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는 와인의 나라다. 술문화로 보면 '형제의 나라'는 터키가 아니라 조지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주도가 우리와 상당히 유사하다. 조지아를 돌아다니다 보면 시골 어르신들이 막걸리를 권하듯 걸핏하면 와인을 권한다. 조지아에서는 함부로 술자랑하면 안 된다. 조지아인들은 기쁜 날은 인당 26잔, 슬픈 날은 인당 18잔의 와인을 준비한다.
조지아의 주도는 이렇다. 술자리를 이끄는 ‘타마다’가 ‘가우마조스(cheers)’를 외치며 건배 제의를 한다. 그러면 우리가 '건배'라고 따라 하듯이 '조스'라고 따라 외치며 마신다. 이렇게 식전에만 기본 5번을 마신다. 맨 처음은 신에게 그다음은 평화를 위해, 그다음은 성조지를 위해, 대략 이런 순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가우마조스는 계속된다. 조지아인들은 와인 3잔은 곰(bear)이 되게 만들고 그다음 3잔은 황소(bull)가 되게 만들고 그다음 3잔은 새(bird)가 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취하는 것 같으면 스스로 멈춰야 한다. 와인을 섞어 마시는 것도 조지아에서는 주도가 아니다.
심지어 잔은 뿔잔이다. 이른바 원샷 잔이다. 놓을 수가 없으니 받으면 바로 다 마셔야 한다. 조지아인들은 새 해가 되면 한 달 동안 이런 파티를 즐긴다고 한다. 와인만 가지고도 해가 갈 것 같은데 맥주도 즐기고 브랜디(짜짜)도 즐기고 보드카도 즐긴다. 조지아 마트에 가보면 절반이 술이다. 정말 대단한 ‘술존심’이다. 한국인이 형제 삼을만한~
와인과 포도나무는 조지아인들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제정러시아 시대에 조지아를 지배하면서 조지아인을 정신적으로 굴복시키기 위해 포도나무를 자르기도 했을 정도다. 그들에게는 포도나무가 단순한 식물 이상의 자아였기에 포도밭 파괴에 큰 상처를 받았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필요한 몇몇 품종만 놓아두고 다른 품종은 방치했다. 몇몇이 그런 품종을 보존했다. 그렇게 소중하게 지켜온 덕분에 지금도 조지아에는 565 종의 포도 품종이 있다.
1차 세계대전 때 조지아에서는 많은 청년들이 전쟁에 징발되었다. 스탈린이 조지아 출신인데 오히려 그는 조지아에 더 가혹해서 징집자가 많았다고 한다. 징집된 조지아 청년들은 포도나무 가지로 허리띠를 하고 갔다고 한다. 그리고 포탄이나 총에 맞아 죽어갈 때 자신이 쓰러진 그 자리에 포도나무 가지를 심었다고 한다.
스탈린의 고향이 조지아다. 그는 조지아 중심부의 고리시 출신이다. 고리시에 가면 스탈린 기념관이 있는데 그에 대한 조지아인의 정서는 박정희에 대한 우리의 정서와 비슷하다. 어르신들은 그리워하고 젊은이들은 싫어한다. 소문난 애주가로 알려진 스탈린이 고향의 와인을 즐겼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러시아 보드카와 아르메니아 브랜디를 주로 즐겼다.
조지아 와인의 특징은 일단 포도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조지아에서 기르는 포도의 종류는 565종이나 된다. 조지아인들은 3km마다 기후가 달라져서 포도 품종도 다르다고 말한다. 이중 사페라비(Saperavi) 종으로 만든 레드와인이 유명하다. 대체로 한국인이 선호하는 카베르네 쇼비뇽과 비슷한 느낌의 와인인데, 그 중 무크자니(Mukuzani) 지역 와인이 최고로 꼽힌다.
카케티 지방은 조지아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다. 유명한 와이너리가 많은데 그중 트윈 셀라(Twin’s Cellar)라는 와이너리에 들렀던 적이 있다. 쌍둥이 형제가 운영하는 곳으로 정통 크베브리 (qvevri) 와인의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다. 특히 음식을 잘해서 답사를 간다면 꼭 식사까지 하고 오길 권한다.
