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산여행 아이템 중에 부각되는 것이 영도여행이다. 해운대나 광안리가 아니라 영도 중리해변으로, 감천마을이 아니라 흰여울문화마을로, 국제시장이 아니라 봉래시장에 가야 힙하다고 한다. 영도에 가야 진짜 부산이 있다는 것이다. 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 청년 기획자들이 '무장애 영도 여행' 개발하는 것을 컨설팅하고 있는데 마침 중견 기획자들이 '영도 랜선 투어'를 기획하고 있다고 해서 여기도 관여하게 되었다. 함께 작업을 하면서 '신영도8경'을 구상해 보았다.
정치인들이 툭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어버리겠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영도다리는 그렇게 쉽게 입에 담을 다리가 아니다. 부산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그 애환을 이용하려고 김무성 전 의원은 영도다리 위에서 '옥쇄파동'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그렇게 소모될 다리가 아니다. 피난민의 응어리진 삶부터 자갈치 시장 상인들의 피곤까지 모든 애환을 담아낸 다리다.
이 영도다리를 건너 영도를 안내하겠다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로컬씬에서는 주목받는 신예들이다. 건축기획가인 심영규 울산대학교 겸임교수, 홍주석 어반플레이 대표, 김지형 가이드라이브 대표가 그들이다. 여기에 새로운 영도를 만들고 있는 영도의 젊은 피, 김철우 RTBP 얼라이언스와 삼진이음(삼진어묵)의 홍순연 이사와 신기산업(신기카페)의 이성광 대표가 이들과 함께 영도를 읽어준다.
이들이 아니라면 사실 외지 사람들이 영도다리를 건널 일은 별로 없다. 해운대와 광안리가 있는데, 이기대와 오륙도가 있는데, 마린시티와 센텀시티가 있는데,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이 있는데, 영도다리를 건널 생각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빛바랜 유원지 태종대를 빼고서는 영도가 내놓을 관광 자산은 많지 않다. 부산에는 영도 외에 가야 할 곳이 너무나 많아서 영도는 선택지 바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도에 갈 이유를 꼽아보라면, '인더스트리얼 뷰'를 꼽고 싶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비롯해 영도에는 항구도시 특유의 산업경관이 두루 펼쳐진다. 산업화 시대를 거쳐서 고도 사회에 진입한 덕분일까? 이제 이런 산업경관을 바라보면서 여유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는 발전했다. 이런 산업경관을 보면서 덤덤하게 <미래소년 코난>의 '인더스트리아'를 떠올리는 여유가 생겼다.
영도를 읽어주겠다던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로컬 인사이트 투어-영도편' 기획안을 두루 살펴보았다. 영도를 어떻게 큐레이션 했는지 들여다보았다. 영도문화도시센터의 무장애 영도 여행 개발을 컨설팅하는 입장이라 더욱 관심이 갔다. 큐레이션은 대체로 리서치(자료조사) - 분석과 선별 - 디스플레이(배치)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이들이 영도의 관광자원을 이들이 어떻게 재해석하고 코스를 짜는지 궁금했다.
큐레이션에는 시선이 담긴다. 대체로 건축가와 공간기획자의 시선으로, 3말4초(30대 후반~40대 초반)의 전문가 그룹의 시선으로 영도를 읽어낸 것으로 보인다. 한 공간을 바라볼 때, 신화와 전설적 단계/ 역사와 문명적 단계/ 문화와 예술적 단계로 자원 분석을 할 수 있는데, 이들은 하드웨어를 분석해 역사와 문명적 단계, 소프트웨어를 분석해 문화와 예술적 단계의 분석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궁금하신 분들은 8월27일 진행되는 이들의 '라이브 영도 랜선 투어'에 참여해 보시길~ 아래 첨부).
이들의 기획을 보고 여행감독으로서 영도를 재해석할 수 있는 '신 영도8경'을 한 번 꼽아보았다. '신 영도8경'은 명승지와는 다른 개념이다. 영도라는 자연섬에 도시 문명이 겹겹이 쌓이면서 빚어낸 무늬에 주목했다. 도시가 빚어낸 무늬를 볼 수 있는 '인더스트리얼 뷰' 명소를 주로 꼽았고, 거기서 볼 수 있는 문명의 풍경을 주로 제시했다. 정식으로 답사를 하고 나면 바뀔 수 있을 텐데, 일단은 아래와 같다.
