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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Oct 16. 2020

세월호 빚을 갚는 진도 여행을 만들다

진도의 시간은 세월호에서 멈췄다

     


세월호 침몰 당시 진도의 어부들은 고기잡이를 멈추고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사람들을 구했다.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그들의 삶의 터전인 팽목항을 내주었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잠자리도 제공했다. 그렇게 남도의 정을 보여주었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시름뿐이다. 사람들의 시간이 세월호에서 멈춰서 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광주가 5-18 민주화운동 이전이 사라지고 오직 그 시점으로만 기억되듯 진도 역시 세월호에서 멈췄다. 여행을 계획할 때 사람들은 일상의 번잡함을 잊기 위해 힐링이 되는 장소를 찾는다. 그런 여행자들에게 팽목항이 있는 진도는 너무나 무겁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 무게에 짓눌린 진도를 위해 여행을 개발해 보겠다고 약속한 것이 5년 전이었다. 드디어 11월 남도기행에 진도를 코스로 잡았다.      


진도군은 원래 관광산업 비중이 큰 곳이었다. 보통 군청 관광과에는 계를 4개 두는데 진도군은 6개를 두었다. 그만큼 관광에 대한 비중이 컸다. 관광 인프라 구축에 투자도 많이 했다. 민간 조직인 관광진흥협의회를 두고 민관이 협동해 관광산업을 육성하고 있던 차에 세월호 참사로 직격탄을 맞았다. 한번 끊긴 관광객의 발길은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 남도 예향 1번지는 진도였다     


“어메어메 우리 어메/ 뭐 할라고 나를 나서/ 글공부나 시키제/ 일 공부를 시켜갔고/ 날고생을 시키는가// 사래 길고 청찬밭에/ 폭죽 같은 땀을/ 못 매것네 못 매것네/ 논에 가면 가래원수/ 밭에 가면 바라원수/ 집에 가면 시누원수/ 아깝다 내 청춘아/ 언제 다시 또 올거나.”      


2015년에 여든셋이었던 한남례 할머니가 들려준 진도 ‘흥그레타령’이다. ‘흥그레타령’은 여름철에 콩밭이나 수수밭을 맬 때 흥얼흥얼 읊던 노래라고 한다. “이런 토속민요를 다 부를라문 밤을 새워도 다 못 부르요”라고 호기롭게 장담하는 할머니가 들려준 다음 노래는 ‘육자배기’였다. 새참을 먹거나 쉴 때 부르던 노래다. 

     

“빗소리도 님의 소리/ 바람소리도 님의 소리/ 아침에 까치 우니 행여 오시려나/ 고운 마음으로 고운 님 기다리네/ 님이 오는 꿈이라면 깨지를 말지/ 님이 가는 꿈이라면 꾸지를 말지.”     


한남례 할머니는 진도 소포리전통민속보존회 회원이었다. 보존회 회원들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마을 전통예술 체험관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공연을 한다. 회원들의 평균 나이는 일흔이 넘는다. 상모를 돌리는 홍복동 할아버지는 여든셋이었다. 북춤을 추던 고헌신 할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아 읍내에서 세탁소를 하는 제자 임강택 씨가 대신 공연했다. 물론 그도 환갑을 넘었다.      


보존회의 공연은 관람객들과 함께 강강술래 춤을 추는 것으로 끝이 났다. 보존회 김병철 회장은 “이렇게 두 시간 공연허고 관광객들헌티 받는 체험료가 인당 5000원이요. 그것을 모아갖고 정산을 해본께 회당 출연료가 인당 2000원꼴이더만요. 담뱃값이 올라갖고 이제 걸로는 담배 한 갑도 못사부요. 그래도 상관없소. 좋아서 부르는 거이께. 듣는 사람도 좋아불문 그걸로 되얐죠”라고 말했다.     



