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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ug 16. 2021

경기관광공사 사장이 풀어야 할 경기 여행의 숙제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에서 문화적 원심력을 발휘해보길~


숨다

숨 쉬다

숨어놓다 


경기도의 관광/여행 코드로 ‘숨’을 생각해 보았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있는데 그들에게 필요한 여행 중에 경기도가 할 수 있는 일은 ‘숨을 곳 그래서 숨 쉴 곳’을 제공하는 게 아닐까. 경기도 여행지는 큰 기대 안 하고 잠시 숨을 곳, 그래서 숨 쉴만한 곳이면 족하지 않을까? 일상에서 잠시 탈출해서 뭔가 숨겨 놓을 수 있는 곳. 


요즘 경기관광공사 사장 임명을 놓고 시끄러운데, 문득 예전에 기획했던 '컬처 도넛' 개념이 생각나서 다시 꺼내보았다. 간단히 얘기하면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 신도시가 베드타운을 도넛 모형으로 형성하고 있는데, 각 도시를 특색 있는 문화도시를 가꿔 '컬처 도넛'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주중에 서울에서 일하고 주말에 경기도 도시에서 쉬는 게 아니라, 서울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주말에 경기도로 문화생활을 하러 온다는 개념이다. 


컬처 도넛 개념도



서울은 문화적 구심력이 강한 도시다. 대부분의 중요한 문화 행사가 서울에서 열린다. 방학을 겨냥한 블록버스터 만화영화, 대형 전시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공연이 풍성하다. 그래서 서울시민들은 문화 활동을 위해서 주변 도시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서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적 원심력을 한번 발휘해보자.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들은 독자적인 문화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지금 사는 곳을 컴퍼스의 중심으로 잡고 원을 좀 더 크게 그려보자.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서울의 위성도시는 베드타운에서 문화 거점으로 활발히 진화했다. 


부천시는 만화의 도시가 되었고, 고양시는 꽃과 박람회의 도시, 광주·여주·이천시는 도자기의 도시, 국립과학관이 있는 과천시는 과학 체험의 도시, 수원화성이 있는 수원시는 전통문화의 도시, 대규모 공연장이 있는 성남시는 공연예술의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축제를 열어 사람들을 모은다. 이런 특색 있는 수도권 문화도시를 연결하면 도넛 모양의 문화벨트가 형성된다. 이 '컬처 도넛'을 중심으로 문화적 원심력을 발휘해 보면 재밌지 않을까?



만화의 도시, 부천

먼저 만화의 도시 부천이다. 서울시 도봉구와 다툼이 있긴 하지만 〈아기공룡 둘리〉의 주인공인 둘리의 주소지가 부천이다. 부천시는 지난 2003년 둘리에게 명예주민등록증을 발급했다. 둘리가 만화잡지 〈보물섬〉에 처음 연재된 1983년 4월22일을 둘리의 생일로 하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위치한 부천시 원미구 상동을 둘리의 주민등록상 주소로 정했다.


만화의 도시 부천은 여름에 가장 큰 잔치를 벌인다.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주인공이다. 2014년에는 ‘만화, 시대의 울림’으로 주제를 삼기도 했다. 만화 하면 사람들은 오락을 먼저 떠올리는데, 시대의 이슈에 대해 발언하고 현실에 참여하는 만화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가볍게 표현한, 그러면서도 깊은 여운이 있는 만화를 소개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열리는 부천은 영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박람회의 도시, 고양

국내 최대 전시장인 킨텍스가 위치한 고양시는 박람회의 도시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박람회’가 열리곤 한다. 어린이 관련 학습지 등 교육 관련 상품, 키즈카페나 테마박물관 등 체험시설, 어린이 스포츠 용품, 어린이 안전 먹을거리, 어린이 패션 용품 등 어린이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전시된다. 여름방학 때 아이들을 믿고 데려갈 수 있는 곳이다. 성남아트센터와 쌍벽을 이루는 공연시설 ‘아람누리’가 있는 고양시는 공연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1000석이 넘는 대극장이 세 곳(아람극장, 아름음악당, 어울림극장)이나 있다. 특히 여름에는 청소년들이 클래식과 만날 수 있는 음악회를 많이 연다. 


