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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ug 30. 2021

북한의 숲을 살리는, 이런 여행법

여행감독의북한여행큐레이션 제22편

묘향산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들


여러 여행 방식 중에 북한에 도움이 되는 여행이 있다. 바로 산림 복구 여행이다. 지금 바로 할 수 있다. 휴전선 인근에 양묘장을 조성하면 된다. 나무는 묘목을 기르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육성해서 남북 교류가 재개되면 그때 옮겨 심으면 된다. 내가 기른 묘목을 옮겨 심고 싶은 북한의 산을 미리 설정하고 기르면 된다.  


이런 북한의 산림 복구는 여행은 ‘업트레블링(여행지를 여행 가기 전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오는 여행)’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북한의 산림 복원을 희망하는 사람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미리 양묘장을 만들어 여행 갈 때 이를 북한의 황폐한 산림에 이식하고 온다면 뜻깊은 여행이 될 것이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이 시작되었을 때 북한이 가장 먼저 요청한 것은 산림 복원이었다. 2018년 11월 방남한 송명철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실장은 “물고기보다 낚시 도구와 배를 지원해달라. 양묘장을 많이 만들었으면 한다”라며 남측에 양묘장 지원을 부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북한 산림 훼손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당과 군에 ‘산림복구 전투’ 총동원령을 내린 그는 매년 양묘장을 방문해 산림 복구를 독려했다. 2017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에 산림과학대학을 설치하기도 했다. 2019년 신년사에서도 김 위원장은 “산림복구 전투 2단계 과업을 적극 추진하며 원림녹화와 환경오염을 막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묘향산 입구에서 만난 북한 어린이들



북한 산림이 황폐해진 원인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땔감이 부족해 나무를 마구 베어 썼다. 다락밭과 뙈기밭을 조성하며 무리하게 산지를 개간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솔잎혹파리 소나무재선충병 등 산림병해충으로 여의도 면적 300배에 해당하는 25만㏊가 사라졌다. 화전을 일구는 과정에서 산불이 자주 나는데 진압 장비가 부족해 큰 불로 번지는 경우가 많아 연간 4000㏊의 숲이 재로 사라지고 있다.      


남북의 산림 사정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갈렸다. 당시 북한에 비해 임목 축적량이 3분의 1 수준이었던 남한이 지금은 배 이상 많다. 남한은 지난 50여 년간 산림자원이 약 15배 증가했다. 이런 축적된 산림녹화 역량을 바탕으로 산림청은 남북 산림협력에 나섰다. 산림청은 일단 평양과 개성, 고성을 잇는 삼각형을 그리고 이 지역을 ‘숲의 삼각지대’로 복구할 예정이다. 인구가 밀집한 이곳이 대표적인 산림 훼손 지역이기 때문이다.  


산림청이 북쪽에 육성하려는 숲은 크게 세 종류다. 경제림과 유실수림 그리고 연료림을 현지 사정에 맞춰 조성할 계획이다. 이런 숲을 만들기 위해 양묘장이 필요한데, 북한의 노후 양묘장을 온실 중심의 시설 양묘장으로 개선한다는 것이 골자다. 나무는 심고 나서 관리도 중요한데 산불, 산사태, 산림병해충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하려 한다. 


미래 세대를 위해 원시림 등 자연생태계 보호 활동도 도모한다. 북한은 백두산과 개마고원, 그리고 오가산·낭림산·관모봉·경성을 자연보호구로 지정했다. 산림청은 이 지역 원시림을 잘 보존해 생태구로 만들 예정이다. 그리고 우리 국토의 상징인 백두대간이 한반도 핵심 생태축이 될 수 있도록 마루금 등 훼손 구간을 복원한다. 이후 남과 북은 백두대간을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에 등재할 예정이다. 


묘향산에서 산책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



산림 전문가들은 ‘적지적소’를 응용한 ‘적지적수(適地適樹)’라는 개념을 쓴다. 땅의 토질에 맞게, 기후에 맞게, 산의 방향에 맞게, 사면의 각도에 맞게, 사용자의 필요에 맞게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사지는 사방공사를 하고 산사태에 강한 수종을 심어야 한다. 강가에는 둑을 쌓고 보완림을 조성하며 해안가에는 해풍 막을 방풍림을 조성해야 한다. 식수원이나 용수로 쓰이는 강 주변 산은 수원 함량이 좋은 수종을 심어야 하고 양봉 농가가 많은 곳은 밀원식물을 심어야 한다. 


수종을 고를 때는 미래 예측도 어느 정도 해야 한다. 산림청은 북한에 경제림·유실수림·연료림을 주로 조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금 시점에는 북한의 연료 사정이 좋지 않아 연료림이 절실하다. 앞으로 북한 지역의 무연탄 생산량이 늘거나 러시아에서 송유관을 통해 석유나 천연가스를 들여오게 되면 연료림 수요가 줄어들 것이다. 경제림을 조성할 때도 여러 가지를 감안해야 한다. 유실수가 충분히 자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북한 주민들이 베어서 땔감으로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실수는 농약 방제를 자주 해줘야 하는데 이런 농약을 확보할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나무는 심는 만큼 관리도 중요하다. 지원 사업으로 심은 숲은 관리가 안 되어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지원 사업을 할 때 대부분 나무 심는 비용만 생각하고 관리 비용은 감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숲 가꾸기 후원을 할 때 보통 10년을 상정한다. 하지만 나무가 자라는 속도는 더디다. 숲은 10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산림녹화를 할 때는 50~100년 단위의 계획이 필요하다.  


향산호텔에서 준비해 준 '묘향산의 오찬' 



산림녹화를 할 때 미래를 본다면 요즘 세대가 산림을 활용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림을 만든 세대와 산림을 활용하는 세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는 조림의 관점에서 접근하지만 지금 세대는 산림을 이용하는 측면에서 접근한다. 트레킹 인구가 많은 요즘은 ‘걷기 좋은 숲길’이 각광받는다. 이런 점은 북한 숲을 조성할 때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산림청은 남북 산림협력에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하다며 ‘남북 산림협력 청년활동가 캠프’를 열기도 했다. 


남북 산림협력을 할 때 북한을 일방적으로 돕는 방식이 아닌 상호 교류의 방식으로 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이정민 평화의숲 사무국장은 이런 제안을 했다. “한라산 정상부에 구상나무 군락지가 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춥고 고도가 높은 곳으로 대체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못 찾고 있다. 백두산이 적소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남북이 서로 식물 유전자원을 나눌 필요가 있다.” 


민간단체들의 대북 산림지원 활동은 2010년 5·24 대북 조치 이후 대부분 중단되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망 사건 이후 남북 교류가 제한되었는데 산림협력은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 이후 내려진 5·24 조치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남북 산림협력은 긴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산림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지금 세운 목표가 100년 후에도 유효할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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