@ 진도를 맛나게 여행하는 법     


진도 여행은 진도타워에서 시작한다. 진도에 들어오는 사람은 모두 진도대교를 통과하는데, 대교를 건너면 처음 만나게 되는 곳이 바로 진도타워다. 진도타워는 웅장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멋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전망만은 일품이다. 해남 화원반도와 진도 일대 360° 조망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명량해전이 벌어진 ‘울돌목’을 볼 수 있다.     


울돌목 해협의 바다는 홍수가 났을 때의 강물처럼 거칠게 흐른다. 정조기-소조기-중조기-대조기 순서로 물살이 거칠어지는데, 대조기에는 여기저기 소용돌이도 생기고 영화 〈명량〉에서처럼 바다가 우는 듯한 소리도 들린다. 그래서 물살이 울며 휘감아 돈다는 뜻으로 ‘울돌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로는 진도의 외해에 있는 곳으로 이곳 역시 물살이 거칠다.     


외지인이 일단 진도에 들어오면 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들어선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거제도 다음으로 큰 섬으로, 그 면적이 363㎢에 이른다. 그래서 진도 여행은 대체로 해안선을 따라 도는 형태로 이뤄진다. 시계 방향으로 혹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우리의 안내를 맡은 이평기 진도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가벼운 농담으로 진도 자랑을 시작했다. “남도에서는 이런 말을 한다. 순천에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고 화순에서 땅 자랑하지 말고 목포에서 노래자랑하지 말라고. 그럼 진도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이 중 아무것도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      


그는 역사적 사실관계를 꼼꼼히 따져보는 향토 사학자이자 섬세한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예술비평가였다. 소치 허련 선생이 35년간 머물며 작업했던 운림산방의 연못을 안내하면서 그는 영화 〈스캔들〉을 찍은 장소여서가 아니라 이 연못을 사각형이 아닌 오각형으로 만든 이유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연못 가운데 나무가 있어서 사각형으로 연못을 만들면 곤궁할 곤(困) 자가 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단다.     

 

남종화의 대가로 묵죽도를 잘 그렸던 소치 허련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기도 하다. 남종화는 그림의 기교보다 정신을 중요시했는데, 소치는 자손들에게 4가지 교훈을 남겼다. ‘붓 재주 하나로 성가 할 생각을 말라, 먹을 항상 입에 달고 다녀라, 인연의 소중함을 잊지 말라, 나를 밟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      


소치 허련의 후손 중에서 5대에 걸쳐 13명의 화가가 나왔다. 운림산방 전시실에는 5대에 걸친 소치 집안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세대를 따라가면서 보면 한국 수묵화의 변화 양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올곧은 선비정신을 중요시한 남종화가 현대 문명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팝아트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운림산방을 나와 장전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이평기 해설사의 진도 자랑이 이어졌다. “진도에서는 ‘나 그림 좀 그립니다’ ‘나 노래 좀 합니다’ 이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국전에 입상한 것을 넘어 심사위원 정도는 되어야 그림 좀 그린다고 하고, 노래를 할 때도 그 정도 해야 인정을 해줍니다.”      


서예가 장전 하남호 선생의 작업실을 미술관으로 꾸민 장전미술관(구 남진미술관)에서 해설사가 말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장전미술관은 장전 선생의 예술적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회화·도자기·조각·수석·희귀 나무와 식물이 즐비해 마치 보물창고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이런 미술관을 한적한 산 중턱이 아니라 마을 한가운데 둔 것이 이채로웠다. 장전미술관이 있는 임회면 하회마을에서는 현 한국예총 회장인 임농 하철경 화백을 비롯해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이 일곱 명이나 나왔다.     



@ 진도 트레킹 코스(접도와 관매도)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진도의 관광지는 ‘웰빙길’이 있는 접도다. 진도와 연도 되어 있어서 접근이 쉽다. 접도에서는 장재호 생태해설사가 길 설명에 나섰다. 장 해설사는 자신이 군의원이던 2005년부터 접도 웰빙길 조성을 주도했다고 했다. 웰빙길은 10년 만에 트레킹 명소로 자리 잡아서 주말이면 관광버스가 수시로 드나든다.     


