다. ‘일상의 일탈이 되는 여행은 일상을 지켜주지만, 이런 일탈이 없으면, 이상해져 결국 일상의 궤도에서 이탈해 버린다?’ 그래서 여행의 ‘계산된 일탈’은 신선한 자극이 된다.       


이 여행의 함수를 조금 비틀어보면 일상이 없는 일탈 역시 허무하다. 일탈이 빛나는 건 무료한 일상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어서다. 의무가 없는 일상일 때, 일탈에서 돌아온 일상은 지극히 무기력하다.      


일탈과 이탈은 한 끗 차이다. 일탈은 복귀를 전제로 한다. 여행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전제로 한 일탈이다. 세상에 설명될 수 없는 일탈은 없다. 그걸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당신의 문제다.     


일상에서 일탈하면 선악이 모호해진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 말은 내가 공감하면 로맨스 공감 못하면 불륜이라는 말인데 여행에서는 공감의 여지가 넓어진다.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는 때가 있다. 그 사회적 공황장애를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여행이다.      


일탈의 에너지는 축제를 만들어낸다. 고대의 축제가 즐거웠던 것은 일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위의 전복이 있고 성적 자유가 있고 에너지의 발산이 있어서 모두가 축제를 기다렸다. 어쩌면 최첨단 쇼로 보이는 싸이 콘서트는 이런 고대의 축제에 가장 가까운 쇼일 수 있다. 본능이 반응하게 하는 축제.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축제는 단순해진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단일 콘서트로 가장 매출이 크다는 울트라뮤직페스티벌에 갔던 소감이다. 그곳에는 가장 잘 계산된, ‘준비된 일탈’이 있었다. 그들의 떼춤은 종교의식에 가까웠다.      


어쨌든 오늘도 나는 ‘계산된 일탈’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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