제1경 접경, 영도다리는 걸어서 건너야 제맛
영도 유람은 영도다리를 걸어서 건너야 제맛이다. 영도대교는 국내 유일의 도대교이면서 국내 최초의 연륙교다. 전국의 자치구 중에 드물게 섬으로 구성된 곳이다. 그래서 영도구는 부산에서도 '변방, 외곽'이라 주목받지 못했다. 태종대 정도의 관광지가 있었을 뿐 외부에서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런 영도에 변화가 생겼다. 변화의 주범은 다리다. 영도대교로 외롭게 연결되어 있던 영도는 부산대교, 남항대교, 부산항대교가 차례로 연결되면서 고립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시내와 영도를 잇는 다리를 통과하면 독특한 산업경관이 외지인을 맞이한다.
제2경 산업경, 영도는 힙하다
영도에 들어서면 북쪽으로는 부산항대교와 부산항(북항)이 한눈에 보이는 산업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동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영도에 본사를 둔 한진중공업과 그 유관 시설이 만들어낸 이국적인 풍광을 볼 수 있다.
제3경 변신경, 예술을 짓는 조선소
비어있는 조선소 공장의 틈으로 새로운 문화시설이 들어서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쇠락한 조선업 1번지 영도가 문화예술 창작마을로 바뀌고 있다. 선박수리 회사인 제일SR은 카페 비토닉에 이어 최근 피아크(P.ARK)라는 초대형 복합문과공간을 열었다. 이 공간의 기획자가 어반플레이 홍주석 대표다. 이런 공간들이 영도형 레트로 문화를 선보이면서 영도는 낡은 변방에서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제4경 해양경, 바다를 누리다
영도에는 국립해양대학교와 국립해양박물관이 있다. 이곳 말고도 해양 관련 공공기관이 즐비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시설물을 일반인들은 '박물관'과 '대학'으로만 해석하는데 힙스터들에게는 좋은 바다 놀이터다. 이런 시설은 바다 조망이 좋은 곳에 입지 하고 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일과 시간이 아닌 아침 시간이나 밤 시간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놀이터다. 영도의 포텐 중 하나다.
제5경 골목경, 그 섬을 두리번거리다
‘깡깡이예술마을’(대평동)과 ‘흰여울문화마을’(영선동)은 골목 투어로 제격이다. 특히 흰여울문화마을은 밀레니얼세대에게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인스타 명소가 된 지 오래되었다. 카메라를 어디에 들이대도 작품 사진이 나오는 '풍경 맛집'이다.
제6경 미식경, 눈으로 맛보다
사회적기업 ‘키친파이브’ 오재민 대표가 봉래동에 만든 '무명일기'는 음식과 디자인, 문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디자인회사 근무 경력과 푸드트럭 운영 경력을 살려 만든 곳으로 오 대표는 섣달 그믐날 해넘이와 새해 첫날 해맞이 사이에 밤샘 독서를 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조선소 창고로 쓰이던 이곳은 직사각형 창문으로 영도 앞바다를 보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제7경 창고경 , 시간을 담는 창고
항구도시의 상징물 중 하나는 도열한 창고다.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 천덕꾸러기처럼 버려지곤 했는데,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김철우 RTBP 얼라이언스 대표가 청학동에 구축한 ‘끄티(GGTI)’ 가 대표적이다. 영도 구석 끝에 있다고 해서 '끄티'라는 이름을 붙인 곳은 1979년에 만든 금호타이어 물류창고였다. 이후 조선·항만 물류 창고로 쓰이다 비어이썬 이곳을 김철우 대표가 2018년 매입해 문화예술 창고로 재탄생시켰다. '끄티'의 매력은 바다를 등진 무대다. 배에 물건을 싣고 내릴 수 있도록 바다 쪽이 뚫려 있었는데 이곳을 활용해 무대를 만들었다. '끄티'는 미디어아트 플랫폼 등 다양한 공연 전시 행사의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무명일기’가 있는 봉래동 물양장 창고군도 '창고경'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곳이다. 대통전수방사업단이 운영하는 ‘창의산업공간’은 프리마켓인 ‘M마켓’을 열고 있다.
제8경 쇼핑경, 오늘의 부산을 담아가다
삼진어묵에서 만든 복합문화공간 AREA6는 영도의 진화를 단적으로 증거 하는 곳이다.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이 공간에 10여 개의 로컬브랜드가 입점해 '영도의 기억'을 담아갈 수 있게 해 준다.
8월27일 '라이브 영도 랜선 투어' 예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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