클래식의 도시, 성남

성남아트센터에서는 다양한 클래식 실험이 행해진다. 첼리스트가 아닌 지휘자 장한나를 만날 수 있던 곳도 성남아트센터였다. BBC 프롬스에서 지휘자로 데뷔하기 전 장한나는 성남아트센터에서 앱솔루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했다. 공연 전 직접 설명하는 공연 해설 시간을 가졌는데 장한나가 재해석한 드뷔시와 브람스와 베를리오즈의 교향곡을 들을 수 있었다.


국립발레단이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제작한 대작 발레 〈왕자 호동〉도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되었다. 〈왕자 호동〉은 한국무용계의 권위자 국수호씨가 줄기를 잡고 해외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는 차진엽씨가 갈래를 쳐, 묵직하면서도 발랄하고 다채로운 안무를 선보였다. 이런 작품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었다. 대체로 성남아트센터는 예술의전당 수준의 공연 라인업을 자랑한다. 


과학의 도시, 과천

국립과천과학관이 있는 과천은 과학적 상상력을 키워주기 위해 여름방학 때 꼭 들러야 할 도시다. 매년 여름 과학에 대한 흥미를 높이기 위해 기획된 ‘사이언스 캠프’ 등이 준비되어 있다. 국립과천과학관은 특별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상설전시가 워낙 규모 있게 진행되고 있어서 방학 때 아이를 꼭 한번 데려가 볼 만한 곳이다. 



공공예술의 도시, 안양

안양은 공공예술의 도시다. 국내 유일의 공공예술 전문센터인 ‘안양파빌리온’이 오픈했다. 2005년부터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가 진행되었는데, 안양예술공원 일대에 설치된 이 ‘지붕 없는 미술관’의 작품들을 전문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산책할 수 있다. 안양예술공원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옛 유유산업 공장 부지를 재활용해 만든 국내 최초 건축 박물관인 김중업박물관이다. 김중업 선생은 한국 최고의 건축가로 꼽힌다. 박물관은 총 6개 건물로 이뤄졌는데 ‘김중업관’에 그가 생전에 남긴 건축도면과 모형 등 작품 100여 점이 상설전시 중이다. ‘문화누리관’은 김중업 선생이 직접 설계한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편의시설도 잘 갖추었다.


도자기의 도시, 이천 여주 광주

경기도 이천시는 여주시·광주시와 함께 ‘도자기의 도시’로 꼽힌다. 격년으로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열린다. 세 도시 모두 도자기로 알려졌지만 조금 성격이 다르다. 관요의 고장이었던 광주시는 전통 자기가 발달하고 여주시는 스타일 있는 현대자기가 발달한 것에 비해, 이천시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생활자기가 발달했다. 이 이천시에 있는 ‘세라피아 토락교실’에서 여름방학 때 ‘빙글빙글 물레체험’이 열린다.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 만드는 체험은 다른 곳에도 많다. 하지만 이곳은 실제 도자 작가들이 일대일로 지도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전통의 도시, 용인

한국민속촌이 있는 용인은 전통의 도시다. 여름에 용인에 가면 대부분 캐리비언베이에 가서 물놀이를 하지 민속촌에 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민속촌은 다른 곳보다 3℃ 정도 기온이 낮다고 한다. 이 민속촌에서 신선놀음을 할 수 있는 축제가 바로 ‘시골 외갓집의 여름’이다. 선비들이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풍류를 즐겼던 ‘탁족’이나 시원한 정자에서 죽부인을 안고 잠을 청하는 경험 등을 할 수 있다. 시원한 등목을 하고 차가운 얼음 평상에 앉아볼 수도 있다.


갯벌의 도시, 평택

여름 축제 중 가장 인기가 좋은 건 단연 보령머드축제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가기에는 거리가 제법 멀다. 아쉬운 사람들이 주목할 조그만 머드 축제가 있다. 평택시 바람새마을에서 하는 ‘논풀머드축제’다. 말 그대로 논을 활용한 논풀장에서 실컷 노는 축제다. 피부 미용과 아토피에 좋다는 황토 진흙이 흥건하다. 트랙터 달구지 타기, 논 왕우렁이 잡기 체험, 맨손 물고기 잡기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고, 캠핑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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