접도 웰빙길은 ‘가성비 좋은’ 트레킹 코스로 꼽힌다. 살짝만 올라도 사방의 섬과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섬 트레킹의 묘미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생태적으로 독특하다. 활엽수림과 상록수림이 교차되는 곳이라 걸으면서 식생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 오감을 열어놓고 걸어볼 만한 곳이다.      


관매도 트레킹은 진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진도가 용이라면 관매도는 여의주다. 진도까지 와서 관매도를 가보지 않는 것은 여의주를 버리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해에 굴업도가 있다면 남해에는 관매도가 있다. 우리가 섬을 생각할 때 기대하는 다양한 로망을 구현해주는 섬이 바로 관매도다.      


특히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관매도는 놓쳐서는 안 될 섬이다. 파도소리길, 피톤치드길, 습지관찰 길, 돌담길, 논길, 매실길, 해당화길 등 길의 향연이 펼쳐진다. 관매도에는 산책로가 여러 개 있는데 두 코스는 꼭 걸어보는 게 좋다. 하나는 선착장에서 관호리 마을을 거쳐 꽁돌 해변(사진)과 돌묘를 지나 하늘다리를 건너갔다 되돌아오는 코스다. 섬 트레킹을 상상하며 기대할 수 있는 해변길과 해상 절벽 등을 두루 경험할 수 있다. 카메라를 어디에 들이대도 작품 사진이 나온다.       


다른 하나는 관매 해수욕장과 곰솔 숲을 지나 방아섬까지 갔다가 바닷가 외딴집을 돌아 고개를 넘어오는 길이다. 중간중간 바닷가로 연결된 오솔길로 내려가면 ‘개인 해수욕장’을 즐길 수 있다. 장산편마을로 내려와서는 샛배쉼터로 돌아 논건네길을 지나서 관매리 마을로 돌아온 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후박나무에서 마무리하면 된다.     


관매도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섬이지만 또한 인공적인 섬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많이 개발되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파헤쳤다는 말은 아니다. 필요한 부분이 적절하게 개발되었다. 이를테면 오렌지색 지붕으로 정비되어 마을 풍광이 아름답다. 벽화마을이 조성되어 골목길을 걸을 때 심심하지 않다. 2010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명품마을’ 1호로 지정하고 2011년 KBS 〈1박 2일〉에 방송되면서 방문객이 많아지자 마을 주민들이 민박집을 개선해 숙소가 깔끔한 편이다.     



@ 진도 여행의 마무리는 석양의 ‘홍주’로     


진도에는 포구가 많은데 동쪽의 접도 주변 포구가 조용하고 깨끗한 편이다. 초평항·도항·수품항이 여기에 속한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국내에서 가장 큰 광어 양식장도 이곳에 있었다. 〈포구기행〉을 쓴 곽재구 시인은 남동리 포구를 추천했다. 진도항 옆 서망 포구는 수협 공판장이 있어서 고깃배가 많이 드나들고 어시가 열리기 때문에, 회 뜰 생선을 살 수 있다.      


진도 관광의 백미는 일몰 구경이다. 국토의 서남해에 위치한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일몰 시간이 매우 늦은 곳이다. ‘다도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 섬을 배경으로 보는 석양이 일품이다. 특히 세방낙조가 유명하다. 높은 해안도로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빛이 바다에 가장 아름답게 비치는, ‘해상도 높은 일몰’을 볼 수 있다.      


일몰을 감상할 때 ‘진도홍주’와 함께하면 좋다. 증류 과정에 지초를 넣어 붉은색을 띠는 진도홍주는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주다. 유리잔에 사이다를 채운 다음 그 위에 홍주를 살짝 부으면 마치 노을이 지는 것처럼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잔으로 노을을 비추면서 마시는 게 진도식 홍주 음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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