2021년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에서 상영된 <Our blood is Wine>은 조지아 와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미국의 유명 소믈리에게 '와인의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작품인데, 조지아인의 와인 사랑, 조지아인의 포도 품종 개량에 대한 열정, 크베브리 장인의 높은 자존감 그리고 와인을 통해 인생을 배워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크베브리(점토 항아리)에 대한 자부심은 와인이 처음 만들어질 때의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에서 나온다. 크베브리 제작은 전부 수제로 이뤄진다. 이런 방식에 대해 조지아인들은 "손으로 만들어 손으로 옮긴다. 그것은 사랑의 행위다"라고 말한다. 크베브리는 크기가 커서 보통 가마에서 일주일을 굽는다. 이를 그들은 "신이 세계를 창조한 시간만큼 걸린다"라고 표현한다.
크베브리에 숙성시키는 것을 조지아인들은 "흙으로부터 난 아이를 다시 흙으로 살찌운다"라고 표현한다. 우리 어머니들이 조왕신을 모시듯 조심스럽게 항아리를 다루듯이 그들도 크베브리를 소중하게 다루고 그 앞에서 신계 기도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 조지아 와인 양조자들은 자신이 사용한 크베브리에 묻혔다고 한다. 그렇게 해야 행복한 사후를 맞이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크베브리 와인은 으깬 포도를 넣은 점토항아리를 땅에 묻어 발효시킨다. 이렇게 정통 크베브리 방식으로 만은 와인은 은은한 금빛이 난다. 조지아 지역은 와인 양조가 최초로 발원한 곳으로 크베브리 와인 제조법이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크베브리 와인은 대체로 ‘누구나 마실 수 있는 가격에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맛'을 제공하는데 미슐랭 가이드에 나오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납품을 받을 정도로 품질이 좋은 와인도 많다.
조지아 와인에는 지식의 단절이 있었다. 소비에트 시기가 특히 그렇다. 와인은 조지아의 것이고 조지아는 바로 와인이기 때문에 그들은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기록해 두지 않은 것 중에 그 단절의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지금 조지아 와인 양조자 중에는 사라진 포도 품종을 찾아 야생포도나무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소비에트는 다양성을 없앴다. 소비에트가 이룬 맛의 획일화, 그 결과물이 바로 '사페라비'다. 조지아 레드와인을 대표하는데 묵직하고 진한 편이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카베르네 쇼비뇽과 비슷해 한국인들도 선호한다. 사패라비 중에서는 좀 더 섬세한 무크자니가 인기가 있다. 그래서 무크자니 지역 와인이 좀 더 비싸다.
조지아의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은 치난달리(르카치텔리 품종)다. 다른 하나는 피로스마니인데 심수봉씨가 번안한 라트비아 민요 〈백만 송이 장미〉의 실제 모델인 조지아의 화가의 이름이다. 사모하던 여인에게 백만 송이 장미를 바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보통 와인을 만들 포도를 기르는 농장에서는 담장에 장미를 심는다. 장미가 포도나무의 상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조지아 와인의 맛에 대해서는 복잡한 맛을 선호하는 프랑스와인보다 간결하고 심플한 이탈리아 와인을 닮았다는 평을 많이 한다. 실제로 이탈리아 와인 제조업자들이 조지아 와인 근대화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탁 위에는 소금 후추 그리고 와인’이라며 와인을 하나의 소스로, 음식의 반주로 즐겼던 이탈리아 사람들과 조지아 사람들은 닮은 구석이 많다. 조지아 와인을 즐길 때 이 점을 유념하고 마시면 더 수긍이 간다.
조지아에서는 전국적으로 와인이 나고 포도 품종이 다양해서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 터키의 지배를 받았던 남 코카서스 산맥 지역은 터키 와인과 비슷하기도 하다. 이중 코카서스 산맥 아래 카케티 지방은 조지아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로 꼽힌다. '와인 영주'라 별명이 붙은 영주의 저택도 있고 포도밭 한가운데 있는 와인 숙소도 있다. 와인 테마 여행 때 꼭 가볼 만한 곳이다.
카케티 지방을 지나서 코카서스 산맥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낭만의 도시 시그나기가 나오는데 이곳이 와인을 즐기기에 좋은 휴양지다. 이곳의 명소는 ‘꿩의 눈물(Pheasant’s tears)’이라는 와인바다. 미국인 화가가 운영하는 이 바는 카헤티 지역의 와인을 세계에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와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한 병 사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2021년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 기간에 맞춰 '조지아 와인 랜선 투어'를 기획했었다. 조지아 와인을 수입하는 '러스코'의 고일영 대표와 와인 농가가 많아 한국의 조지아라 할 수 있는 영동군의 대표적인 와이너리 여포와인의 여인성 대표 그리고 영동와인축제를 총괄하는 영동축제관광재단 백성우 총감독이 함께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