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을 위한 자발적 섬 유배'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바쁜 현대 도시인들에게 '숨, 쉼'이 될 수 있는 섬을 답사하고 있습니다. 숨을 곳, 그래서 쉴 수 있는 곳, 그리고 숨을 쉴 수 있는 곳. 거대한 야생초 서식지로 '온실 밖 식물원'이라 할 수 있는 풍도는 그런 섬 유배의 최적지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설가 김훈 선생님을 모시고 풍도에 다녀왔습니다. 가을에 경기아트센터에서 김훈 선생님을 모시고 토크콘서트를 가질 예정인데 사진/동영상 촬영차 갔습니다. 일전에 뵈었을 때 최근에 다녀온 풍도 이야기를 했더니 궁금해하시더군요. 특히 풍도 앞바다가 청일전쟁의 주된 전장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여행가로서의 김훈'을 재발견하기 위해 풍도 답사를 기획했습니다.
답사 내내 김훈 선생님의 화두는 청나라 병사, 청일전쟁, 청나라 병사의 무덤 등등 오직 풍도의 역사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을 잇는 풍도 역사소설이 나올지 궁금해지더군요. 풍도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오셔서 저도 자료조사를 조금 해보았는데 무엇보다 청일전쟁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본에서는 풍도해전을 근대 일본이 제국으로 가는 기점으로 보고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곳이라는데...
남북 항로와 동서 항로가 십자로 교차하던 곳
모든 섬은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니던 시절'을 가지고 있습니다. 풍도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풍도에선는 어떤 파시가 열렸냐고 물었더니 풍도는 어장이 좋아서가 아니라 '화물업'으로 전성기를 보냈다고 했습니다. 무슨 얘기냐고 했더니 조선시대 조운선을 비롯해 무동력 선은 풍도를 들러서 갈 수밖에 없어 이곳에서 짐을 부리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도를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는데 경기만 입구에 있어서 경기만을 건너려면 풍도에서 묵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풍도를 중심으로 또 하나의 라인이 교차하는데 남북 라인이 조운선의 라인이라면 동서 라인은 중화의 라인입니다. 청나라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섬, 덕적군도와 대이작도 승봉도를 잇는 섬이 풍도입니다. 지도를 보면 풍도는 남북 조운선과 동서 무역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풍도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계속 휘말리게 됩니다.
당나라 소정방이 거쳐간 것을 비롯해 청일전쟁의 서막이 이 풍도 앞바다에서 벌어졌습니다. 당시 양국 육군의 주된 전장은 아산이었는데 여기에 병력을 수송하던 청나라 군함과 상선이 풍도에 정박해 있었습니다. 이를 일본 함선이 격침시켰는데 이 풍도해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 훗날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무릎 꿇린 도고 제독입니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사실이 잠긴 풍도의 바다는 지극히 고요했습니다
올 가을, 단풍섬 풍도 답사
경기도에는 4개의 유인도가 있습니다. 풍도 육도 입파도 국화도. 이중 여행감독 원픽은 단연 풍도입니다. 풍도를 간단히 묘사한다면 '거대한 온실 밖 식물원'입니다. 풍도는 야생화의 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풍도바람꽃, 복수초, 노루귀 등이 지천이라고 하더군요. 풍도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단풍나무도 많습니다. 봄과 가을에 압도적인 풍광을 선사합니다.
늦여름/초가을에 풍도에 가야 하는 이유는 '석양 맛집'이기 때문입니다. 덕적군도 너머로 압도적인 석양을 볼 수 있습니다. 인근의 당진 왜목마을이 '석양 맛집'으로 꼽히는데, 지도를 들여다보면 아시겠지만 댈 것이 아닙니다. 눈에 걸리는 것 없이 시원한 하늘맛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름이 끝나기 전 꼭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가을이 되면 풍도는 단풍섬으로 변합니다. 봄에 갔을 때 수령이 500년 이상 된 은행나무를 두 그루 보았는데 가을에 어떻게 물들지 궁금하더군요. 풍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단풍나무가 제법 많았는데 이 단풍나무들이 가을에 어떤 화폭을 펼칠지 기대가 됩니다.
풍도는 거대한 '온실 밖 식물원'
풍도에서 석양을 감상하기 좋은 곳은 붉배입니다. 큰 바위틈으로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어 캠퍼들의 성지로 꼽히는데 여기서 등대를 끼고 석양을 보면 잊을 수 없는 풍광을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기는 캠핑을 하면서 소수가 독점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함께 풍광을 나누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붉배에서 언덕을 넘어 마을에 가는 길은 야생화 명소입니다. 야생화 마니아들이 풍도에 야생화를 보러 가는 때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2~3월이라 하더군요. 눈을 뚫고 나오는 야생화를 볼 수 있다고 하네요. 아직 북서풍의 바람 끝이 차가울 때인데 내년에는 저도 그때 한번 가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볼 것 많은 풍도가 그동안 조명되지 못했던 이유는 배편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 출발한 배가 안산 대부도 방아머리에 들러 풍도에 들어가는데 하루에 한 편 밖에 없습니다(주말에는 두 편). 풍도는 이런 불편을 감당하고라도 꼭 한 번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섬입니다.
잊혀진 역사의 섬, 풍도
아래 글은 니시무라 도시스케라는 일본 종군기자가 남긴 <풍도해전>의 기록을 후대에 복원한 내용이다. 우리에게는 잊힌 전쟁이지만 일본에서는 풍도해전을 비중 있게 가르친다고 한다. 일본이 해양대국으로 성장하는 시발점이 되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러일전쟁의 영웅 도고 제독도 이 풍도해전에서 첫 승전을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무런 표식도 없지만 풍도에는 청나라 수병이 묻힌 곳이 있습니다. 봉분도 없고 추모비도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풍도에 전승비를 세웠고 이를 마을 주민들이 깨뜨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동아시아의 패권을 바꾸는 첫 전투가 이곳 풍도 앞바다에서 벌어졌는데 이를 알려주는 아무런 표식도 없다는 것이 안타깝더군요. 다음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찾은 청일전쟁 당시의 기록 중 도고 제독에 관한 부분입니다.
"청의 함대가 아산만 일대로 진출하자, 일본 대본영은 연합함대 사령관 이토[伊東]에게 비밀 작전을 하달하였다. 기습공격을 통해 청의 함대를 격파하여 청의 기세를 꺾으라는 것이었다. 이토는 아산에서 중국 여순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안산 앞바다의 풍도 인근에 전함 15척, 수뢰정 6청을 숨겨놓았다. 그리고 추가로 쾌속 순양함 3척을 조선 해안을 시찰한다는 명목으로 풍도 앞바다로 함께 보냈다.
한편, 호위함 조강호(操江號)와 1,200명의 군사와 보급품과 장비를 싣고 아산으로 들어가던 고승호(高升號)는 일본 군함의 공격을 받았으며, 조강호는 나포되었다. 원래 고승호는 런던의 인도차이나 증기 선박회사[Indochina Steam Navigation Company] 소유의 2,134톤급 영국 상선으로 청나라가 군대를 조선으로 수송하기 위해 대여한 것이었다. 이 배에는 골즈워시(T. R. Galsworthy) 선장과 64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었다. 청나라의 고문인 독일의 포병장교 하네켄(Hanneken) 소령도 승선하고 있었고, 7월 25일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두 배를 가로막은 것은 도고 헤이하치로 선장이 지휘한 순양함 나니와호였다. 군함은 결국 포획되었고, 일본은 고승호에 나니와호를 따를 것과 승선한 유럽인들은 나니와호로 옮겨 탈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승선한 1,200명의 중국인들은 영국 선장과 선원들의 생명을 위협하며 다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결국 4시간의 협상 끝에 도고 함장은 사격을 명하였다. 유럽인들은 바다에 뛰어들었고, 중국인들은 이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유럽 승무원들을 구한 건 일본군이었다.
고승호의 침몰은 일본과 영군 간의 외교적 분쟁을 일으켰으나, 폭동에 대한 국제법으로 처리되었다. 이것이 풍도해전이며 청일전쟁의 시작이었다. 결국 풍도해전은 일본의 대승으로 끝났고, 일본은 이후 한반도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같은 날 일본군 4,000명은 아산과 성환에 주둔해 있던 청군을 공격했다. 청나라 총병 섭사성(聶士成)이 끌던 부대가 패전하자 해군 제독 엽지초(葉志超)는 탈주했고, 아산은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